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대, 중/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죽었다.' 고 생각한다. 생각만해도 끔찍하고 아직까지도 악몽에 깨어나기도 한다.
아직도 기억난다. 기억도 하기 싫었던 감옥에서 탈출했을 때를. 그 때 난 졸업식과 동시에 내가 비로소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스무살이 되고 나서 나는 나의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다짐 했다. 그게 바닥을 치고 다시 살아보기로 다짐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었다. 열심히 사는 것보다 제대로 된 인생을 살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아주 초반 빼고 나이를 먹으면서 한 번도 유년시절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한 적 없다. 창피한 게 아니라, 그저 얘기를 하기 귀찮고 피곤했기 때문이다.
졸업 후 10년동안 가끔씩 하도 여러 곳에서 보이는 내 모습이 싫었는지, 아니면 이후에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궁금했는지 나의 중고등학교 동창들이 내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글을 남기거나 이는 지인들에게 내 이야기를 했다는 소식을 종종 듣곤 한다.
왜 궁금할까. 내 인생이 뭐 어떻든, 자기네들 인생 살기 바쁘지 않나? 나는 내 인생만 봐도 당장 먹고 살 걱정에 카드값을 어떻게 갚을지 그거부터 걱정되던데 그들은 내 지인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할 만큼 내가 그리 궁금할까 싶다. 아직도 내가 가십거리로 삼을 만큼의 존재인가. 적어도 난 너무나도 궁금하지 않은데.
이 모든 것의 근본적 원인은 '피곤함'이다. 피곤하고 귀찮다. 난 더 이상 내 지나간 과거의 인연들에 연연하고 싶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을 뿐더러 이미 그들을 내 관계도에서 삭제했다. 그들은 내가 뭘 먹고 뭘 입고 뭘 하는지가 궁금할지 모르지만 난 전혀 그들이 뭘 하는지 궁금하지 않다. 인류애적 감성이 묻어나는 휴머니즘을 그들에게 내비치는 것 또한 사치다. 난 내가 제일 중요하고 내 주변 사람들과의 행복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 관심을 쏟을 만큼 그들은 나에게 잘해주지도 나이스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미 그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내 과거의 글과 KBS 드라마 <발칙하게 고고>에 어느 정도 녹아져 있다. 내 블로그의 글을 통해 메인 작가님이 막내 작가님을 보내셨고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했었더랬다.
난 그렇게 내 유년 시절을 정리했다.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그렇게 정리를 하고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됐는데 왜 그 과거들을 회상하려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저 속에 묵혀뒀던 상자를 잠시 꺼내본다. 고등학교 시절, 친했던 친구가 나를 뒤통수 치고 나를 욕하던 이들과 내 욕을 하는 모습을 보았고 누군가는 그런 나를 외면하기도 했던 그 시절.
지금 와서 보면 그들도 나름 괴롭힘을 당하고 면전에서 욕을 먹던 나를 감싸는 순간, 자신들 또한 그리 될 것이란 두려움에 자신의 살길을 도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해는 된다만 그 직격탄을, 내가 그토록 믿었던 사람들에게 바로 맞았던 나. 너무나도 아팠지만 그로 인해 죽지 않고 깨달은 게 있다면 내가 아무리 이 친구에게 공든 탑을 쌓더라도 그 뜻이 맞지 않는다면 친구라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관계라는 것이 '탑'이고 그 탑을 쌓는 두 명의 사람이 있다고 치자. 한 명은 에펠탑을 짓고 싶고 한 명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짓고 싶다면 결론은 딱 2가지다. 둘 중 한 명이 포기를 하던지 아니면 각자가 원하는 탑을 함께 지어줄 타인을 찾던지.
사람마다 가치관은 다르겠지만 3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때론 배신도 당하면서 느낀 건 적어도 친구관계에 있어 '공든 탑'이라는 게 존재할까 라는 생각이었다. 제 아무리 멋진 에펠탑을 짓고 싶은 누군가를 만났어도 그때마다의 타이밍, 서로가 가진 에너지, 취향, 개성 등은 너무나도 다른데 내가 상상하는 멋진 탑의 모양을 상대방도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이기적인 발상 아닐까. 그러기에 어느 정도는 맞추면서 함께 나름대로의 탑을 쌓아가는 게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그러기에 나는 나와 맞지 않은 사람을 쉽사리 친구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아쉬운 소리를 하던, 아쉬워하던 욕을 하던 아닌 건 아니니까. 그리고 그 이에 대해 더 이상의 말 또한 꺼내지 않는다. 굳이 내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없는 사람을 왜 이야기하지? 이런 의문이 먼저 드는 것도 이유 중 하나라면 하나일 것이다.
그러기에 난 내가 그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으면 좋겠다. 후에 나를 알더라도 그냥 무심코 아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스쳐 지나가는 인연쯤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건 내 과거가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그들의 머릿속에 나란 사람이 어떠한 관계도 속에 있는 게 끔찍할 정도로 싫기 때문이다.
사람을 혐오한다는 것보다 더 큰 복수는 어쩌면 그 사람을 내 인생에서 없애는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행하였을 때 비로소 나 자신이 자유로워진다는 것 또한 나는 안다.
난 나를 위해서, 내 진짜 인생을 위해 그들을 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