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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Jul 12. 2023

자유로움을 노래한다

그럼에도 관계는

감각이 예민한 나는 일상의 미세한 변화에도 일일이 반응하느라 몸이 피곤할 때가 많다. 분명 같은 강도의 자극임에도 남들보다 더 크게 반응하고, 더 큰 에너지를 소모한다.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가 자극의 시작인 것도 맞지만, 문을 나서기 전에도 나를 자극하는 일상의 것들은 넘쳐나기 마련이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이 있다. 조금 관념적인 표현일 수 있는데, 나는 나를 옭아매는 상황을 가장 괴로워한다.


나를 옭아매는 상황이라 함은 사실 일상 곳곳에 만연해있다. 다만 그 옭아맨다는 느낌이 '이거 아니면 죽는다'로 귀결될 때 숨이 턱 하고 막혀버린다. 일례로 층간소음이 그랬다. 그 공간을 떠날 수는 없는데 지속적으로 층간소음의 공포에 노출되다 보니 퇴근하고 귀가하는 발걸음이 늘 무거웠다. 그 작은 공간에서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비명과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둔탁한 소음에 매일 밤 떨었지만 이렇다 할 해결책이 없었다. 당장 이사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관리실에 말씀드려도 방송만 해주실 뿐 이웃들의 소음은 여전했으니 말이다. 이렇듯 어떠한 공간, 상황, 관계 안에 갇힐 때 나는 옭아매이는 것 같은 괴로움을 느낀다. 심할 때는 그 공포감에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그때는 깊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안정시켜 보지만 지속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는 다소 극단적인 대안을 떠올리기도 한다.


어떤 상황이든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전제가 깔리면 갑자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오는 것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다양한 활동들도 사실 마찬가지다. 내 스스로가 좋아서 하는 것이고,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는 전제가 있기에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이지 만에 하나 무조건 해야 한다는 전제가 생긴다면 나는 그 의무감 때문에라도 도망칠 사람이다. 독서도, 걷기도, 글쓰기도, 관계도 모든 게 다 그런 흐름이다.


사실 내가 갖고 있는 다양한 증상들(고소공포증, 폐소공포증, 불안장애, 호흡곤란)도 옭아매는 상황에 놓였을 때 극도로 발현된다. 무언가에 갇혔다는 느낌이 지독히도 싫어 몸에서 반응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갇혔을 때 이곳(이 사람)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더더 숨이 막힌다. 궁지로 몰리는 기분이고 감옥에 갇힌 것만 같아 도망치고 싶어지는 것이다. 지금껏 나는 스스로가 인내심과 지구력이 강한 사람이라 생각해 왔다. 어떤 것 한 가지를 시작하면 중간에 그만두는 법 없이 꾸준하게 한결같이 잘 해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습관으로 자리 잡은 것들이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세워주고 있기도 하고. 근데 이건 어쩌면 내가 참을성이 강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상황적으로 나와 잘 맞았기 때문에 꾸준히 잘 해왔던 것은 아닐까. 정작 힘든 상황에 놓이는 것을 잠시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아니었을까.


나는 언제나 자유로움을 노래한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자유, 매 순간 내 스스로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자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내 인생 키를 나 혼자 오롯이 잡을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길 갈망한다. 어떠한 상황에 의해, 사람에 의해 내 자유가 꺾이거나 잡히지 않기를, 도망칠 수 있기를. 언제든 이게 아니다 싶을 때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삶이 되기를. 설레는 책임감이 괴로운 의무감으로 변질되는 일이 없기를 말이다. 하지만 요즘에 드는 또 다른 생각 중 하나는 내가 내 자유에 얼마나 솔직했냐는 것이다. 그토록 자유롭고자 했으나 내가 원하는 진정한 자유란 과연 어떤 것일까를 다시 한번 비틀어 생각하게 된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사실이 자유를 박탈당하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관계 안에서 오는 안온함이 나에게 한 차원 더 안정된 자유를 허락할지도 모르니까. 대상에서 시작해서 태도로 이어진다는 누군가의 말이 유독 귓가에 맴돌고 있다. 나는 거기에 덧붙여 태도의 일관성을 말하고 싶다.


언제까지? 어디까지?


어디선가 읽었던 "관계의 견고함이란 함께한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떠오른다. 방황이 길었다. 다시 뚜벅뚜벅 내가 바라는 무언가를 향해 걸어갈 준비가 된 것 같다. 기대치를 내려놓는 법은 아직도 배우지 못했다. 어쩌면 영원히 모를지도. 그럼에도 괜찮다. 이렇게 흘러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동안 나는 모든 것을 너무 잘 하려고만 했다. 그 '잘'이라는 것의 이상화가 지나쳤다. 특히 관계 안에서 말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힘을 조금 더 단단하게 배워가고 싶다. 지금보다 더 건강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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