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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Apr 08. 2023

사람을 더 깊이 알아가고 싶다


사람이 미래다

모 기업의 꽤 익숙한 슬로건이다. 치열한 스펙 쌓기로 불안해하던 청년들에게 따뜻한 감동을 준 한 문장. 이제 이 기업은 재정적으로 많이 어려워졌고, '사람이 미래다'라는 슬로건도 다 옛말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당시 한참 취준생이었던 나는 사람을 중시한다는 그 기업의 가치관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성과중심, 능력 중심, 기업 목표만을 외쳐왔던 여타 기업들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취향 존중이라고 자고로 사람이 중요해진 시대다. 획일화된 하나의 방법에 줄을 세우고 이탈하는 자는 이방인 취급당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우리는 다양한 각자만의 선이 존재한다. 그 선은 줄기처럼 여기저기로 거침없이 뻗어나간다. 바야흐로 소수 취향이 존중받기 시작한 것이다. 목소리가 작아 소곤소곤 자신의 이야기를 속삭이던 이들도 조금씩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게 소수가 모여 다수가 되고, 그 다수는 힘을 얻어 또 다른 소수를 존중하는 문화가 도래하고 있다.


나는 그 소수 중에 한 사람이었다. 본디 사람을 좋아했으나 사람을 두려워했다. 세상에는 목소리(만) 큰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고, 그 소음 속에서 내 목소리를 내지 못해 꽁꽁 숨어버렸다. 그렇게 난 사람을 좋아했지만 사람을 두려워했다. 경계심이 지나쳐 말을 아끼고 회피하면서 사람들과의 접촉점을 줄여나갔다. 그 모든 게 나에게는 다 자극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사람이 좋다. 개개인이 품고 있는 서사들이 특별하고 귀하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는 이들의 표정과 말투, 몸짓 하나하나가 참으로 경이롭다. 그래서 사람이 좋다. 그 고유함이 좋아서, 특별해서, 나와 달라서 말이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그 고유함이 무서워지기도 했다. 자신만의 세계가 너무도 견고한 어떤 이들은 자신과 다른 이들을 자꾸 바꾸려 들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라는 주장만을 앞세우는 이들과 접점을 찾아가기란 계란으로 바위 치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급기야는 자신들을 납득시켜 보라는 듯한 그들의 일방적인 태도가 폭력적이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을 좋아했지만 더 다가갈 수 없었다. 다가갔다가 더 크게 다쳐서 동굴로 숨어버릴 내가 걱정돼 호기롭던 모습에서 방패만 하나하나 늘어갔다. 점점 더 크고 튼튼한 방패로만.


책을 좋아한다. 책을 좋아해서 독서모임도 좋아한다. 매주 독서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나의 오래된 루틴 중 하나다. 시점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못해도 7~8년을 될 것이다. 그 기간 동안 한 곳에만 정착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나름의 이동(?)이 있었다. 흔히 책 많이 읽는 사람에 대한 지식인으로서의 소양을 기대하던데, 나는 오랜 기간 독서모임에 참석하면서 깨달았다. 너무 많은 것을 읽어서 더 이상한 인간도 많다는 것을. 저 사람은 차라리 책을 읽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위험한(?) 사람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편향된 독서를 이어가는 느낌마저 들어 무서웠다.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하고, 심지어 그것이 진리라는 듯 외치는 이들의 오만함에 점점 환멸을 느꼈다. 그래서 기대치를 버렸다. 책 많이 읽었다고, 책 좋아한다고 다 지적 소양을 갖췄을 거라는 착각을 일찍이 접어버리니 마음이 편해졌다.


모임을 지속하다 보면 정말 이상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오고 가는 이들의 돌발적인 말과 행동에 화들짝 놀라기도 여러 번,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모임장님의 고충을 다 헤아리려면 일개 회원인 나의 놀람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갱신된다. 무엇이? 새로운 인간의 유형이.

작년에 흥미롭게 봤던 <알쓸인잡>에서도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있다. 프로그램을 시작할 당시 예고편에서 김영하 작가가 뱉은 멘트도 주옥같았다.


늘 흥미롭다, 인간이라는 작은 지옥은

나는 이 프로그램을 매회 챙겨보지는 못했지만, 짬짬이 클립 영상을 보며 출연진들의 지적인 담론을 통해 내가 몰랐던 또 다른 유형의 다양한 인간군상을 끊임없이 배워갈 수 있었다.


사람은 알면 알수록 끝이 없는 존재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그렇다. 나를 다 안다고 자신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고, 끝없이 변화하는 나의 모습을 내가 제대로 인지하고 다듬는 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숙제다. 다른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는다. 뿌리는 같지만 나는 계속 성장하는 사람이다. 그 성장의 길이 올바르려면 내가 나를 자주 들여다보고 이 길이 맞는지를 주기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멀었고, 앞으로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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