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솔직한 게 아니라 무례한 겁니다

자꾸 말에 걸려 넘어진다

by 내민해

그런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과는 무슨 말만 하면 내 좋았던 기운도 쭉쭉 빠져나간다. 어떤 말에도 부정적으로 답하는 사람들, 사사건건 투덜대는 사람들, 누군가의 욕으로 대화가 마무리되어야만 속이 후련한 사람들. 이들과의 대화는 나의 정신건강에 백해무익하다. 그래서 자꾸 피하게 된다. 반면에 또 이런 사람들도 있다. 지나친 솔직함이 타인의 상처를 건드렸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뱉어내는 사람들. 심지어 이들은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상처받은 상대를 향해 되려 묻는다.

"나는 솔직한 사람인데?"


반면에 나는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다.

뱉어낸다고 다 말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조심할 수 있는 사람, 본인의 말로 상처받은 이에게 '그게 왜 아파?'라고 따져 묻지 않고 '아 이렇게 말하면 다칠 수 있구나'를 깨닫고 다음번에는 그 말을 주의하는 사람, 적어도 내가 누군가에게 말로 상처를 줬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것을 진심으로 사과할 줄 아는 사람, 다양한 층위의 입장을 고려하는 말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말을 살피는 사람.


내가 생각하는 좋은 대화란 말을 건네기에 앞서 약간의 머뭇거림이 있는 대화다.

적어도 지금 뱉어내는 내 말이 누군가에게는 화살로 날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망설임이 곳곳에 자리하는 대화 말이다. 이런 대화는 대체로 무해하며 상대를 살피고자 하는 마음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솔직함의 정도를 알아 무례하지 않으며, 의도하지 않았으나 자신의 말로 상처를 입은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선뜻 사과를 건넨다. 대화의 주제와 상관없이 이들과의 대화는 적당한 온도를 유지한 채 잔잔하게 흘러간다.


다정 박사라 불리는 김혼비 작가의 산문집 <다정소감>에서 그녀는 언젠가부터 소위 말하는 '솔직함'이라는 것들에 지쳤다고 말한다.


솔직함은 멋진 미덕이고, 나 역시 각별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진실하려고 노력하며, 그런 사람들을 곁에 두곤 하지만, 솔직함을 무기 삼아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을 여과 없이 쏟아내는 이들을 볼 때마다 일종의 환멸 같은 게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중략)
어떤 사람들은 '솔직한 나'를 너무나 사랑하고 '솔직한 나'에 대해 너무나 비대한 자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으니, 아무 노력 없이 손쉽게 딸 수 있는 타이틀이 '솔직한 나'여서 그런 것일까. 앞으로도 아무 노력도 안 하고 싶고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살고 싶은데 이걸 그럴듯하게 포장해 줄 타이틀이 '솔직한 나'밖에 없어서 그런 것일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솔직함, 정말 누구도 바라지 않고 별다른 가치도 없고 하나도 안 중요하니 세상에 유해함을 흩뿌리지 말고 그냥 마음에 넣어두라고. 정말이지 제발 가식과 위선이라도 떨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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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소리에 유난히 예민한데, 말도 그 소리의 일부이기에 예민하다. 필터가 촘촘해서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말이 나에게는 화살로 날아와 꽂히는 순간들이 꽤 있다. 예민한 사람들은 자신이 예민한 것을 알고, 타인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늘 조심할 것 같지만 딱히 그렇지만도 않다. 내가 속해있는 <예민한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오픈 카톡방이 있는데, 얼마 전 그곳에 나의 이런 증상(?)을 잠깐 털어놓았다. 요즘 말로 자꾸 넘어지는 기분이 든다는 조금은 추상적인 고민을 말이다. 나의 이 말에 평소에도 유독 자신의 말을 여과 없이 내뱉던 누군가가 "정신병은 약도 없는데, 어쩐데요"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입력하려던 나머지 말들을 속으로 삼켰다. 그는 얼마 전부터 사장님이 자꾸 자신을 지적한다며 온갖 부정적인 말을 뱉어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더니 급기야 나에게도 그 화살을 날려버린 것일까. 자신의 상처가 너무 아파 타인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일까.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모임>이라는 공간에서조차 말로 걸려 넘어지면 나는 대체 누구랑 말이라는 것을 해야 하나 생각이 많아졌다. 그나마 이렇게 글로라도 쓸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말에 자꾸 걸려 넘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요즘 들어 유독 그 증상이 자꾸 올라오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어쩌면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말이다. 나의 컨디션이 어떤 말에도 체할 만큼 좋지 않다고 계속 신호를 보내는 데 내가 그걸 놓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럴 때일수록 말을 아끼고 최대한 글로 풀어내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누군가와의 대화에 자꾸 걸려 넘어진다면 당분간은 침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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