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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Dec 25. 2022

나의 상처가 무기가 되지 않게

나의 흉터는 언제쯤 사라질 수 있을까

나의 유년기를 기억해 보면 여기저기 잘 다치고 넘어지기 일쑤였다. 동갑인 여자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보다 오빠 친구들과 함께 하는 활동적인 놀이를 좋아했던 터라 유독 더 다쳤던 것 같기도 하다. 몸도 건강하지 않은 애가 무릎에 상처를 하나씩 늘려갈 때마다 엄마의 한숨도 같이 늘어갔다. 한 번은 오빠와 오빠 친구들을 따라 공포체험을 하겠다고 겁도 없이 폐가에 갔다가 얼굴에 페인트를 맞기도 하고, 놀이터에서 술래잡기를 하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서 크게 다치기도 했다. 담을 넘겠다고 치마를 걷어붙이고 올라앉았다가 깨진 유리에 스쳐 무릎에 깊은 상처가 생기기도 했고, 학용품 칼로 친구와 장난을 치다 다쳐 손가락을 꿰매기도 했었다. 덕분에 지금도 다리에는 여기저기 흉터가 많다. 자라면서 자연스레 흐릿해졌으면 좋으련만 흉터들의 크기도 나와 같이 성장해 버렸다.


한창 허세와 객기로 가득했던 중고등학교 사춘기 시절에는 상처를 배틀처럼 자랑하기도 하고, 뭔가 사연 하나쯤은 간직한 사람이 더 있어 보이는 이상한 문화도 있었다(인터넷 소설의 폐해가 아닐까). '상처를 즐기다'라는 문구를 핸드폰 배경화면에 저장하면서 자의식 과잉의 오글거리는 면모를 마음껏 뽐내기도 했던 그때의 내 모습을 생각하면 이불킥은 덤이다(하하).


머리가 자라고 더 큰 사회로 발을 디디면서 상처는 늘어갔다. 허세와 객기로 가득 찬 상처가 아니라 진짜 상처들이 하나둘씩 늘어갔고 때로는 그 상처가 아물지 못해 깊은 흉터로 자리 잡곤 했다. 맞을수록 맷집이 생기면 좋으련만 이상하게 맞아도 맞아도 계속 아팠고, 되려 몸을 더 움츠리는 겁쟁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실 20대에는 잘 몰랐다. 어릴 때부터 차곡차곡 적립하듯 받아온 상처들이 지금까지 누적되어 있을 줄은. 휴면계좌에 쌓여있던 금액을 뒤늦게 발견하듯, 상담과 검사를 통해 잊고 있던 나의 상처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 나를 더 괴롭히기도 했다. 못 본 척 지나쳐가고 싶었지만,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그때의 일들을 애써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흉터는 아무리 가려도 가려지지 않는다. 약을 바르고 새살이 돋아야 비로소 그 상처가 온전히 치유되었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로 내 마음에 깊이 남은 상처의 흉터들은 아직 유효하다. 그리고 그 상처들은 가까운 관계에서 기인한 것이 많았다.


<젊은 ADHD의 슬픔>의 저자인 정지음 작가의 두 번째 에세이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에서 그녀는 우리를 미치게 하는 여러 관계에 대해 말한다.


나를 이기고, 상대방을 이기고, 내가 분노에 잡아먹힐까 걱정하는 주변인들을 이기면... 나는 내 좁은 세계의 왕이 되는 걸까?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게 될까? 하지만 싸우면서 승리해야 왕이 될 수 있는 거라면 계급에 구애받지 않는 평민으로 사는 게 나았다. 누군가와 몇 차례나 날을 세우며 깨달은 것은, 나쁜 마음엔 좋은 삶이 깃들지 않는다는 거였다. 착할 필요가 없듯 악할 필요도 없었는데. 고도의 미움으로 낱낱이 표현하는 것이 강점이라 착각했던 나날들이 뒤늦게 후회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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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받은 상처가 크다고 해서 그 상처를 상대에게 똑같이 돌려주겠다는 마음을 품고 싶지는 않다. 그 독한 마음을 품는 순간 가장 먼저 다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다. 나쁜 마음엔 좋은 삶이 깃들지 않는다는 정지음 작가의 말처럼 말이다. 눈에 보이는 상처는 치유가 가능하다. 흉터가 남더라도 서서히 옅어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는 알아채지 못한 채 곪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상담을 받을 때마다 "오늘 상담은 어땠어요?"라는 선생님의 마지막 질문에 나는 한결같이 대답했다. "저도 몰랐던 제 안의 상처들이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다는 걸 다시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럼 앞으로의 상담에서 그 상처들을 어떻게 하고 싶어요?"

"더 들여다보고 싶어요. 덮어두지 않고 천천히 꺼내면서 지금의 제 모습과 연결 지어 회복되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러면 그다음에는요?"

"잘 지내고 싶어요."

"누구랑요?"

"엄마랑요. 그리고 엄마와의 그릇된 관계에서 형성된 저의 일반화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지금의 주변 관계들은 어때요?"

"제가 항상 겁이 많아요.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도 많고요."

"앞으로 내민해씨가 사람들을 만날 때 조금 더 편안해졌으면 좋겠어요."




나는 어쩌면 엄마를 계속 오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상처를 줬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되려 상처를 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라는 종영 드라마를 정주행 했다. 그들은 몇십 년을 함께 한 가족이지만 타인보다 서로에 대해 더 모를 때가 많았다. 서로 몰랐던 비밀들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인물들은 혼란스러워한다. 그동안 자신이 다 알고 있다 생각했던 서로를 낯선 눈으로 바라본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는 과연 나의 가족들에게 어떤 딸이고, 어떤 동생이었을까.

우리는 지금 어디쯤에 서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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