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민해 Oct 16. 2023

북카페일까, 도서관일까

숲 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중구에는 이색 도서관이 많다. 손기정 문화도서관에 이어 중구에 있는 또 다른 도서관에 관심이 생겼다. 바로 다산성곽도서관이다. 지난달에 처음 알게 된 이곳은 한양도성 남산 성곽길 옆에 있는 자연친화 숲속형 도서관이다. 중구는 처음 이 도서관을 만들 당시 주변 경관과 어울릴 수 있도록 총 6억 원을 투입해 기존 다산아트공영주차장 지상부를 리모델링해 지상 3층의 실내와 실외공간까지 총 976㎡ 규모로 조성했다고 한다. 계획단계부터 지역주민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아 34회가 넘는 주민 인터뷰를 진행했고, 장충초, 장원중 청소년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설계됐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존의 도서관들과는 분위기 자체가 남다르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마치 숲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청량하고 아늑한 느낌이 드는 공간이다. 내부 인테리어도 북카페처럼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어 공간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가 된다. 도심 속에서 만나기 어려운 성곽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작년에 손기정 문화도서관을 다녀온 이후, 중구의 여러 도서관에서 열리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아졌다. 주기적으로 찾아보며 내가 갈만한 프로그램이 없나를 살펴보던 중 이 도서관의 존재까지 알게 된 것이다. 지난달에는 늦은 저녁쯤 이곳에 방문해 문을 닫는 밤 10시까지 책을 읽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저께는 이곳에서 열리는 낭독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2023 다산성곽도서관 독서클럽 활성화 지원사업 중 하나였다. KBS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는 이상협 작가님을 통해 낭독의 정의부터 낭독을 대하는 태도, 낭독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 등을 들어볼 수 있었다. 낭독에 관심 있는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기에 그분의 이력을 잘 몰랐지만 일단 신청하게 되었다. 1시간 동안 낭독에 너무나도 진심인 작가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북튜버 꿈나무'라는 나의 지난 꿈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려고 했다. 다급하게 주섬주섬 집어넣긴 했지만(하하), 언젠가 그때 사두었던 마이크를 다시 꺼낼 날이 올지도 모르니 일단은 넘어가자. 아직은 목소리보다 글로 나를 표현하는 게 더 재미있으니까.


책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참 다채롭다. 이번 낭독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였다. 묵독이 아닌 낭독은 속도는 조금 더딜지라도 그 책의 내용을 좀 더 깊이, 오랫동안 사유할 수 있도록 만들어줄 것 같았다. 점점 더 나만의 책세계를 구축하고 확장시켜 나가는 이 과정이 나는 왜 이렇게 신이 날까. 읽는 것과 쓰는 것을 넘어 읽고 쓰기에 좋은 공간을 찾고, 다양한 배움을 통해 지식과 경험을 넓혀간다. 이건 진정 순수한 즐거움일 테다. 요즘은 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내 삶에 책이 없었다면 과연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어릴 때는 강제성 때문인지 책이 지독하게 싫었는데, 성인이 되고 난 후 내가 자발적으로 독서를 시작하니 이토록 즐거울 수가 없다. 역시 뭐든 억지로 하면 다 하기 싫은 법이지(라고 핑계를 대본다).


내가 좋아하는 청운문학도서관에 이어 두 번째로 좋아하는 도서관이 생긴 것 같다. 손기정 문화도서관도 좋지만, 그곳은 이곳보다 인기가 많고 대중적이라 그런지 오고 가는 발걸음이 많은데, 이곳은 그런 면에서는 확실히 더 아지트 같은 느낌이다. 다만 오고 가는 길이 꽤 가파르다. 도서관 이름처럼 성곽길 옆에 위치하고 있어 지하철역에서 내려 한참을 등반하듯 올라가야 한다. 특히 나 같은 길치는 막다른 골목도 여러 번 만나서 찾아가는데 더 오래 걸리기도 했지만, 계속 가다 보면 점점 더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어떤 장소에서든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나지만, 좋은 공간에서 읽고 쓰는 것은 그보다 더 밀도 높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오늘부터는 김현경 작가의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어제 골라둔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어렵다고 들어서 계속 시도하지 못했던 책인데 이제야 읽기 시작했다. 처음 이 제목을 들었을 때만 해도 사람과 장소, 환대 이 세 단어의 순서를 계속 헷갈렸었다. 근데 읽다 보니 그 순서가 명확하게 정리됐다. 헷갈릴 수 없는 나만의 기준이 잡힌 것도 같다. 사람의 '자격'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아직은 도입부에 불과하지만, 읽으면서 생각이 깊어지는 좋은 책을 만난 것 같아 이번 한 주가 또 설레기 시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19호실은 어디인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