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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Jul 17. 2023

길치에 의한 길치를 위한, 긴 변명

나는 길치다. 초행길이면 어김없이 이 단어를 뱉어내곤 해서 내 길치 역사의 시작이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차만 타면 멀미 때문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나와 달리 오빠는 달리는 차 안에서도 온 신경이 차창 밖을 향해있었다. 점점 더 나이가 들고 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아빠와 머리를 맞대고 지도를 보며 우리가 갈 길을 의논하기도 했다. 그만큼 오빠는 길눈이 밝았고 나는 애당초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지금도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갈 때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길잡이는 오빠의 역할이다.


길치라는 단어를 이렇게 연결 지어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나는 학창 시절에도 한국지리, 세계지리 등 지리와 관련된 과목들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근데 내가 길치라 그걸 안 좋아하는 건지, 좋아하지 않아서 길치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비슷한 예로 에세이는 좋아하지만 여행 에세이는 지금도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다. 유명한 관광지를 방문하고 명소를 하나하나 나열하는 저자의 생각 흐름이 쉽게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을뿐더러 익숙한 장소에서 안정감을 찾는 내 방식과는 사고가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길치일 수밖에 없는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 붙이고 싶지만, 사실 가장 솔직한 이유는 그냥 내가 길치라서, 길치니까, 길치란 원래...로 시작되는 전제일지도 모른다. 길치의 변명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냥 길눈이 어두운 것뿐인데 사실 내 길눈이 어려운 건 이러쿵저러쿵 구시렁구시렁. 다 부질없다. 나는 그냥 길치다. 근데 그 앞에 이 수식어가 꼭 따라붙는다.


용감한



그렇다. 무식한데 용감하다는 말이 있듯이 나는 모르면서 무척이나 용감하다. '가다 보면 나오겠지', '적어도 오늘 안에는 도착하겠지'라는 호기로운 모습이 자꾸 나온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잃어도 지도를 잘 못 봐도 이 또한 경험이고 추억이란 생각에 이곳을 걷는다는 자체를 즐거워하는 사람.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이건 혼자일 경우에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야 길 잃는 게 익숙하지만, 상대는? 상대들은?


팀에서도 가끔 워크샵을 갈 때면 길도 잘 모르는 내가 단지 걸음이 빨라서 어느 순간 앞장서게 되기도 하는데 문제는 팀원들도 내가 길을 알고 앞장 서가는 것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한참 가다가 '이 길이 아니군'이라는 생각에 구박을 받고 코스를 재조정당한다. 우리의 인도자도 길눈이 밝은 사람으로 다시 교체된다. 그러니까 길치는 모르면서 용감하고, 새 동네는 그저 신기해서 여기저기 빠르게 걸을 뿐이고, 가끔은 정처 없이 걷기도 한다는 것이다. 30년이 넘는 인생을 길치로 살아온 나는 최근에도 낯선 동네에 갔다가 길을 잃었다. 지도 어플을 보며 방향을 요리조리 돌리면서 내가 맞게 가고 있는 건지 확신할 수 없는 발걸음을 이리저리 옮기다 이내 '아, 오늘은 이게 내 운동이네!'라는 정신승리와 함께 긍정 회로를 돌렸다.


그래, 그거면 됐다. 걸어서 좋았으면 된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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