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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군 Oct 24. 2019

마케터와 MD의 사이에서

우리는 친구인가, 적인가.



 내 전공은 '패션 마케팅'학과이다. 패션 에디터를 꿈꾸었던 내가 패션 머천다이징이라는 전공이 주는 매리트를 생각하며 좋은 대학을 다 포기하고 최종적으로 선택한 학과. 하지만 정작 교수님들이 가르친 것들은 패션보다는 숫자와 'MD'로서의 자질이었다. 덕분에 나는 패션의 역사를 배우며 sku의 뜻을 외워야 했고 졸업 작품전 마케팅 팀장 시절엔 그놈의 엑셀을 두들기며 아이템 수량과 배수를 때려가며 MD로서의 역량을 '강제로' 길러야만 했다.

 '모든지 다한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많은 MD들은 보다 많은 매출을 위해 어떠한 수단이든 가리지 않고 진행한다. 때론 사입처, 업체에 전화해 물량을 더 빼 달라고도 말할 수도 있고 오히려 업체와 협의를 통해 파샬 또는 전량을 사입하게 끔 하는 것 또한 MD의 역량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판매하기 위한 '마케팅' 요청 또한 MD들이 직접 조율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커머스 때의 MD들과 그러했고 현재 있는 브랜드에서도 그러했다.




 글에 앞서 고백하건대, 나는 MD가 죽어도 되기 싫었다. 숫자의 감각도 없고 매일매일을 전쟁통처럼 살기 싫었다. 크리에이티브한 업무를 하고 싶었고 어느 드라마의 PR 매니저처럼 홍보와 노출을 하며 지내고 싶었더랬다. 어쩌면 그러했던 생각이 지금 마케터가 될 수 있는 초석이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도 나는 MD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아마 내가 브랜드, 또는 커머스 마케터로 계속 살아간다면 계속 함께 해야만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전 회사에서도 그랬고 지금 회사에서 업무를 보며 문득 한 가지 고민 아닌 고민을 하게 됐다.



우리는 적인가, 친구인가?



 사실 마케터가 어느 부서에 있냐에 따라 참 많은 업무의 디렉션이 바뀐다. 첫 회사에서 나는 '마케팅팀' 소속 마케터였다. 그러기에 제 아무리 MD들이 노출을 해달라고 해도 '스케줄이 꽉 차서 남는 구좌에 해드리겠다.'라고 자를 수 있었고 매출보다는 UV와 클릭수, 팔로우 수 등 목표 KPI 달성에만 힘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니 MD들과 충돌하는 경우는 딱히 없었고 매출로 압박을 받아본 적 또한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회사에서 난 '영업팀' 소속 마케터가 되면서 상황은 역전되기 시작했다. MD가 노출해달라는 내용은 노출 1순위가 되어버렸고 그 와중에 목표 KPI는 달성해야 했으며 언제나 마케팅 플랜에서 KPI는 '매출'이 되어버렸다.


* KPI : Key Performance Indicator의 약자로 개인이나 조직의 전략(또는 전략목표) 달성에 대한 기여도가 높은 요소의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


 결국 나의 KPI, 성과측정의 척도는 얼마나 이 노출이 '매출 달성'으로 이어졌냐 로 좌지우지돼버린 것이다. 일 년에 10억 이상을 마케팅 비용으로 쓰던 전 회사의 스케일에서 이제는 1-2백만 원 집행도 너무 무서워져 버리니 함부로 마케팅 플랜을 짜지 않게 되어버렸다. 함부로 돈을 썼다가 매출이 나지 않으면 그 손해는 오롯이 '마케터'가 짊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MD와의 이른바 '기싸움'을 계속하게 되었다. 매출이 안 나오는 아이템을 가지고 PUSH 진행을 하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마케터의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컨텐츠로 녹여도 반응이 안 나올 테고 그렇다고 다른 매체를 빠른 시일 내에 찾는 것 또한 힘들기 때문이다. '안된다.'라고 이야기하기는 또 싫으니 어떻게든 다른 것들을 찾아보려 하면 어느새 나의 업무는 늘어나 있기가 부지기수였다. 이처럼 그동안 KPI로만 움직였던 나에게 '매출'압박이 오게 되면서 나는 마케터로서 보아야 할 지표 이상의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과연 이게 맞는 것일까? MD와 마케터, 그 사이에서 나는 과연 그들을 적으로 보는 것이 맞는 것일까?


판매 PUSH를 해야 한다기에 ASK 진행에서 직접 촬영 모델까지 하며 노출했던 사진

  결론적으로 마케터와 MD는 다른 듯 같은 분야인 것 같다는 게 나의 의견이다. 옛날엔 마케팅이 영업의 도구로서 사용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1차원적으로 '노출'과 '홍보'에 집중하며 마케팅을 전개해나갔다. 그러다 PR의 아버지 에드워드 버네이즈가 PR이란 개념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면서 마케팅에도 '브랜딩'이라는 개념이 접목되었고 마케팅 또한 단순히 매출뿐만 아니라 브랜드의 인지도와 가지고 있는 모습들 또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기에 21세기에 영업과 마케팅은 다른 개념이 맞다. 다만 영업 분야에서의 목표는 매출이기에 마케팅을 매출 상승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뿐이고 마케팅 분야에서의 목표는 매출 이외에도 KPI 달성을 위해 각자의 파트에서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지표들을 위해 일한다. 퍼포먼스 마케터에겐 유입, 트래픽, 회원 수 등이 그러할 수 있고 SNS 마케터에겐 SNS 팔로워 수, 콘텐츠 반응 등이 그러하다. 브랜드 마케터에겐 브랜드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등 마케터들은 각 파트에서 필요한 KPI를 가지고 움직인다. 하지만 마케팅의 기본적인 원천은 어찌 보면 '매출'에 기인하기에 마케터와 MD는 매출 창출이라는 교집합을 가지만 각자의 고유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MD와 마케터는 사사건건 부딪히면서도 서로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MD에게는 판매를 하며 축척해놓은 '데이터'가 있다. 어떠한 아이템이 판매가 잘 되었는지, 또는 어떠한 유통이 효과적인지를 마케터들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마케터는 그 데이터를 통해 어떠한 매체가 더 효율적인지, 그리고 어떠한 아이템으로 PUSH를 진행해야 할지를 결정하게 된다.

 반대로 마케터에게는 효율적인 매체, 콘텐츠 컨트롤 등 효과적인 노출에 대한 데이터 분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경험과 분석을 바탕으로 한 마케팅 집행으로 MD들은 보다 많은 매출을 이끌어낼 수 있게 된다. 결국 서로가 필요로 한다는 것을 MD와 마케터, 둘 다 알고 있다.



결국 우리는 같은 곳을 보고 있다. 하지만 왜 우리는 적이 되어야 할까?


 하지만 MD들에게 마케터는 '돈은 썼는데 왜 매출을 못 내? 이러면 문제 있는 거 아니야?'라는 식으로 마케팅을 생각할 수 있고 마케터에게 MD들은 '광고비도 적게 주면서 뭘 이렇게 요청하는 건 많아?'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명은 돈을 벌어오고 한 명을 돈을 쓰며 돈을 벌어오는 입장이다 보니 결국은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케터들은 매출 이외에도 브랜드 인지도와 홍보, 그리고 더 나아가 브랜드의 이미지까지 신경 써야 하는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단순히 매출을 상승시키는 것보다 브랜드라는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크다. 그게 곧 브랜드의 매출까지 상승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MD들에게는 당장의 판매 수치가 중요하고 앞으로의 매출 목표 달성이 중요하다 보니 마케터들이 하는 집행이 시간낭비, 돈 낭비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노출을 원하는 MD들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보다 효율적인 집행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면서도 협찬을 컨트롤하고 더 나아가 콘텐츠 개발까지 힘써야 한다. 결국 마케터라는 것은 매출 이상의 것을 보아야만 한다. 그러기에 조금 더 정확한 데이터를 위해 힘쓰고 조금 더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만 한다. 마케터와 트러블이 있는 MD들이라면 그들이 매출 이외에 어떤 것들을 보고 있는지, 어떤 KPI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케터들은 매출과 본인들의 KPI를 달성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효율적인 매체, 데이터 분석을 필수로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만 한다면 어쩌면 마케터와 MD는 서로의 영역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상승 관계를 유지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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