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민해 Dec 08. 2022

오랜만이야, 층간소음!

잠 좀 자자. 쫌!

층간소음 뉴스는 조금 잠잠해진다 싶다가도 잊을만하면 한 번씩 수면 위로 떠오른다. 나도 한때 층간소음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적이 있어 이와 관련된 뉴스와 기사들이 남 일 같지 않다. 층간소음 피해는 코로나 장기화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2019년 이후 매년 두 자릿 수의 증가폭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밖으로 잘 못 나가다 보니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각종 놀거리와 볼거리, 쉴거리 등의 수요가 늘면서 층간소음의 증가 원인에 한몫하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오래전 층간소음으로 매일이 고단했던 적이 있다. 집에서 쉬는 게 쉬는 것 같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들려오는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내 귀에 콕콕 박힐 때마다 다급하게 이어폰을 찾았다. 혼자 사는 여자라는 이유로 선뜻 나서지도 못하고 조용히 숨죽이며 이웃들이 잠잠해지기만을 간절히 바라곤 했었다. 그러다 큰일이 한 번 생겼고, 그 뒤로는 꽤 잠잠해졌다. 사실 잠잠해졌다기보다는 내가 좀 무뎌졌다. 나의 예민한 청각이 만들어낸 부분도 없잖아 있을 테니 '그래, 사람 사는데 어떻게 다 조용하겠어'라는 생각으로 웬만하면 그러려니 하는 일들이 늘어갔다. 이사를 간다고 딱히 달라질 것도 없었다. 처음에는 이웃들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는데, 한참 층간소음과 관련된 정보를 찾다 보니 우리나라 건축물 구조상 단독주택이 아닌 이상 층간소음을 완전히 피해 가기란 어려웠다. 어느 정도는 그러려니(상식에 벗어나는 수준만 아니라면) 하고 사는 게 나의 정신건강에 여러모로 이로울 것 같았다.


그렇게 평온한 일상을 이어가던 어느 늦은 일요일 밤이었다.


쿵쿵쿵∼ 웅웅웅∼ 쿵쿵쿵~ 드르르르륵~!

온 방안이 흔들릴 정도의 묵직한 소음이 벽을 타고 들려왔다. 가만히 고개를 돌려 시계를 봤다.

12시 30분.

'이 시간에 이 소리가 가능해?'라고 잠시 생각하다 '그래, 가능할 수 있지'라고 애써 나를 다독이며 다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 또 그 소리가 시작되었다. 겨울이라 창문을 닫았더니 더 크게 울리는 것 같았다. 온 집안이 떠들썩해지는 느낌에 눈을 뜨고 머리맡에 스탠드를 켜 다시 시간을 봤는데, 4시다. 오후 4시 아니고, 새벽 4시!


그렇게 잠을 설치고 월요일을 맞았다. 하나도 개운한 것 같지 않은 기분에 졸린 눈을 비벼가며 회사로 향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월요병을 이겨내기 위한 잠깐의 이벤트였을 거라 굳게 믿고 오늘 밤은 부디 조용하길 바라며 말이다. 하지만 나의 작은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날부터 다시 악몽이 시작되었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도 어려웠지만 저 소리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지가 가장 궁금했다.


몇 날 며칠 이어지는 알 수 없는 소음은 점점 더 시간을 가리지 않았다. 밤 10시, 새벽 1시, 2시, 4시 등 대중없었다. 결국 참다못한 나는 용기를 내 관리사무소에 전화했다. 예민한 민원인 소리를 들을까 걱정도 됐지만 내 나름대로 참을 만큼 참았다 생각했고 추측건대 소리의 근원지는 꼭 옆집인 것만 같았다. 관리사무소 직원분과의 통화에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내가 전화를 했을 당시 직원분은 사무소 전화를 착신으로 걸어놓고 이미 소음의 근원지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는 것이다. 나처럼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의 민원이 나보다 먼저 지속적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 층뿐만 아니라 그 위층과 아래층 심지어 두 층 정도 차이 나는 곳에서도 민원이 들어오고 있다고. 그러니까 내가 사는 10층뿐만 아니라 9층, 11층, 12층에서도 이 소음으로 계속 민원이 들어와 찾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약 2주 정도가 흐른 지금도 여전히 근원지는 찾지 못했고, 간헐적으로 들려오던 그 소리 또한 여전하다. 그날 이후로 관리사무소에 다시 연락드리기도 죄송스러웠다. 이미 나 외에도 다른 입주민들이 지속적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꽤 오랜 시간 이 소리가 귀에 익숙해지면서 소리의 정체에 대해 그나마 추측한 건 안마의자 소리 같다는 것이다.


안마의자로 인한 층간소음과 관련된 내용을 검색해 보니 나와 비슷한 소음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경험담이 꽤 여럿 보였다. 한 기사에 따르면 경기 성남의 A아파트 커뮤니티에서는 “안마의자ㆍ운동기구로 추정되는 소음만 벌써 몇 시간째인지 모르겠다. 본인은 건강 증진에 만족하는지 모르지만, 그 소음과 진동을 감내해야 하는 이웃의 고통을 배려해달라”는 이웃 주민의 호소 글도 이어진다고 한다. 네이버에 '안마의자 층간소음 방지법'을 검색하면 의자 밑에 매트를 깔아 두기만 해도 그 소음이 덜하다고 하는데, 정작 당사자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의문이 생긴다.


한동안 잠잠하던 나의 층간소음 이야기가 다시 꽃을 피우는 중이라니 이게 다 무슨 일일까. 집은 가장 편안한 공간이어야 한다는데 요즘은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오래전 그때처럼 다시 무거워지려 한다. 사실 층간소음은 이웃들 간의 부주의함도 있겠지만, 잘못 자리 잡은 아파트 건축 구조의 오래된 폐해가 이제서야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건설사도, 시공사도, 정부도 우후죽순 아파트만 지어댈 것이 아니라 잇따르는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탁상행정이 아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