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때가 되었다
그냥 내게는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확신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무심코 확신했다가 기대처럼 되지 않으면 구제할 수 없을 정도로 절망해버린다. 내겐 그런 습관이 있다. 정말로 사소한 일에도, 그러니까 포카리스웨트를 마시고 싶어서 자판기에 돈을 넣었는데 실수로 데자와를 뽑았을 경우에도, 나는 지하철 플랫폼에 앉아 울 정도로 절망한다. 그런 절망에서 빠져나오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나는 절망하지 않는 법을 그럭저럭 찾아냈다. 포카리스웨트 버튼을 누를 때부터 데자와나 콜라가 나올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완벽한 방법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처음부터 별로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다.
<골목의 조> 송섬
원래는 정리하는 습관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초점이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꽂혀버렸다.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정리하는 쪽으로 말이다.
얼마 전 오래된 관계를 정리했다. 사실 그전부터 알게 모르게 균열의 조짐이 보였지만 못 본 척 무시해 왔었다. 오래된 관계라는 이유만으로 애써 그 일들을 무마시키려 노력했다.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정이 있지, 설마 우리 관계가 끊어질 거라고는...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갓 스무 살이 된 우리는 대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초중고 시절에는 앞자리나 옆자리인 경우 쉽게 친해지고 그룹이 형성됐는데, 대학은 조금 달랐다. 전공이 같아도 서로 모르는 이들이 많았고 강의를 들을 때도 원하는 자리에 자율적으로 앉아야 했기에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그렇게 혼란한 와중에 그 아이들을 만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의 14년 지기였던 20살 친구들을 말이다.
오래된 관계를 하나씩 정리할 때마다 나의 기대치에 대해 생각했다. 흔히 말하는 오래된 관계에서 오는 익숙함과 편안함에 대해서도 말이다. '오래된 관계'라는 타이틀에서 주는 단단함은 자칫 잘못하면 무례함으로 선을 넘는다. 누군가는 그걸 눈치채지 못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눈치채도 관계란 다 그런 것 아니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인생사 원래 다 그런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걸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느슨하다 못해 소홀해지는, 더 나아가서는 성의가 없어지는 이들의 모습에 점점 실망감을 키우다 종국에는 그 관계를 끊어내고야 말았다. 이 비유를 여기에 써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물건을 정리하는 것처럼 사람을, 더 정확히는 그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해야만 했다.
불필요한 관계들, 아니 사실 불필요함을 넘어 독이 되는 관계들, 나를 잠식시키는 관계는 끊어내야만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발목을 세게 움켜쥐고 나를 끌어내리는 것만 같아서 나는 그들을 뿌리치려 발버둥 치다 끝내 '차갑다', '모질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그 관계를 종결할 수 있었다. 좋은 말로 끊어내려 할수록 나를 더 설득하려 드는 그 말들이 싫었다. 그 말을 꺼내기 전부터 우리는 서로에게 예의를 갖췄어야만 했다. 진심과 정성을 다했어야만 했다. 어떤 말은 말을 해야만 알아들을 수 있는데, 그 말을 계속해야 하는 사람이 나뿐이라면 나도 더 이상 그런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힘을 쏟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관계를 끊어내고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미련이 남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처음부터 별로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다는 <골목의 조> 송섬 작가의 말처럼, 기대하지 않는 법을 꾸준히 연습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설레고 기대하며 마음을 점점 키워가다 이내 실망하고, 종국에는 작별을 고하는 관계 맺음의 반복이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다행인 건 장담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관계란 것도, 인생이란 것도 늘 내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을뿐더러, 언제든 변하고 바뀔 수 있다는 열린 결말을 심어둔 셈이다.
반면 자주 만나거나 연락하지는 못해도 숨김없이 믿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신의를 바탕으로 맺어진 관계이다 보니 애초에 편안하고 무리가 없다. 남자든, 여자든 성별은 상관없다. 왜 신뢰감을 느끼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상대가 본질적으로 '괜찮은'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해심이 깊고, 포용력이 있고, 입이 무겁고, 편견에서 자유로우며, 인생 경험이 많다. 나이와 상관없이 정신적으로 어른인 사람들이다. 내가 만나본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대부분 독립적인 개인이었고, 자신의 소신이 있는 만큼 타인의 다양한 생각을 존중할 줄 아는 유연한 자유주의자들이었다.
<자유로울 것> 임경선
이제 나는 떠나간 관계를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어떤 관계는 떠나는 과정이 후련하기도 했지만, 또 어떤 관계는 심장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프기도 했다. 하지만 독이 되는 관계를 무작정 붙잡을 수 없었고, 더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 대한 낯섦도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들어왔다 나가는 이들의 반복되는 모습에 조금은 덤덤해지되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그 관계를 잘 이어가기 위해 다시금 노력했다. 임경선 작가는 좋은 사람들과의 새로운 관계를 이렇게 묘사한다. "그들과의 만남은 어디까지나 양보다 질이고, 피상적이고 공허한 수다보다 본질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라고 말이다. 물론 지금의 관계도 어쩌면 언젠가 이별을 맞이할지 모른다. 사람 일이라는 게 알다가도 모를 변수가 많으니까. 심지어 내가 매주 참석하는 독서모임의 모임장님도 우리에게 늘 하셨던 말씀이 '수 틀리면 안 볼 사람들'이었다. 그 말은 어차피 안 보면 그만! 이 아니라, 수 틀리면 안 볼 사람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수가 틀리지 않도록 만나는 동안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의 마음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다만 한 가지 마음 아팠던 건 어제부로 그 수가 틀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모임장님 때문이 아니다. 내가, 결국 내가 다 망쳐버렸다.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일이었기에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이 여전히 아리다. 헤어진 누군가 때문이 아니다. 그 누군가로 인해 아끼던 모임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들 때문이다. 덕분에 요즘의 나는 혼란함을 잠재우고자 읽고 걷고 쓰는 일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했다. 특히 걷기 같은 경우 몸을 거의 학대한다 싶을 정도로 무리하는 것 같은데 멈추기가 어렵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머리가 온통 생각으로 가득 차 펑하고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니까.
그래서 앞으로는 새롭게 다가오는 어떤 관계에도 '평생'이라는 단어를 달지 않기로 했다. 언제든 정리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돈벌이를 제외한 모든 관계에 위계질서를 넣고 싶지 않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관계는 헤어짐이 두려워 망설이기보다 미련 없이 정리할 수 있는 단단함을 갖고 싶다. 관계를 소홀히 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우선 나부터 그 관계에 진심을 담고 진정성 있게 대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끝내야만 하는 관계라면 그 관계는 끝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나 또한 언제든 정리될 수 있다는 전제를 갖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