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게 알게 된 친구는 어릴 때 만난 친구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가치관 형성이 덜 된 상태에서의 교우관계는 하나의 관심사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관계가 연결되곤 했다. 하지만 사회에서 만난 친구는 다르다. 서로의 가치관이 어느 정도 형성된 상태에서의 만남이기 때문에 단순히 같은 공동체에 속해있다는 이유만으로는 그 관계를 지속하는 데는 어려움이 생긴다. 집단에서 벗어나 대화 코드를 맞추던 중 서로의 관심사가 다름을 느꼈을 때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고 방황하다 자연스레 그 관계가 소멸되기도 하니까. 혹은 상대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지도. 이를테면 같은 모임에서 만난 A와 B가 있는데, A는 자기계발과 사업, 열정, 경쟁 등에 관심이 있고, B는 안정적이고 한결같은 지금의 삶에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두 사람의 대화는 어느 순간 적당한 온도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인 A와의 대화에서 자주 느끼는 좋은 점 중 하나는 그 사람과 나는 분명 관심사와 성향이 다름에도 대화가 된다는 것이었다. 꼭 분야가 같지 않아도 일정 부분 통하는 점이 있으면 그 대화는 고여있지 않고 나름의 길을 찾아 흘러간다는 것은 그를 통해 배운 사실이다. 내가 알고 있는 그는 타인의 취향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주워 담기 힘든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으며 가까운 사이라도 적당한 선과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다.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이 우리의 대화에 적당한 온도를 지켜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와의 인연을 이어 온 지도 어언 4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철저하게 예의를 지키던 우리도 만난 기간이 길어지면서 가끔은 투박하고 장난스러운 말로 서로를 공격(?) 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그와 대화를 나누던 중 나의 성향과 반대되는, 더 정확히는 내가 싫어하는 면을 강조하는 그의 모습에 약간 날을 세우기도 했었다. 그는 가까운 이들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 싫다고 말했다. 자신이 보기에 좋아 보이지 않는 길로 가는 지인을 바로잡아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나는 반문했다. 그 모습이 잘 되고, 잘못되고를 판단하는 주체가 누구고 그 객관적인 지표는 무엇이냐고 말이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불편한 착각이 있다. 나에게 좋은 것은 너에게도 좋을 것이라는 꽤나 오만한 착각들 말이다. 특히 본인이 연장자일수록 이 태도는 더욱 공고해지는데 여기서 우리가 그렇게 싫어하는 라떼발언이 등장하는 것이다.
"라떼는 말이야..."
(라떼는 맛있기라도 하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그는 미래를 함께하고 싶은 연인의 어떤 면이 마음에 들지 않고, 그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이라 쓰고 확신이라 읽는다)하기 때문에 그 점을 고쳐주고 싶다고 말했다. 더 정확히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고. 나는 그의 말에 강하게 반발하며 본인이 그 사람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느냐고 그거 너무 오만한 거 아니냐고 말했다. 상대는 자신의 행동이 괜찮다 여길지도 모르고 그 행동이 삶의 중요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그 상대의 가치관과 방향성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조언을 건넬 자격이 있는 것일까. 그 자격은 누가 주는 것일까. 아니 준 적도 없는데 마음대로 남발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이런 점 때문인지 나는 개인적으로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계발을 한다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자기계발서에서 흔히 주장하는 저자들의 그 오만함이 싫은 것이다.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통달한 것 마냥 자신감에 차서 설파하는, 혹은 가르치려 드는 그 오만함이 지독하게 싫었다. 성공의 정의란 개개인마다 다른 것인데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의 정의만을 옳다 주장하며 '이 성공을 어떻게 이뤄냈냐면 말이지...'로 시작되는 그 흔한 잘난 척이 꽤나 꼴 보기 싫었는지도. 어쩌면 이건 그들의 오만함보다는 나의 오만함이자 자격지심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특히 얼마 전에 잃었던 <원씽>이라는 책은 자기계발서는 역시 나와 맞지 않음을 다시 한 번 증명해 주는 좋은 예시가 되어주었다. <원씽>은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 1위, 아마존 자기계발 분야 260주 연속 스테디셀러!'라는 명성에 걸맞게 20만 부 판매 기념 리커버 특별 한정판까지 출시된 자기계발서 분야의 스테디셀러다.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투자개발 회사의 대표인 게리 켈러가 더 적게 일함으로써 더 깊게 집중하여 더 크게 성공하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제시한 책으로 유명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여러 가지가 불편했는데, 우선 첫 번째로는 경제적 성공이 인생 전부의 성공인 것 마냥 주장한다는 점이다. 부를 축적하기 위한 그의 말에는 허점이 많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몰아가는 그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는데,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지점 중 하나는 바로 구조적 문제다. 가난하게 태어났다고 모두가 가난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누군가에게는 지독하게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있는 가난이라는 굴레가 있다는 전제를 쏙 빼고 말한다. 심지어 모두가 평등하다는 착각마저 심어주는 그의 논리는 개인은 누구나 노력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음에도 노력하지 않아 성공하지 못한 것이라는 결론을 지음으로써 구조적 불평등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고 있다. 심지어 그 결과에 대해 개인은 권리를 침해당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듯한 논리까지 이어지니 참, '오냐 당신 잘났다'다.
두 번째는 성공의 가도를 달리기 위해 관계를 하나의 도구쯤으로 생각하는 듯한 그의 태도였다. 자신만의 한 가지(원씽)에 집중하는 것은 좋으나 그의 말처럼 '주변의 환경을 완벽히 차단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것이다. 특히 관계의 문제가 그렇다. 관계에는 늘 변수가 많고 내 뜻대로 상대가 따라오기만을 바랄 수는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저자가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그 길이 꽤나 독단적이라고 느껴졌다. 그는 말한다. 전화기를 끄고, 이메일을 닫고, 인터넷 브라우저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자기 관리 영역에서는 물론 중요한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본인이 필요할 때는 주변에 도움을 구하라고 말한다. 그럼 반대로 상대도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지 않을까. 왜 그 부분에 대한 가능성은 열어두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답정너). 단 한 가지를 위해 자신의 주변 환경을 계획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절제력이 뛰어난 부분이라 여겨 공감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필요할 때만 타인에게 문을 열고, 필요하지 않으면 닫아버리는 모습이 다소 이기적이고 계산적이게 느껴졌다. 그가 말하는 성공이란 대체 무엇이고,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인가 싶어서다. 성공이라는 것이 돈, 명예, 지위와 권력 등등 개인의 기대에 따라 중요도는 있겠지만, 그와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은 확실히 느낀 것 같았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성공한 삶에는 낭만이 있기를, 사람이 있기를, 진심이 있기를 바라니까. 또한 내가 주장하는 낭만은 효율성만을 따지고 있지는 않을 테니 저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시간 낭비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자기계발서는 맞지 않다. 지인과의 대화에서도 내가 불편함을 느꼈던 지점은 자신이 상대를 바꿀 수 있을 거라는 확신에 찬 오만함 때문이었다. 나도 가끔 그런 상대를 만날 때가 있다.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나이임에도 가끔은 내가 낯설고 나를 잘 모르겠다 싶을 때가 있는데, 본인은 대체 나를 얼마나 봤고 나에 대해 알면 얼마나 잘 안다고 나의 모습을 함부로 일반화하며 가르치려 드는지.
제발 좀 내 인생에 오지랖은 그만 부리고 네 인생이나 좀 챙기세요. 제발.
(아 물론 내 지인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냥 조금 불편했을 뿐이다. 조-금)
올해 <웃는 남자>라는 뮤지컬을 봤다. 그 뮤지컬의 OST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주제곡인 <웃는 남자>다. 끝으로 그 노래 가사 중 일부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쳐보려 한다.
오만한 것들
지들이 최고라 떠들어대
분노한 신께서
나 같은 괴물 만든 이유
눈멀고 귀먹은 치졸한 것들
다 깨워줄게
모두 기대해
난 웃는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