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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Jan 27. 2023

또 좋은 곳을 찾았습니다

아 근데 서점은 아니에요.

나에게 주변 환경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청각에 예민한 편이라 소음이 심한 곳에서는 어떤 일도 집중하기 어렵다. 공간에 대한 애착이 꽤 있는 편인데, 좋았던 장소를 주기적으로 찾아가 그때의 기억을 복귀하는 것도 오랜 취미 중 하나다.

그중에서도 집이라는 공간은 내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이기 때문에 최대한 안락한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지만, 재작년 층간소음을 심하게 겪은 후로는 꼭 집에서만 안정감을 찾고자 하는 욕심을 버렸다. 오히려 그 욕심을 고집할수록 집이라는 공간에 집착하면서 층간소음의 공포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김소연 시인의 산문집인 <어금니 깨물기>에서 작가는 장소라는 말과 공간이라는 말을 구별해 장소애라는 표현을 쓰는데, 장소는 파괴되지 않지만 공간은 파괴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장소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어떤 천박한 상업적 거리에서 나는 더불어 천박해졌고, 어떤 케케묵은 골목에서 나는 더불어 케케묵어졌다. 장소 속에서 나는 하나의 닫힌 개체가 아니라 장소에 따라 동기화되는 미완의 개체였다. 하나의 장소와 연결된 내가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은 장소에 스며든 이야기를 감지한다는 것이었다. 이야기가 겹겹이 쌓인 어느 장소는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줌과 동시에 나에게 하나의 시를 불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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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그만큼 중요하다. 내가 어떤 장소에 얼마나 오랫동안 머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고 사람도 달라진다. 마음에 드는 장소는 오래 방문하고 싶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 공간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나를 꺼내주고 싶었다. 직장도 그랬고, 집도 그랬다.


그래서 내가 오늘 소개하고 싶은 나만의 특별한 장소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의 만화의 집이라는 곳이다. 나만이라고 하기에는 모두가 이용 가능하도록 열려있는 곳이지만 최근에서야 이곳이 좋아졌다. 회사 바로 근처라 오며 가며 보기는 했는데 웹툰 자체를 잘 읽지 않다 보니 딱히 발걸음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내가 참여하는 독서모임에서 우연히 웹툰모임이 열리면서 여차저차 이곳을 방문했었는데 생각보다 아늑한 이 장소에 마음이 녹아버렸다. "만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열려있는 모두의 만화 도서관!"이라는 소개 글처럼, 90년대 만화부터 최신 애니메이션까지 30,000여권의 자료를 무료로 열람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나는 이곳에서 몇 권의 웹툰을 읽으면서 만화라는 장르의 편견을 지울 수 있었으며 요즘은 퇴근길에 잠시 들러 내가 가져온 책을 이곳에서 읽다가 집에 가곤 한다. 만화책을 읽겠다는 목적보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로 나에게 안성맞춤인 곳이 되어버렸다. 보통은 퇴근 후에 고요한 공간에서 책을 읽다 집에 가고 싶을 때면 서점이나 북카페에 들르곤 했는데 회사와 근접한 곳에 이렇게 괜찮은 곳이 있다니! 심지어 무료. 요즘 내가 정말 애정하는 장소다. 오늘도 퇴근길에 이곳에 들러 내가 챙겨간 책을 편안한 의자에 앉아 1시간가량 읽다가 집으로 향했다. 번잡했던 회사 생활을 차분히 내려놓고 독서에 푹 빠져들기 정말 좋은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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