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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Mar 29. 2023

저 선생님 이름 기억하고 있어요

20년도 더 지난 이야기

"그 학교 운동장이 창원에서 제일 크다고 하던데?"


어린 나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엄마에게는 그저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치부되는 이 상황이 나는 못마땅했다.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요. 엄마.'


전학을 간다. 물론 이사를 가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와는 상황 자체가 달랐다. 서울에 살다가 처음 창원으로 이사 왔을 때만 해도 지금보다 어렸고, 초등학교에도 입학하기 전이라 적응기가 그리 길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내 단짝인 태양이도 함께 있었기에 낯선 창원의 문화가 마냥 낯설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4년 동안 이 학교에 얼마나 정이 많이 들었는데, 전학이라니! 이제 학교 뒷동산에서 나물 캐는 것도 못 하고, 주말 밤에 학교 운동장에 삼삼오오 모여 귀신놀이 하겠다고 학교 창문을 몰래 넘어 다니던 것도 못 하고, 각자의 역할이 다 정해져 있었던 선생님 놀이도 못 하고, 아니 다른 걸 다 떠나서 지금 내 친구들이랑 얼마나 끈끈한데 전학이라니! 나와 두 살 터울인 오빠는 6학년이라 전학을 가기가 애매해 등하굣길이 꽤 멀지만 1년만 버텨보자 했고, 4학년이었던 나만 결국 인생 처음으로 전학이라는 것을 갔다.


모든 게 낯설었다. 전학생이 왔다는 소문에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들이 부담스러웠다. 나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지나치게 쏟아지는 호의와 관심에 넋이 나갈 것 같았다. 첫날의 관심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부탁한 적도 없는 학교 소개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아이들부터 시작해서 "우리랑 같이 놀래?", "우리 쪽에 끼워줄게" 등 각종 멘트로 나를 무리에 넣어주려는(?) 호의가 마냥 달갑지만도 않았다. 하지만 혼이 나갈 것 같았던 전학 첫날이 지나고, 나를 향한 아이들의 관심도 차츰차츰 줄어들었다. 첫날의 친절이 무색할 만큼 다시 아이들은 각자가 정해진 그룹 안에서 놀기 바빴다. 처음과 온도차가 너무도 컸던 터라 내가 그들의 문화에 적응하는 속도는 점점 더뎌져갔다.


방학만 손꼽아 기다렸다. 방학이 되자마자 원래 다녔던 학교의 친구들과 다시 만나 노는 일상이 반복됐다. 하지만 그 친구들도 새 학기에 만난 새 친구들과 놀기 바빠 나와의 관계는 점점 소원해져 갔다. 나는 이곳에도, 그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새로 이사 온 집은 여전히 낯설었고, 가족들은 나의 이런 공허함을 공감해 주지 못했다. 개학이 다가올수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밀린 방학숙제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해치울 수 있는 일. 정작 중요한 건 어느 곳에도 마음 두지 못하고 방황하는 나였다. 2학기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나는 이 학교가 언제까지 낯설고 차갑게만 느껴질까. 걱정은 늘어갔고 개학일이 다가왔다. 전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나는 흐리멍덩한 상태로 아침을 맞았다. 체구가 작아 나보다 큰 가방을 등에 짊어지고 가방보다 더 무거운 발걸음을 터벅터벅 학교로 옮겼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아빠도, 오빠도. 이 학교에 마음 둘 곳이 없다는 게 사무치게 외로웠다. 그때 나의 은사님을 만났다. 항상 나를 신경 써주셨는데, 그때는 정작 몰라봤던 나의 4학년 담임 선생님을 말이다.




놀라운 사실은 20년이 훨씬 더 지났음에도 엄마가 여전히 그 선생님을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전학생인 내가 반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방황하고 있다는 걸 유일하게 알아보셨다. 뒤에서 묵묵히 챙겨주실 때가 많았는데 정작 나만 몰랐다. 그저 '선하고 따뜻한 선생님이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지, 당시의 나에겐 또래집단이 더 중요했다. 선생님의 자상한 챙김을 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선생님이 나에게 베풀어주셨던 다정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됐다. 그때는 어려서 핸드폰도 없었기에 지금은 선생님의 연락처조차 남아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우스갯소리지만 'TV는 사랑을 싣고'가 종영하지 않았더라면 출연이라도 해보고 싶은 심정이다. 선생님은 그때의 나를 기억하고 계실까. 키가 작아 조회 시간이면 항상 맨 앞에서 세 번째에 서 있었던 그 꼬마 아이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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