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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Jan 10. 2023

다락방에 놀러 오세요

책도 있고 커피도 있어요

2022년 12월 31일.

이제는 작년이 되어버린 2022년의 마지막 날 무엇을 하며 혼자 한 해를 마무리하면 좋을까를 곰곰이 생각하다 찾은 곳은 역시나 서점이었다.


캘리그라피를 여전히 배우고 있다. 매주 토요일, 일요일 중 일정이 되는 날에 맞춰 캘리공방을 가고 있는데 사실 집에서는 거리가 좀 있는 편이다. 31일도 캘리수업이 있어 갤릭시탭과 붓펜, 수첩 등을 챙겨 아침 일찍 집을 나섰고, 31일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한 나만의 공간으로 찜해둔 서점의 위치도 머릿속에 잘 넣어두었다.


이곳은 <새벽감성1집>이라는 작은 독립서점이다. 보통 독립서점은 공간이 협소해 책만 판매하거나 음료가 있어도 테이크아웃인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달랐다. 서점 소개에 보면, "독립출판물을 파는 독립서점이며, 조용한 다락방 공간에서 커피와 차, 맥주 등을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조용한 다락방이 있다는 점이 내가 31일의 마지막을 이곳에서 보내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서점을 찾아가며 이번에도 어김없이 여기저기를 헤맸다. 안 그래도 길치인 나는 주택가 골목에서는 유독 더 길을 못 찾는 것 같다.


1층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정말 작은 서점이었다. 그 작은 공간에 책과 책장, 카운터, 커피 머신, 다락방, 심지어 화장실까지 다 들어가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말이다. 서점 주인장님은 다정한 목소리로 나를 반겨주셨고, 나를 제외하고 한 명의 손님이 계셨지만 그분은 주인장님과 일면식이 있는 분 같았다. 나는 우선 음료를 시키지 않고 가만히 책장을 둘러보며 무슨 책이 있는지 이것저것 살펴보기 시작했다. 신간부터 시작해서 베스트셀러, 여행 에세이, 독립출판물 등 다양한 책이 종류에 맞게 꽂혀있었고, 책 중간중간에는 주인장님이 손글씨로 정성스럽게 적어놓으신 책 소개 문구들도 아기자기하게 붙어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다락방에 올라가서 읽을 수 있는 샘플북들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공유서재처럼 말이다. 나는 카운터로 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다락방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어야 했는데, 샘플북과 함께 조심조심 계단을 밝고 올라갔다.


와!

정말 탄성이 나오는 공간이었다. 테이블은 3개뿐이었지만, 정말 아늑하고 따뜻한 공간이었다. 은은한 조명과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누가 봐도 '여기는 다락방이야'를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아까 1층에서 주인장님과 대화를 나누시던 손님은 이미 올라와 계셨다. 낯선 손님(나)이 찾아온 게 오랜만인지 계단을 올라오는 내 모습을 보시고는 본인이 앉아있던 좋은 자리를 선뜻 비켜주시곤 이쪽으로 와 앉으라고 말씀해 주셨다. '아마 이 자리에 앉으시면 다음에 또 오고 싶으실 거예요.'라는 다정한 멘트와 함께 말이다.


내가 고른 책은 <있잖아, 다음에는 책방에서 만나자>라는 책이었다. 독립출판사인 새벽감성에서 출간한 책인데, 출판사 이름만 봐도  알겠지만 이 서점에서 운영하고 있는 출판사다. 실존하는 책방에서 실제로 일한 아르바이트생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쓴 이 책의 작가는 사실 이 서점의 주인장님 같았다.


김지선

여행작가로 불리던 때가 있었지만, 요즘은 책방 지기로 주로 불립니다. 커피를 좋아하고 맥주나 와인을 매일 마시며 고양이를 사랑하고 곰돌이가 필요해요. 다락방에 혼자 숨어 있거나 잔잔한 음악과 조명을 좋아해요. 사람이 많은 것보다 적은 것이 좋고, 책이 아니라 글이 좋으며, 유명한 작가보다 덜 유명한 작가가 친근하죠. 오늘만 살고 있지만 어쩌면 당신이 먼 훗날 꿈꾸는 내일을 미리 사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 다락방에서 꽤 오랜 시간 머물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커피를 마셨다. 다행히도 이 공간은 오래도록 머물러도 전혀 눈치 주지 않을 거라는 주인장님의 다정한 메시지가 벽에 붙어있다. 이렇게 좋은 공간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정말 다행이다(응?). 공간이 협소하고 조명이 어둡다 보니 지나친 애정행각은 금지라는 문구도 붙어있다(아니, 이 사람들!). 혹시 오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혼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해 본다. 세상과 단절된 채 고요하고 평온한 나만의 시간을 보내기에 이만한 장소는 없을 것 같은 정말 좋은 곳이다. 아 심지어 화장실도 따뜻하다(화장실에 꽤나 진심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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