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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기쁨 Nov 05. 2021

20211103

천일. 

얼마 전 호용이와 1000일을 축하했다. 천일이라니, 여행을 하며 치앙마이에서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1000일을 함께 했다.


평소 생일 외 에는 크게 기념일을 챙기지 않는 우리인데 (선물을 주고 받기는 한다), 이날만큼은 이상하게 손꼽아 기다렸다. '우리 천일에 뭐할까?' '천일인데 뭐 먹을까?' '천일인데..’라는 수식어를 쓰면서 의미를 부여하고 또 했다. 의미를 부여해서 인지 사람들이 왜 천일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극강의 P성향이라 무언가를 예약하거나 찾아가거나 하는 걸 잘 못하는 우리는 모든 걸 계획해봤다. 평소 하지 못하는 데이트를 해보기로 한 거다. 


집 앞 조그마한 빵집에서 케이크를 주문했고, 마블 덕후인 우리들은 아침부터 일찍 만나 백신전용 영화관에서 고소한 팝콘을 먹으며 이터널스를 봤다. 호용이가 예약한 성수에 있는 퓨전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고 먹자마자 맨발로 즐기는 전시에 갔다 왔다. 그 후 소화도 할 겸 독특한 문구 샵에 가서 이리저리 구경을 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펜을 골랐지만, 원가보다 2배나 비싼 가격을 보고는 조용히 내려놓았다. 대신 한 초등학교 옆, ‘문구’라고 적혀있는 간판과 함께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곳에 들어가 빨간색 편지지를 구매했다.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스파클링 와인도 구매했다. 그리고는 서로 책상에 마주 앉아 파리에서 듣고 싶었던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빨간색 편지지에 하고 싶은 말과 다정한 말들을 꼬박 적어 넣었다. 사랑함과 고마움과 행복함이 한껏 묻어나는 편지였다. 내가 좋아하는 조개찜과 호용이가 좋아하는 고기를 구워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주문한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기념일을 축하하며 잘 지내온 우리를 다독였다. 


나와 호용이랑 정말 다른 사람이다. 처음에는 운명 마냥 똑같은 줄 알았는데 말이지^^;;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다르다는 사실을 많이 인정하고 있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떻게 잘 만나냐고 물본다면 대답은 이럴 것이다. 나무로 치면 굵은 통과 깊은 뿌리가 같고, 그 위로 나있는 무수한 가지들이 다르다고. 날씨에 따라 가지는 부러질 수 있어도, 나무와 뿌리가 굳건하면 쓰러지지 않을 거니까. 우리는 관계 또한 그럴거다! 물론 가지가 다르기 때문에 많이 싸우기도 싸우지만 언제나 그렇듯 잘 풀기에, 그런 우리가 나는 참 좋다. 결론은 사랑한다구. 호용이~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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