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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May 30. 2023

여름씨, 이번에는 또 얼마나 더울 생각입니까

왜 그렇게 여름이 좋냐는 질문 앞에서는 늘 대답이 궁금해진다. 그렇지만 그냥,이라고 얼버무리기에 여름은 그렇게 단순하게 넘겨버릴 게 아니어서 그럼 한번 써볼까, 했다. 마치 여름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처럼, 여름이 좋은 이유에 대해 써보는 거다. 나는 너의 이런 점이 좋다. 그래서 좋아. 별로일 때도 있지만 결국은 좋아. 1년 내내 여름만 기다리며 사는 사람으로서 내 여름의 기억과 취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었다.

<아무튼, 여름> 김신회



사계절 중에 가장 싫어하는 계절을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여름이라 답한다. 여름은 일단 덥고, 덥다. 그리고 덥지. 습하고, 습하다. 그리고 습하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벌레들과의 만남도 유독 많아지는 계절이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그들과 마주하는 순간 비명은 덤이다. 화들짝 놀라 소리 지르는 내 모습에 엄마는 되려 "걔들이 너 때문에 놀라겠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신다. 도시에서 자란 나와 달리 시골에서 나고 자란 엄마는 다리가 네 개 이상인 벌레들의 낯선 모습에도 꽤나 친숙한 반응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그래, 이것 말고도 여름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그리고 작년 이 무렵이었을 것이다. 올해의 여름은 역대급으로 더울 것이라는(매년 같은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기상청의 예보에 잔뜩 겁을 먹고, '조금이라도 여름을 좋아할 구실을 찾아보자!'라는 마음에 김신회 작가의 <아무튼, 여름>을 집어 들었던 때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실패였다. 1년 내내 여름만 기다리며 사는 김신회 작가의 여름 예찬론을 하나하나 반박할 만큼 내 논리는 명료하지 못하다. '싫은데 이유가 필요해? 그냥 싫은 거지.'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여름이라는 그 쨍한 느낌이, 빨갛게 타오를 것만 같은 강렬함이 부담스러웠는지도.


김신회 작가는 '여름'만 떠올리면 무작정 가슴이 뛴다고 말한다. 생각만으로도 얼굴 근육이 풀어지고 두 눈이 가늘어진다고 말이다. 그런 그녀의 애정 어린 마음과 달리 그녀의 여름은 그녀에게 그리 관대하지는 못했다. 돌이켜 봤을 때 흑역사만 한가득이라고 하니, 그녀의 진심이 꼭 닿아야만 하는 건 아닐 테니까. 그럼에도 그녀는 여름을 좋아... 아니, 사랑한다. 여름에만 할 수 있는 것, 갈 수 있는 곳, 먹을 수 있는 것, 입을 수 있는 것 등 그녀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여름 안에 있었다. 그녀에게 여름은 그토록 특별한 계절이었다. 나와는 정반대로 말이다.


나의 지난 여름들을 떠올려본다. 작년, 재작년, 그리고 재재작년까지도. 멀리도 갔다. 그래도 다시 생각해 본다. 더웠지만 상쾌한 일들도 많았다. 어떤 인연은 여름에 떠나갔고, 또 어떤 인연은 여름에 다가왔다. 어떤 여름은 유난히 빛났고, 어떤 여름은 유난히 힘이 없었다. 꼭 여름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나라서, 나였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다. 내가 여름을 너무 미워했던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여름이 좋은 이유를 조금 나열해 보고자 한다. 우선 첫 번째로는 옷이 가볍다. 나는 사실 봄옷보다 여름옷을 더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색상 때문이다. 퍼스널 컬러가 딥윈터인 나는 봄에 유행하는 컬러와 피부 톤이 정말 안 어울린다. 파스텔톤 계열의 옷을 잘못 입었다간 얼굴과 옷이 분리되어 보이는 기괴한 모습을 연출하곤 하니 이거야 원. 그런 의미에서 여름옷은 색이 조금 진해도 괜찮다. 원피스 하나만 잘 입어도 느낌 있게 코디가 가능하다. 거기다 액세서리와 패디까지 내 스타일로 맞춰주면 꾸안꾸의 정석 같은 느낌이 들어 썩 괜찮아진다. 겹겹이 껴입어도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를 막을 수 없는 겨울과는 사뭇 다른 산뜻함이 여름에는 존재한다.


두 번째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나는 계절이다. 바로 복숭아. 나는 복숭아를 정말 좋아한다. 말랑이와 딱딱이 중 딱딱이를 좋아한다. 식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물렁한 과일은 좋아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는 홍시와 포도, 망고, 바나나 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에 복숭아, 특히 딱딱한 복숭아는 그 특유의 아삭거리는 식감이 좋다. 너무 딱딱하지도 물렁하지도 않은 적당한 느낌과 빨강과 분홍, 흰색이 조화롭게 섞인 색감도 먹음직스럽다. 잘못 사면 떫은맛이 나는 복숭아도 종종 복불복으로 당첨되곤 하는데, 그 맛도 썩 나쁘지 않다. 약간 쓴맛 같기도 한데 나는 쓴맛도 좋아하니까.


세 번째로는 밝다. 밝다 못해 뜨거울 정도. 비단 날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어떠한 열기 같은 것인데, 굳이 비유하자면 겨울은 느릿하고 여름은 빨라진다. 다그치는 듯한 빠름이 아니라 뭔가 더 열정이 넘친다. 땀범벅이 되어도 그 열정에 푹 빠져있으면 그마저 반짝거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시원한 해변가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청년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청량감은 늦은 새벽 홍대 거리를 쏘다니던 나의 20살을 떠올리게 한다.


막상 적어놓고 보니 내가 여름을 좋아할 이유도 나름대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다가올 여름을 마냥 걱정하지만은 않아도 될 것 같다. '싫은데 이유가 어디 있어. 그냥 싫은 거지'라고 읊조리던 여름을 향한 나의 비뚤어진 마음을 다시금 설렘의 궤도에 올려놓아 본다.


여름아, 부탁해.

이번 여름은 적당히 더워주길.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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