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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Dec 23. 2022

선생님 안에는 지금 무엇이 살아있나요?

비폭력대화를 배우는 시간

나는 연민에 머무를 수 있는 능력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연구하면서, 우리가 쓰는 언어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고 놀랐다. 그후로 나는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연민이 우러나는 유대를 맺는데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대화 방법(말하기와 듣기)을 고안해 낼 수 있었다. 나는 이 접근 방식을 비폭력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 NVC)라고 부르기로 했다. 나는 '비폭력'이란 말을 간디가 사용한 것과 같은 뜻으로 쓴다. 곧 우리 마음 안에서 폭력이 가라앉고 자연스럽게 본성인 연민으로 돌아간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는 전혀 '폭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말할 때에도 종종 본의 아니게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 대화 방법을 어떤 곳에서는 '연민의 대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비폭력대화> 마셜 B. 로젠버그


12월부터 새로운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한국비폭력대화교육원에서 진행하는 NVC 과정이다. 2004년 처음 출간된 이래로 지금도 여전히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고 있는 책 <비폭력대화>와 같은 내용의 수업이다. 비폭력대화 프로세스는 이 책의 저자인 마셜 로젠버그 박사(1934~2015)가 창안하고 발전시킨 대화법으로, 그는 세계 여러 곳에서 NVC 훈련과 국가 간 분쟁지역에서 중재자로 활동했다. 한국비폭력대화교육원은 평화롭게 소통하고 따뜻하게 연결되는 세상이라는 비전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NVC 전문가를 양성하는 곳이다. 단계는 NVC 1, 2, 3 이렇게 총 3단계까지 있는데, 이번에 내가 수강한 강의는 비폭력대화를 처음 배우는 사람을 위한 1단계 수업이었다.


로젠버그는 "인간의 본성은 서로의 삶에 기여할 때 기쁨을 느끼는 것"이라고 믿으며, 우리가 대화할 때 쓰는 말과 말하는 방법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를 깨달았다고 말한다. 즉 NVC란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우리의 본래 모습을 우리 자신에게 상기시켜주는 대화로 관찰, 느낌, 욕구, 부탁의 네 단계로 이루어져있다.


첫째, 관찰 (observation)

어떤 상황에서 있는 그대로, 실제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관찰한다. 나한테 유익하든 그렇지 않든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다.


둘째, 느낌 (feeling)

그 행동을 보았을 때 어떻게 느끼는가를 말한다. 아픔, 무서움, 기쁨, 즐거움, 짜증 등의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다.


셋째, 필요/욕구 (need)

자신이 포착한 느낌이 내면의 어떤 욕구와 연결되는지를 말한다. 다른 사람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의 욕구와 희망, 기대, 가치관이나 생각을 인정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느낌에 대해 책임을 진다.


넷째, 요청/부탁 (request)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해주길 바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막연하고 추상적이거나 모호한 말을 피하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말함으로써 긍정적인 행동을 부탁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참을 쓰다 보니 너무 이론적인 내용만 담지 않았나 싶다.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가보자면 12월부터 NVC 1을 온라인으로 수강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선생님, 수강생들과 Zoom으로 만나 수업을 듣고 있는데 꽤 어렵다. 아니 실은 많이 어렵다. 위에서 말하는 4단계를 내 스스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의 느낌과 욕구를 찾는 것만으로도 사실 벅차다.


그나마 비대면이라 방에서 편하게 앉아 수업을 듣고는 있지만, 주 2일 퇴근 후 3시간은 직장인에게 꽤나 고된 배움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수업은 선생님의 설명만을 주입식으로 하지는 않는다. 수업 중간중간 배운 내용을 적용하기 위해 수강생끼리 랜덤으로 조를 나누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기 때문이다. 덕분에 졸린 눈을 비벼가며 수업을 듣다가도 조를 나눈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들고, 일면식도 없는 수강생들과 제2의 방에서 또 다른 나눔을 가진다. 이 나눔의 시간이 어떤 의미로는 집단 상담의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사실 조금 재미있기도 하다. 우리 반은 총 15명 정도인데, 사는 지역도 다르고(제주도, 일산, 서울, 춘천 등), 나이대도, 직업도 다 가지각색이라 서로의 내면 이야기를 나누며 느낌과 욕구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알게 모르게 내적 친밀감도 쌓여가는 중이다. 은근히 서로의 삶을 응원하기도 하고 말이다.


흔히 비폭력대화는 기린의 언어라고도 말한다. 기린은 육상동물 중 심장이 가장 큰 동물인데, NVC에서는 가슴으로 연결되는 것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즉 공감과 연민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반면에 자칼의 언어는 우리가 자라면서 배운 습관적인 말을 뜻한다. 관찰보다 평가를, 가슴에서 나오는 느낌 대신 분석과 비교, 경쟁하는 말로 강요하고 명령하면서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다. 한 사람의 마음 안에는 기린과 자칼이 공존하고 있다는데, 나는 주로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수업은 이제 다음 주 월요일이면 종강이다. 선생님은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매일 이 질문을 하신다.


선생님 안에는 지금 무엇이 살아있나요?

우리는 매일 질문에 답하며 내 안의 진짜 느낌과 그에 따른 욕구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강의가 끝난 후에도 연습모임을 통해 삶에서 적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노트북 너머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사실 내년 1월부터 2단계를 이어서 들어볼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선생님은 당장 2단계를 듣는 것보다는 1단계의 과정이 삶 속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에 긴 텀을 갖고 다음 단계를 듣는 것이 좋다고 추천해 주셨다. 문득 이 수업을 처음 듣던 날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먼저 해주셨던 말씀도 떠오른다.


여러분,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어요.

비폭력대화라, 단어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정성스럽게 나누는 대화처럼 느껴진다. 수업과정도 이와 비슷하게 흘러간다. 눈을 감고 명상하는 시간도 가지고, 저마다의 삶을 나누며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한다. 우리는 비록 몸은 다 다른 곳에 있지만 마음만은 온라인상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끝으로 내가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욕구 목록 가치들은 다음과 같다.


배려, 존중, 이해, 공감, 수용, 지지, 감사, 사랑, 안정성, 정직, 진실, 효능감, 성실성, 꿈, 아름다움, 평등, 조화, 질서, 배움, 성장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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