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 문화도서관
손기정 문화도서관이 작년 11월 19일 다시 개관했다. 손기정도서관은 1999년 손기정기념공원 내부에 지어졌던 곳으로, 당시만 해도 작은 규모의 도서관이었지만 작년 리모델링을 통해 기존 규모에서 3배나 확장된 공공 도서관이 되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곳은 입구에 위치한 물의 정원과 이를 따라 조성된 산책길 프롬나드를 통해 독서와 사색을 동시에 즐길 수 있게 됐다. 도서관 내부 또한 곡선형 서가로 공간을 분리해 캠핑, 오래된 서점, 만찬 등 저마다의 독특한 테마를 갖고 읽는 재미와 보는 재미를 더한다. 공공 도서관이라는 기존의 딱딱한(?) 이미지를 탈피하고 색다른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사실 내가 자주 방문하는 도서관은 서울 시청에 위치한 서울도서관이다. 살고 있는 동네에도 도서관이 많지만 거리가 애매해 지하철 예약대출 서비스만 이용하고 직접 방문하지는 않는 편이다. 반면에 서울도서관은 퇴근길에 들르기에 접근성이 좋고, 다른 도서관들에 비해 꽤 재미있는 공간을 갖추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좌석은 계단석인데 주로 어린 자녀를 동반한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그곳에 앉아 책을 읽곤 하는데 나도 자연스레 합류(?)해 독서를 즐겼다. 서울도서관에서 나눔벗(자원봉사자)으로 활동할 당시에도 그 좌석 옆에 위치한 계단식의 서가 정리를 좋아했다(아이들의 책은 무겁지만 제목들이 귀엽지).
그리고 지난주 일요일 드디어 손기정 문화도서관을 찾았다. 이 도서관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후로 줄곧 가보고 싶었다. 원래도 길치인 나에게 이 도서관의 위치는 난이도로 치자면 상에 가까웠다. 손기정체육공원안에 위치하고 있어 막상 도착해서도 지도를 보며 한참을 헤맸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충정로역에서 출발해 걸어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가파른 데다 언덕도 많아 가는 중간중간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지도를 몇 번이나 확인하며 올라갔다(이렇게 또 근력운동을 합니다).
도서관에 처음 도착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생각보다(?) 작다는 것이었다. 사진으로만 봐왔던 터라 클 거라 상상했는데, 막상 입구에 도착해 보니 리모델링하면서 크기를 확장했다는데도 다른 도서관들에 비해 작았다. 심지어 1층은 카페처럼 되어있어 2층이 전부라고 할 수 있는데, 2층의 공간도 그리 넓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너무 촘촘하게 좌석이 배치되어 있어 모르는 사람과 같은 의자(라고 쓰고 소파라 부른다)에 앉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다양한 테마가 주는 이색적인 분위기는 누군가의 집을 방문한 듯한 느낌에 살짝 설레기도 했다. 책의 종류가 많지는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서가 분류번호 800번대의 813.6을 가장 먼저 훑어내려 갔다. 아는 작가들의 신간들이 눈에 띄기도 했지만 선뜻 꺼내보지는 않고 앉을자리를 찾기 위해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개인적으로는 창가 쪽에 위치한 1인 좌석이 가장 마음에 들었지만 날씨가 날씨인지라 차가워 보이는 의자와 탁자 앞에서 잠깐 망설이다 발걸음을 돌렸다. 결국 내가 고른 자리는 서가 구석 쪽 의자 없이 방석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동굴 같은 곳이었다.
나에게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대출하는 곳뿐만 아니라 책 읽는 문화를 경험하고 사유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단순히 그 공간 안에 나를 넣어주는 것만으로 찾아오는 안온함이 있는 것이다. 바스락거리며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소곤소곤 대화하는 사람들의 조심스러운 목소리, 사뿐사뿐 발걸음, 오래된 책에서 느껴지는 고유한 냄새 등 적당한 느림의 감각들로 가득한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나의 방문은 방문 하나만으로도 의미가 충분했다. 이 문장을 굳이 쓰는 이유는 이 도서관을 다시 방문하는 일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 도서관의 존재를 알고 난 후부터 계속 관심이 생겼지만 막상 와보니 기대와 다른 부분들도 많았고, 그 부분들이 나의 발걸음을 다시 이곳으로 끌어당기지는 못할 것 같다.
조금 덧붙여 보자면, 사실 손기정 문화도서관에는 공부하는 사람들만 너무 많았다. 독서실 분위기마저 풍기는 이곳이 과연 도서관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자꾸 올라왔다(제가 너무 고루한가요). 정작 책을 읽는 사람보다 독서실에 온 것처럼 짐으로 자리를 맡아둔 사람들,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심지어 자리 잡고 주무시는 분들도). 안 그래도 지난달에 마포중앙도서관의 예산을 내년부터 30% 삭감하고 공립 작은도서관을 스터디 카페로 바꾸겠다는 마포구청장의 발언이 논란이 되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사실상 '작은도서관'을 폐관하고 작은도서관 내 독서실(스터디카페)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부모들이) 마포를 떠나는 이유가 아이들이 좋은 대학을 못 가기 때문에 그렇다… (고교생들에게) 돈도 안 들어가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잘 만들어주자, 이게 제 목적”이라는데, 거 참. 공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책을 읽고 나누는 문화는 지식을 쌓는 것을 넘어 삶에 다양성을 폭넓게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지적 자산인데, 이 무슨 궤변인지. 참 씁쓸하다.
근데 생각해 보니 이 매거진은 독립서점을 방문한 기록들을 차곡차곡 쌓으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첫 편이 도서관 방문기가 되어버렸다. 뭐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겠어. 다 책 읽는 공간의 기록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