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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Mar 22. 2023

나는 나랑 가장 친한 줄 알았는데

"여러분은 스스로를 알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 편이세요?"


올해 초 독서모임에서 모임장님이 우리에게 건네셨던 질문이다. 평소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생각하는지 혹은 스스로를 알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노력하지 않는다는 분들도 계셨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알아간다는 분들도 계셨다. 그 가운데서 나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저를 많이 좋아하거든요."라는 자기애 충만한 문장을 시작으로 장황한 나의 입장을 밝혔다.


나는 나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를 알아가는 것도 좋아한다. 스스로를 제대로 알아야 타인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지고 세상을 좀 더 힘 있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보는 세상이 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 하나쯤은 제대로 알아야 나라는 필터를 거쳐 바라본 세상을 제대로 인식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다 떠나서 일단은 내가 살아야 남도 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알아가기 위해 여러 가지 것들을 한다. 가장 크게는 글쓰기가 있겠고, 그다음으로는 생각 정리와 독서, 전문적인 검사와 상담, 나만의 취향 알아가기, 관심 있는 분야는 흘려보내지 않고 교육을 받거나 경험을 하면서 내 것으로 만들어보기 등등. 그렇다면 이제 내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나를 알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냐고 말이다.


"저는 제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지려고 노력해요."


다소 추상적인 이 답변을 어떻게 글로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사실 저 문장만큼 잘 담아낼 수 있는 것이 없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나의 감정과 마음 상태를 자주 물어보고, 나만의 예민한 감각으로 몸의 건강상태 또한 자주 체크한다. 몸의 건강과 마음의 건강을 둘 다 챙기고 싶은 욕심과 민감한 나의 센서가 결합하여 서로의 기대치를 적절하게 충족시키는 꽤나 만족스러운 과정이다. 그만큼 나는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누구보다 잘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자신 있게 답했다. 하지만 독서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런저런 생각이 또 많아졌다. 모임에서 그토록 자신 있게 답을 하는 과정에서 내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쩌면 정형화된 틀과 보편적인 언어 안에 의존하고 있지는 않았나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를테면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 심리 서적과 강의, 전문지식을 찾아보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여러 검사들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전문가의 목소리 또한 마찬가지다. 어디까지가 맞고, 어디까지가 틀린지, 어디까지 믿기로 했는지에 따라 사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많이 달라질 수 있는데, 나라는 사람이 어떤 형태인가를 자꾸 찾고 정의 내리다 보면 그 안에만 갇혀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는 회피형이라, 나는 내향적이라, 나는 예민해서 등등 나라는 수식어를 자꾸 만들다 보면 취향은 확실하지만 그 취향이 내 전부라 생각해 버릴지도 모르니 말이다. 나라는 복잡한 인간은 실은 보여지는 것보다 더 구체적으로 복잡하고 구제불능인데 그걸 다 알기도 전에 가능성 자체를 스스로 닫고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지금껏 나를 표현하는 키워드는 많았다. 심지어 나는 수집도 하고 있다. 그걸 정리하면 할수록 되려 내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모든 게 다 꼬여버린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내 인생 평생의 숙제는 타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의 관계가 아닐까. 나를 정의하는 수식어들을 기반으로 한 오만함을 내려놓고 말이다.





오늘 드디어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러시아 소설을 완독했다. 장장 3개월에 걸친 긴 프로젝트를 일단 먼저 마무리한 것이다. 이제 이번 주말이면 그 프로젝트를 위한 마지막 모임이 열린다. 3권에 걸친 방대한 양의 러시아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느낀 건 도대체가 여기 등장하는 인물 중 누구 하나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다 이상해). 심지어 등장인물도 많은 데다 이름도 길어서 허우적대며 겨우 읽어낸 듯하다(이건 읽은 게 아니라 읽어낸 거다. 해냈다!). 역시 고전은 한 번에 이해하기가 늘 벅차다. 그래서 고전인가, 그래서 그토록 유명한 책인가 싶기도 하다. 1권을 읽고 어리둥절하다가 2권을 읽고 '오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였지만, 3권을 읽고 '응?' 하며 마무리됐다. 고전은 여전히 어렵고 나라는 인간도 여전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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