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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Jun 19. 2023

계속 생각하는 사람이고 싶다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
우리(돼지)는 우유와 사과를 좋아하지 않아요. 우유와 사과는 돼지의 건강에 필요한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어요. 우리 돼지들은 두뇌 근로자입니다. 이 농장의 경영과 조직이 우리에게 달려있어요. 그러니 우리가 우유를 마시고 사과를 먹는 것은 바로 당신들을 위한 것이지요.
바깥에서 지켜 보던 동물들은 돼지로부터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다시 돼지로 시선을 돌리면서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미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돼지가 사람인지 사람이 돼지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었다.

<동물농장> 조지 오웰



고전으로 유명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최근에 재독했다. 20대 후반에 처음 읽고 이번이 두 번째 아니, 세 번째가 되었다. 처음 읽었을 당시에는 '아 이렇게 아둔하게 당하다니!'라며 단순한 탄식에서 끝났다면, 이번에는 한 층 더 깊은 빡침(?)을 느끼며 읽어나갔다. 자유를 위한 혁명이 천천히 부패해 가는 과정을 동물들에 빗대어 서술하고 있었지만, 이 책은 어디까지나 스탈린의 독재정치를 비판하고 있는 정치 풍자소설이다. 조지 오웰은 당시 이 책을 출간하고 보수 단체의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사회주의자이자 무정부주의자로서, 자본주의와 전체주의의 불합리성을 비판했을 뿐, 그가 한평생 바란 것은 사회주의의 몰락이 아닌 진정한 사회주의였다.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읽으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게 됐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기술의 성장이 너무나 급진적이다. 인풋 대비 아웃풋의 값어치를 숫자로 환산하며 고효율과 고성능에 몰입하고 열광한다. 문명이 발달하고 있다고는 하나 지식의 높낮이와는 별개로 삶을 깊이 있게 관조하고 사유하는 능력은 어디쯤에 머물러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챗 GPT의 등장으로 더 방대한 자료를 손쉽게 얻고 누릴 수 있게 되었지만, 그와는 반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능력은 퇴보하고 있음을 나만 불안하게 느끼는 걸까. 점점 더 사람들이 게을러지고 있다. 우리가 진화하는 방향, 예측하는 미래의 모습은 더 거대한 자본주의 시장 속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실시간으로 접하는 듯한 기시감마저 든다. 물론 나 또한 그 기류에 편승하지 않고 있다 단언할 수 없기에 더 소름 돋는다. 정보가 쏟아지고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혼란한 세상 속, 세뇌가 이토록 교묘하고 치밀하게 되어가고 있음을 때때로 망각하는 것 같아서. 그저 편리하면 되는 것일까, 그저 쾌적하면 되는 것일까. 물론 그 시대에 맞는 유리한 기술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모두가 그것을 행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 테다. 지배당하지 않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생각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라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느림을 사랑한다. 작은 것 하나에 진심을 다하고, 매사에 신중을 기하고, 다소 우스꽝스럽고 진지해 보일지라도 목가적인 삶의 방식을 사랑한다. 더 깊이 사유하기를, 더 느리게 삶을 관조하길 지향한다. 하지만 인간은 본래 유약한 존재이기에 유대관계를 형성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렵다고들 말한다. 외로움의 형태로 혼자 고독의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미쳐간다고들 말한다. 고립된 자신만의 세계가 너무도 공고하기에 타인과의 소통이 불가해져 결국은 인간이 아닌 또 다른 것을 깊이 파고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유형의 철학자 중 한 명이 니체일 테고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혼란함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물론 정해진 답은 없다. 각자 자신만의 답일 있을 뿐. 아니 적어도 있어야겠지.


요즘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라는 임경선 작가의 신작을 읽고 있다. 이 책은 나이가 들어도 중심을 지켜가는 삶, 지속 가능한 글쓰기와 작가 생활, 나다운 삶을 이루는 선택, 이렇게 세 가지를 고민하며 작가가 써 내려간 에세이다. 그녀는 일상의 선택이 쌓이면 습관이나 루틴이 되고, 라이프스타일의 선택이 쌓이면 취향이 된다고 말한다. 끝으로 인생의 선택이 쌓이면? 비로소 점점 '나 자신'이 되어가는 것이다. 삶을 관조하듯 자신에게 맞는 고유한 감각을 찾아 차분하게 풀어내는 그녀의 문체에 깊이 매료된다. 나는 그녀의 소설도 에세이도 다 좋아했지만, 역시 그녀는 에세이를 참 잘 쓴다.



에이지리스하게 나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꾸준히 나 자신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과 인생을 사는 농도가, 나이가 주는 고정 관념을 희석시킬 정도로 충분히 진한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전형적인 그 나이의 여자나 남자에 대해 우리가 지닌 선입견으로 그 사람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개성이나 매력으로 설명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 부분이 나이보다 먼저 명징하게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다만 삶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다 보면 일상의 자잘한 일들이 너무나 간지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를테면 지난주에 새로 산 치마가 너무 길어 수선집에 맡길지 말지, 요즘 나오는 시장 사과는 싱싱하지 않은데 마트 사과는 너무 비싸서 어쩌나, 잘 쓰던 이북리더기가 최근 들어 자꾸 열이 오르는 바람에 배터리를 교체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되는 다소 시시한 걱정거리들. 하지만 그게 삶이니까. 어쩌면 이 시시한 것들이 쌓이고 쌓인 게 진짜 삶이고, 나는 이 시시하고 지루한 일상을 조금 더 편안하게 온전히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이기를. 도파민이 팡팡 나오는 미래지향적인 삶이 아닌, 세로토닌으로 충만한 현재진행형의 삶. 잔잔한 일상 속 가끔은 이벤트도 찾아오는, 그렇지만 대체로 평온한 삶이 지속되는 그런 슴슴한 삶 말이다.


벌써 2년이 넘도록 함께한 글쓰기 모임의 리더님이 올해 첫 글감에서 나에게 전해주셨던 문장이 여전히 생생하다.

"'내가 아주 많이 애정하는 완벽하게 지루한 일상이 시작되었구나'하는 실감도 느껴집니다.", "대단한 결심도 의지도 없는 1월의 첫 월요일이라는 문장에 같은 마음을 느끼신다니 슬라임처럼 기분 좋게 무너져내리는 기분이 듭니다. 올해도 가장 편안한 텐션으로 무기력하게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어요."


끝으로, 임경선 작가의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나는 예전보다 더욱 나다워졌고 그것은 내게 충만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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