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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군 Feb 06. 2021

당신들에게 바치는 헌시


 고백하건대, 중/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죽었다.' 고 생각한다. 생각만해도 끔찍하고 아직까지도 악몽에 깨어나기도 한다.


 아직도 기억난다. 기억도 하기 싫었던 감옥에서 탈출했을 때를. 그 때 난 졸업식과 동시에 내가 비로소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스무살이 되고 나서 나는 나의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다짐 했다. 그게 바닥을 치고 다시 살아보기로 다짐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었다. 열심히 사는 것보다 제대로 된 인생을 살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아주 초반 빼고 나이를 먹으면서 한 번도 유년시절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한 적 없다. 창피한 게 아니라, 그저 얘기를 하기 귀찮고 피곤했기 때문이다.






 졸업 후 10년동안 가끔씩 하도 여러 곳에서 보이는 내 모습이 싫었는지, 아니면 이후에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궁금했는지 나의 중고등학교 동창들이 내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글을 남기거나 이는 지인들에게 내 이야기를 했다는 소식을 종종 듣곤 한다.


 왜 궁금할까. 내 인생이 뭐 어떻든, 자기네들 인생 살기 바쁘지 않나? 나는 내 인생만 봐도 당장 먹고 살 걱정에 카드값을 어떻게 갚을지 그거부터 걱정되던데 그들은 내 지인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할 만큼 내가 그리 궁금할까 싶다. 아직도 내가 가십거리로 삼을 만큼의 존재인가. 적어도 난 너무나도 궁금하지 않은데.


 이 모든 것의 근본적 원인은 '피곤함'이다. 피곤하고 귀찮다. 난 더 이상  지나간 과거의 인연들에 연연하고 싶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을 뿐더러 이미 그들을  관계도에서 삭제했다. 그들은 내가 뭘 먹고 뭘 입고 뭘 하는지가 궁금할지 모르지만 난 전혀 그들이 뭘 하는지 궁금하지 않다. 인류애적 감성이 묻어나는 휴머니즘을 그들에게 내비치는 것 또한 사치다. 난 내가 제일 중요하고 내 주변 사람들과의 행복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 관심을 쏟을 만큼 그들은 나에게 잘해주지도 나이스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미 그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내 과거의 글과 KBS 드라마 <발칙하게 고고>에 어느 정도 녹아져 있다. 내 블로그의 글을 통해 메인 작가님이 막내 작가님을 보내셨고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했었더랬다.  

 난 그렇게 내 유년 시절을 정리했다.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그렇게 정리를 하고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됐는데 왜 그 과거들을 회상하려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저 속에 묵혀뒀던 상자를 잠시 꺼내본다. 고등학교 시절, 친했던 친구가 나를 뒤통수 치고 나를 욕하던 이들과 내 욕을 하는 모습을 보았고 누군가는 그런 나를 외면하기도 했던 그 시절.


 지금 와서 보면 그들도 나름 괴롭힘을 당하고 면전에서 욕을 먹던 나를 감싸는 순간, 자신들 또한 그리 될 것이란 두려움에 자신의 살길을 도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해는 된다만 그 직격탄을, 내가 그토록 믿었던 사람들에게 바로 맞았던 나. 너무나도 아팠지만 그로 인해 죽지 않고 깨달은 게 있다면 내가 아무리  친구에게 공든 탑을 쌓더라도  뜻이 맞지 않는다면 친구라 정의할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내가 에펠탑을 짓고 싶어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짓고 싶어하는 친구가 있다면 둘 중 하나는 포기를 해야한다.


 관계라는 것이 '탑'이고 그 탑을 쌓는 두 명의 사람이 있다고 치자. 한 명은 에펠탑을 짓고 싶고 한 명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짓고 싶다면 결론은 딱 2가지다. 둘 중 한 명이 포기를 하던지 아니면 각자가 원하는 탑을 함께 지어줄 타인을 찾던지.


 사람마다 가치관은 다르겠지만 30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때론 배신도 당하면서 느낀  적어도 친구관계에 있어 '공든 '이라는  존재할까 라는 생각이었다.  아무리 멋진 에펠탑을 짓고 싶은 누군가를 만났어도 그때마다의 타이밍, 서로가 가진 에너지, 취향, 등은 너무나도 다른데 내가 상상하는 멋진 탑의 모양을 상대방도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너무 이기적인 발상 아닐까. 그러기에 어느 정도는 맞추면서 함께 나름대로의 탑을 쌓아가는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그러기에 나는 나와 맞지 않은 사람을 쉽사리 친구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아쉬운 소리를 하던, 아쉬워하던 욕을 하던 아닌 건 아니니까. 그리고 그 이에 대해 더 이상의 말 또한 꺼내지 않는다. 굳이 내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없는 사람을 왜 이야기하지? 이런 의문이 먼저 드는 것도 이유 중 하나라면 하나일 것이다.





 그러기에  내가 그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으면 좋겠다. 후에 나를 알더라도 그냥 무심코 아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스쳐 지나가는 인연쯤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건 내 과거가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그들의 머릿속에 나란 사람이 어떠한 관계도 속에 있는 게 끔찍할 정도로 싫기 때문이다.

 사람을 혐오한다는 것보다 더 큰 복수는 어쩌면 그 사람을 내 인생에서 없애는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행하였을 때 비로소 나 자신이 자유로워진다는 것 또한 나는 안다.


 난 나를 위해서, 내 진짜 인생을 위해 그들을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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