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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Dec 17. 2022

고요함을 음미하는 감각

올해 나에게 가치 있었던 체험

최근에 '미소포니아'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 미소포니아(Misophonia)란 그리스어로 '혐오감'을 뜻하는 미소스(Misos)와 '소리'란 뜻의 포네(Phone)를 합친 말이다. 네이버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특정한 소리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청각과민증으로, 특정 소리가 지속적으로 반복될 때 고통을 호소한다고 한다. 또한 자신들이 민감해하는 소리를 들은 후에는 이 소리에 대응해 싸울 것인지(투쟁), 이를 피할 것인지(도주)의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사례를 찾던 중 올해 5월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서도 음악 감독 겸 뮤지컬 배우인 박칼린님이 비슷한 증상을 호소했던 방영분을 보게 되었다. 작은 소음에도 예민해서 잠을 잘 자지 못한다는 그녀의 고충에 오은영 박사님은 "소리에 예민한 사람들 중에 창의적이고 음악적인 면에서 재능이 있는 경우가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여러 소리 중에서도 반복되는 소리에 유난히 더 예민한 그녀는 은행에 갔다가 은행원이 펜을 딸깍거리는 소리에 그분의 손을 잡고 '제발 안 하시면 안 되냐'는 말까지 했다며 일상생활 속 어려움을 토로했다.


나 또한 청각에 예민한 편이다. 사실 청각뿐만 아니라 그 외의 다른 감각들도 전반적으로 다 예민한 편이다. 일상에서도 불특정 다수의 말과 행동들이 자극이 되어 파도처럼 밀려오곤 해서 되도록 센서를 꺼두려고 노력한다. 그중에서도 청각이 유독 예민한 편인데, 혼자 살고부터는 그 감각이 더 세밀하게 발달해가는 느낌이다. 층간소음은 한 번 귀가 트이면 그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한 번 트이기 시작한 나의 귀는 닫힐 줄 모르고 자꾸 열린다. 최근에도 지속적으로 들려오는 벽간소음에 지난 악몽들이 떠올라 두려운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집중력을 다른 곳에 쏟으며 애써 무시하고 나니 조금 괜찮아진 상태다. 청각과민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백색소음도 도움이 된다고 하길래 어제는 백색소음(비 오는 소리 좋아합니다)을 BGM으로 독서를 했더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이렇듯 소리에 유독 예민한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들이 있으니 바로 고요함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누군가는 주말 중 하루는 잠을 몰아서 자며 충전을 해야 몸이 다시 회복된다고 하던데, 내 경우에는 그게 고요함이다. 조용하고 안전한 공간에 나를 오롯이 놓아두는 것. 온전한 평안함을 누릴 수 있는 장소에 나를 넣어주는 것. 나에게는 그 시간들이 꼭 필요했고 그렇게 찾은 곳이 바로 <고원>이었다.


<고원>은 연희동에 위치한 작은 전시관이다. 그곳에서 진행하는 <고원 프로젝트>는 무대미술가 여신동의 '일상명상'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실제 작가의 작업실을 가상의 공간으로 치환하여 '지금의 나'라는 주제를 가지고 진행하는 약 한 시간 가량의 명상체험이다.

언덕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어 올라가는 길이 숨차기도 하지만, 그곳에 올라보면 왜 이렇게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지(이름처럼)를 새삼 느끼게 된다. 명상체험 과정 중 따뜻한 차를 마시며 서울의 전경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이 정말 평화롭고 좋았다. 마치 서울이 아닌 다른 장소에 와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명상은 아침, 낮, 저녁 이렇게 세 파트로 나눠 체험을 진행한다. 각 주제별로 여행자의 마음이 되어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는 체험을 하고 나면 한층 더 차분하고 평온해진 나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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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글을 쓸 때 가장 몰입도가 높다. 어떨 때는 글을 쓰는 과정이 하나의 명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청각에 그토록 예민한 나조차도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주변의 소음을 의식하지 못하고 글쓰기에만 온전히 몰입하게 되니 말이다(특히 대중교통에서 글을 쓸 때). 다 쓰고 난 뒤에 주변을 둘러보면 그제서야 막혔던 귀가 트이면서 주변의 소음들이 하나둘씩 귀를 타고 들어오는 느낌이다. 참 신기하지. 어쩌면 그래서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는 매 순간이 나에게는 명상체험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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