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발단은 추석 명절에 벌어졌다.
"요새 애들이 왜 노력을 안 하는 줄 알아요? 절실하지 않아서 그래요."
추석이 되면 만나지 못했던 형제들이 한 자리에 모이곤 한다. 나 또한 의례적인 행사에 참여하며 이번엔 또 어떤 말을 듣나,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나 고민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곧 서른의 나이를 바라보며 직장도 다니겠다, 슬슬 결혼 준비를 하라는 얘기를 시작으로 나, 부모, 사회를 이야기할 것일 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나의 부모와 나의 부모의 형제와의 100분 토론이 시작되었다. 첫 시작은 정치 이야기로 시작했고 그러던 와중, 엄마의 저 한마디가 뇌리에 콕 하니 박혔다.
집에 돌아가는 길, 나는 엄마가 뱉은 충격적인 말에 귀 기울였다. 절실하지 않았기에 노력을 하지 않았다, 라는 말처럼 엄마를 대변하는 말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 자리에서 화를 내고 싶었지만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는 그 자리를 나와버렸지만 정말 많은 이야기를 쏘아붙이고 싶었다.
지금 이 자리까지 오기까지 미안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절실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내 선택이 아닌 대학교를 들어가서 단지 서울에 올라오기 위해 보냈단 3년 반이란 시간들, 부모의 지원 없이 아르바이트를 전전긍긍하며 한 달 120만원으로 월세까지 내며 살았던 시간들, 회사에서 무조건 버텨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꼰대들의 말에 최저 시급도 안 되는 연봉을 가지고 그놈의 네임벨류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버텼던 나의 1년 10개월 동안의 세월들과 고생이 과연 절실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을까?
20살이 되고 28살이 되기까지 참 많은 좌절을 느꼈다. 내 스펙에 대학 네임이 조금 높았더라면 서류는 통과하지 않았을까, 우리 부모가 돈이 좀 더 많았더라면 조금은 행복하지 않았을까, 토익 조교라도 하며 토익 점수를 높이고 공부라도 했으면 좀 나았을까 등등.
하루하루가 좌절의 시간들을 겪는 사람이 비단 나뿐만이었을까. 그 좌절 속에 지금을 사는 20대는 살기 위한 또 다른 선택을 해야만 한다. 일과 사랑에서 살아 남기 위해 일을 택해야 하고, 좋은 기회를 내버린 채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때를 나는 경험했다. 그 경험들 사이에서 나는 단 한 번도 절실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그렇게 했었기에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던 것 같다.
세상은 생각보다 결과론적이고 아름답지 않다. 운이 좋은 사람도 많은 반면 운이 없는 사람도 많다. 나의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고 운도 좋지 않았다.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실패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서든 그 세상을 바꿔보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선 직장과 돈이 필요했고 그 허전함을 채워줄 친구들이 필요했다. 그게 현실이었다. 그에 비해 나의 엄마는 어느덧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진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것을 원망하기엔 너무 많은 미움을 해버렸고 떨치기 위해 노력했기에 나는 그저 그 자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나의 미래는 알 수 없다. 어떻게 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나는 내 인생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꿈꾸는 인생을 위해 절실함을 가지고 임할 것이다. 보이지 않은 미래와 내가 가진 현실을 원망하기엔 현재의 나는 너무나도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