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어도 많은 것은 그대로이고 그렇기에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만이 최선인 걸 알면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다. 그때 불현듯 스치는 생각 하나. 아, 나는 불안해야만 하는 사람인 것일까. 불안을 찾아다니는 사람, 불만족을 바라는 사람. 늘 불만족이어야 하는 사람. 세상에 그런 걸 바라고 그런 사람이 있겠냐만은 생겨먹은 것이 그럴 수도 있으니까.
난 어떤 사람일까. 불안이 날 쫓아다닌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불안을 따라 다니고 있는 건 아닐까. 만족하며 살 수 있는데 내가 불만족만 따라다니는 건 아니냐는 말이다. 깊이 나를 들여다보는 밤이 지나간다.
<너무 솔직해서 비밀이 많군요> 손현녕
구독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중 <조승연의 탐구생활>이라는 채널이 있다. 여행, 취미, 요리, 역사 등 조승연 작가가 평소 좋아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고 다양한 삶의 양식을 배워갈 수 있는 채널이다. 조금 오래된 영상이지만 불안과 관련된 내용을 다룬 영상에서 말하길 과거에는 돈과 권력이 우선시되었고 뒤따르는 허망함을 경계했다면 21세기에는 지식과 경험에 대한 욕망이 그 두 가지를 대체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과거와 지금의 차이라면 우리는 돈과 권력의 허망함에 대해서는 익히 알아 경계하고 있지만, 지식과 경험의 중독이 종국에는 한 인간을 파멸로 몰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안한 사람들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늘 새로운 것을 찾고 그것에 깊이 몰입하는 그들의 열정이 성공을 불러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뒤에는 허무함과 지루함(인생은 어차피 다 비슷비슷하군)이라는 또 다른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클래식과 호기심의 균형이 좋은 인생의 밸런스라는 그의 결론을 반박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토록 안정감을 찾지만 막상 안정감이 주어졌을 때 지루함을 느낀다. 안정감을 온전히 누리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일까.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의 저서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자유가 주어졌음에도 누리지 못하고 불안감을 느끼며 어딘가에 다시 소속되고자 몸부림치는 사람들. 그들에게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들은 진정 자유를 원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자유를 원하고 있다 착각한 것일까.
나에게 불안함이라는 감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와 같은 관계다. 마냥 친한 친구는 아니고 애증의 관계 정도? 오죽했으면 내 일기장에 '불안'이라는 단어만 검색해 봐도 그동안의 기록들이 수두룩할까.
그래서 불안은 내가 평생을 안고 살아야 할, 잘 다스려야 할 소중하고도 위험한 감정이다. 이 불안함 덕분에 내 삶이 더 안정감을 얻을 수도 있고, 불안함 때문에 내 삶이 더 불행해질 수도 있다. 불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스리냐에 따라 내 삶의 경로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불안함이 한참 극도로 치닫던 시기에는 정신과를 다니며 약을 복용하기도 했었고, 주기적으로 상담을 받으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지금은 불안함과 안정감을 저울질하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중이다.
나는 어쩌면 지금껏 내 삶에서 스스로 불안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충분히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상황에서도 자꾸 뭔가를 찾았다. 혹시나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내가 실수한 것은 없는지 불안해했다. 그리고 새로운 불안함의 소재가 생겼을 때는 알 수 없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그래, 내 인생이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불안이 날 쫓아다닌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불안을 따라다니고 있는 건 아닐까"라고 말하는 손현녕 작가의 말처럼 다소 모순적이지만 어쩌면 나의 불안도 이와 비슷할지도. 그동안 나는 불안한 게 아니라 계속해서 불안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