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
나를 어렵게 만드는 얘기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스무 살에 처음 알게 된 노래의 가사인데, 럼블피쉬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라는 노래다. 원곡은 훨씬 더 오래됐고, 내가 이 노래를 처음 접한 건 럼블피쉬를 통해서였으니 원곡보다는 리메이크곡이 조금 더 내 취향. 뜬금없이 이별 가사라니 이별인가? 싶을 수 있겠지만, 이별은 이별이다. 다름 아닌 좋은 리더와의 이별 말이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전날 급하게 회의를 소집하시는 팀장님의 모습에 기시감이 올라왔는데 역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맙소사!
회의 당일 아침, 회사 라운지에서 커피를 내리고 계신 팀장님과 마주쳤다. 평소의 나라면 가볍게 인사만 하고 지나쳤을 테지만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 팀장님께 조심스럽게 물었다.
"팀장님, 오늘 갑자기 팀 회의 소집하셨는데, 혹시 또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긴 건가요?"
팀장님은 별일 아니라고 쓴웃음을 지으셨는데, 왠지 나의 우려가 다시 한번 확실시되는 느낌이었다. 얼마 전 생일 선물로 만년필을 주셨을 때 팀장님의 마지막 멘트에서 눈치를 챘어야 했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그 작별인사 같은 멘트에서 퇴사하시냐고 너스레를 떨게 아니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였다. 정말로 퇴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살면서 여러 상사를 만났다. 이 브런치 공간에서도 <참 좋은 상사를 만났습니다>라는 글을 올릴 정도로, 내가 만난 상사 중에 가장 멋진 분이셨다. 일의 역량은 말할 것도 없고 성품 또한 정말 좋으셨다. 소수의 목소리에 늘 귀 기울이는 나와 비슷한 결의 분이라 더 좋았다. 팀원 한 명 한 명을 섬세하게 살피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분이셨다. 각자의 역량을 잘 끌어올려 주셨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앞장서서 우리 팀을 지켜주셨다. 이직을 했던 것까지 포함하면 근 10년이 넘도록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만난 어느 상사보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분이셨다. 다만 우리의 짓궂은 장난을 강하게 받아치실 정도로 말주변이 좋은 편은 아니셨다. 나는 그 순박한(?) 모습이 더 좋았는데 말이다.
팀 회의에서 팀장님은 11월 말까지 근무할 것 같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우리에게 전하셨다. 하... 다시 한번 아까 그 문장이 떠오른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모두들 할 말을 잃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애써 이 상황을 태연하게 받아들이고자 마음먹었지만 잘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마치 실연을 당한 것만 같았다. 번복할 마음은 없으시냐는 우리의 질문에도 팀장님은 어려울 것 같다는 말씀만 반복하셨다. 조금만 더 있다가 가시면 안 되겠냐는 우리의 간절한 질척임(?)에도 마찬가지 답변만 하셨다. 그래, 나는 알고 있었다. 잡아도 잡히지 않을 분이라는 걸. 원래 시도 때도 없이 '퇴사'를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절대 그만두지 않고, 저렇게 조용히 아무 말 없이 잘 다니다가 한번 아니다 싶어 결정 내린 분들은 절대 그 결정을 번복하는 법이 없으니까. 이미 결론이 난 얘기란 거다.
출근하는 마지막 날까지 그동안의 업무를 잘 정리해 두고 가겠다는 팀장님의 말씀에 다들 침울한 표정만 지었다. 어떤 이가 떠나갈 때는 그저 순리대로 받아들여졌건만(아니 오히려 개운할 때도 많았지), 어떤 이가 떠나갈 때는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든다. 바로 그날이 그랬다. 할 수만 있다면 잡고 싶었지만 잡아도 잡히지 않을 분이라는 걸 알기에 잡는 것조차 조심스러웠고, 그 말씀도 드렸다. 지금껏 길다면 긴 시간 이 회사에 몸담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떠나갔지만 잡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이다. 그만큼 아쉬웠고, 그만큼 속상했다. 팀장님 없는 우리 팀이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마음도 올라왔다. 생각해 보면 팀장님과 일했던 기간이 그리 오랜 기간도 아니었는데, 나는 어느새 팀장님의 리더십에 많이 의지하고 있었나 보다. 늘 우리를 든든하게 잘 지켜주셨으니 말이다.
여하튼 만남에는 언제나 이별이 따르는 거니까. 쿨하게 보내드려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쿨하지 못하다. 잡지 못하는 건 자존심 때문이 아니다. 괜한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아서다. 원래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사는 것보다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사는 게 더 어려운 법이니까. 침묵하는 자들의 외로움이라고 해야 할까. 잡지 못하는 내 마음은, 실은 미치도록 잡고 싶은데도 놓아야만 할 것 같아 애써 마음을 꾹꾹 누르는 것과도 같으니 말이다. 회의실을 나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일을 시작했는데 일이 하나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막막함과 허탈함이 밀려왔다. 우리의 리더 자리에 어떤 이가 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늘 그래왔듯 시간이 지나면 다시 또 적응을 할 테지. 다만 저런 리더를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장담컨대 정말 그렇다. 적어도 회사라는 집단 안에서는 말이다.
물론 직장이 아닌 곳에서는 드물지만 좋은 리더를 만나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두 명은 글쓰기 모임의 리더님과 지난 독서모임의 리더님이다. 두 분의 섬세한 리더십이 참 좋았다. 특히 독서모임장님의 리더십은 지금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그분과 관련된 글을 썼을 정도로 말이다(브런치에 쓰지는 않았고, 비공개 일기장에 썼지만). 그분은 좋은 리더의 조건은 자신이 좋은 리더가 아니라는 사실을 매 순간 자각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좋은 리더라는 사실을 모를 것. 더 극단적으로는 내가 상당히 많이 부족한 리더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할 것. 단순히 상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그것을 믿을 것"
자신하지 말고 계속 의심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말이다. 그분의 겸손함이 좋았다. 솔직한 발언, 소신 있는 발언, 약자를 생각하는 그 귀한 마음 씀씀이까지 말이다. 그 마음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살면서 좋은 리더, 좋은 어른을 만난다는 건 정말 귀한 일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이제 다음 달이면 떠나는 팀장님을 좋은 마음으로 보내드려야 하지만, 글쎄 내 마음은 아직 준비가 덜 된 듯하다. 물론 보여지는 모습은 세상 쿨한 척할 테지만, 억장이 무너져. 억장이! 팀장님은 우리의 이런 마음도 모르고, 퇴사 발언 이후로 얼굴이 더 좋아지신 것 같다(그간 많이 힘드셨구나). 홀가분하신지 야근을 하시면서도 사람들과 싱글벙글 연신 웃으며 인사를 하신다. 허허. 나는 이렇게 쓴웃음이 나는데, 차마 잡지도 못하는데!
에잇, 다시 한번 외쳐보자.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그러니까 가지 마요. 팀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