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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Sep 24. 2023

혼자만의 예술은 그저 기록일 뿐일까?

“왜 연주하시는 작품을 출판하지 않습니까?”
“아,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작곡을 하지 않네. 난 절대 악보를 쓰지 않아. 내가 가끔 하나의 이름과 기쁨을 추억하며 지어내는 것은 물, 물풀, 쑥, 살아 있는 작은 송충이 같은 헌물일세.”
“선생님의 물풀, 송충이 안에 음악이 어디 있는데요?”
“활을 켤 때 내가 찢는 것은 살아 있는 내 작은 심장 조각이네. 내가 하는 건 어떤 공휴일도 없이 그저 내 할 일을 하는 거네. 그렇게 내 운명을 완성하는 거지.”

<세상의 모든 아침> 파스칼 키냐르



이제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다. 긴 휴가가 오늘부로 드디어 끝이 난다. 한 달의 긴 휴가 기간 동안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아 남에도 번쩍. 정말 다양한 동네를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그 중심에는 항상 책이 있었다. 책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온 마음을 다해 해버린 것이다. 직장인 신분일 때는 평일 약속을 금기하던 내가 밤에 열리는 북토크와 독서모임, 글쓰기 모임 등에 참여한 것만 해도 엄청난 진일보다. 아마 내일부터 회사로 복귀하면 그동안의 자유로웠던 저녁 모임들은 모두 소강상태로 접어들겠지만, 한 달 동안 충분히 경험한 것만으로 이미 족하다. 나는 쉬는 동안 이곳저곳 지방 소도시와 동네 서점 등을 탐방하며 하루에 2만 보 이상을 걸어 다녔고, 책과 관련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면서 하루하루를 밀도 있게 보냈다. 게을러지거나 생활리듬이 깨지면 어쩌나를 우려했던 게 우스울 정도로 평소보다 더 부지런해졌다. 하루 일과를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만 온전히 채울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 좋아 새벽 4시만 돼도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잠을 자는 시간이 아까울 만큼, 온몸을 혹사하다시피 여기저기를 쏘다녔지만 피곤해도 즐거웠다. 모든 시간이 그 자체만으로 나를 충만하게 채워갔다.


이틀 전 다녀왔던, 금요일 밤의 마지막 독서모임에서 나눈 책은 파스칼 키냐르의 <세상의 모든 아침>이었다. 잠실에 있는 독립서점에서 '작은서점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열리는 독서모임이었고, 책도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프랑스의 국민 작가로 불리는 카스칼 키냐르의 소설로, 실존 인물이었던 비올라 다 감바의 거장 생트 콜롱브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야망을 가진 그의 제자 마랭 마레와 상반된 모습을 보이는 콜롱브는 진정한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몸소 보여주는 인물이다. 왕실의 부름을 단호히 거절하고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풍부하게 즐기고자 온 마음을 다해 음악에 혼을 담는 그의 모습을 보며 경이롭다는 생각마저 들었으니. 영광과 유명해지는 것을 뒤로한 채 음악에 운명을 맡긴 그에게 음악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건 어쩌면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예술은 무엇을 위한 것도, 누구에게 제공하기 위한 것도, 무엇의 모방 또한 아니라고 말이다. 그는 언어에 천착하는 작가였다. 인간의 개별성에 주목한 언어는 개인의 영역에서 출발한 후천적인 것이기에 버릴 수도 있는 비사회적인 것이라 말한다. 소설 속 제자는 '무엇'을 찾고, 스승은 '무엇'을 찾지 않는다. 둘은 시작점부터 다르기에 저마다의 예술혼을 각자만의 방식대로 표현하고 있었지만, 종국에는 다 같은 모형으로 점철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이 브런치의 공간을 예술이라고 봤을 때, 나는 글쓰기라는 행위에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생각이 깊어졌다. 혼자만 보는 글과 보여지는 글, 읽히는 글의 차이는 확연할진대, 그렇다면 나는 글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정확히는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있기는 했을까. 모 시인은 자신의 삶이 예술이 되는 삶을 지향하기도 하던데, 내 삶은 예술과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나는 그저 쓰는 사람이고 싶었는데 말이다. 끄적끄적 무언가를 쓰지 않고는 잠들지 못하는 밤이 많았고, 그렇게 매일을 읽고 쓰다 보니 지금의 이 자리까지 와버린 것이다. 이 브런치라는 공간 속에도 매일 저마다의 색을 담은 다양한 글이 올라온다. 나 또한 구독하고 있는 작가님들 외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그날그날 올라오는 다양한 글을 읽어가고 있는데, 그럼에도 구독하고 있는 작가님들의 수를 일정 숫자로 유지하는 건 진심으로 읽고 싶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구독하고 있는 분들의 글만큼은 꼼꼼히 읽고, 댓글도 달고, 진심으로 그 사람이라는 책을 읽어가고 싶었기에 신중하게 적정 인원을 유지했던 것이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읽는다는 행위조차도 내게는 너무 소중하기에 이 속도와 방향성은 아마도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은 계속 지속할 생각이다.


예술에서 시작해 글쓰기로 마무리되는 이 글은 글쓰기라는 행위가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예술의 한 장르로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내 소개에도 나와있듯 읽고, 쓰고, 걷는 것. 이 세 가지만큼은 평생을 지속하고 싶은 동사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내일이면 평범한 직장인의 신분으로 돌아가 읽고, 쓰고, 걷는 것에만 집중했던 시간들을 휴가 때만큼 할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삶이 곧 예술이라고 말하는 누군가처럼 나 또한 내 삶의 곳곳에 이 세 가지를 넣어주련다. 그리고 다시 일개미가 되어보자. 충분히 쉬었고, 다시 일어날 시간이다.


Wak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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