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민해 Nov 06. 2023

탈 가정 청년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응원하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다

매주 월요일이면 메일함에 가장 먼저 도착해있는 메일이 하나 있다. 비영리섹터의 뉴스레터인 <오렌지레터>다. 일주일을 시작하는 월요일이면 회사에 출근해 가장 먼저 오렌지레터를 읽어보는 것, 나의 오랜 루틴이다. 그리고 얼마 전 레터를 읽다가 유독 눈에 들어오는 공연이 하나 있었다. <52헤르츠 고래의 노래>라는 제목의 공연이었다. 영등포 선유도 공원 야외에서 열리는 공연이었는데, 탈 가정 청년 당사자들의 토크 콘서트라는 부제를 갖고 있었다. 탈 가정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뜻을 잘 몰랐던 나는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과 비슷한 종류일 거라 생각하고, 지난주 토요일 그곳을 다녀왔다. 약 1시간 반 정도 공연이 진행됐고, 4명의 탈 가정 청년들이 직접 작곡한 노래와 사연을 함께 들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갔기 때문이었을까. 예상치 못한 감정의 쓰나미를 만난 기분이었다. 탈 가정 청년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이고, 용기 있게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청년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듣고 있는데 계속해서 눈물이 났다. 자신의 아픔을 가사로 담아낸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도 계속해서 마음이 울컥했고, 눈물을 꾸역꾸역 참아야 했다.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와 친하게 지내며 잘 돌봐줄 줄 알아야 한다고 누군가 말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지금 어떤 상태이고,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차리고 필요한 것을 해주어야 한다. 기분이 울적해지면 맛있는 것을 사 먹이고, 피곤해하면 쉬게 해주고, 좋은 것도 보여주고, 좋은 곳에 데리고 다니고.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나에게도 똑같이 해주어야 한다. 스스로 개인의 삶을 책임지고, 자유로워져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자립]이라고 부른다.

인간에게 양육이란 아동을 어른으로 성장하도록 돌보는 것이고, 돌본다는 것에는 지적 사회적 정서적 능력을 길러주는 것도 포함된다.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정서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도록. 동물들처럼 인간도 부모로부터 삶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때가 되면 사회에 나가 자기 삶을 시작한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 삶의 생애 주기에서도 부모로부터의 독립과 자립은 아주 중요한 과정 중 하나이다.

그런데, 그러한 양육의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자기의 삶을 시작해야 한다면 어떨까?



Q. 탈 가정 청년이 뭔가요?

탈 가정 청년에 대해 설명할 때, 행정적으로 모두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보자.

"가정 내 신체적/정서적 폭력, 학대, 방임, 경제적 착취, 아웃팅 등의 이유로 원가정과의 물리적, 경제적, 정서적 단절을 선택한 청년."

그들이 한 선택은 자신을 위해서였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나로 살기 위해서. 그런 방향으로 탈 가정 청년을 다시 정의해보기로 했다.

"가장 자기 존재를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하는 가정 내에서 '나'로 살지 못한 상태. 그 상태를 벗어나 진짜 '나'로 살기 위한 삶을 선택한 청년."

탈 가정 청년은 가정폭력의 생존자이며 자기 삶을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꾸려나가기 위한 선택을 한 청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상 가족 중심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들은 표준의 삶에서 벗어난 "특별한, 특이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탈 가정 청년 에세이 <어떻게 생각해?> 282books 강미선 대표



<52헤르츠 고래의 노래>는 282북스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궤도이탈; 청년 독립 선언]의 일환으로 지난 8월부터 8주 동안 탈 가정 청년 당사자들이 모여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에 담은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입구에서는 8월부터 공모했던 탈 가정 청년들의 에세이집을 선물로 받았다. 13명의 탈 가정 청년들의 지난 과거 속 아픔과 슬픔, 상처가 담긴 책이었다.



이 책에 실린 13명 탈 가정 청년들의 글에도 고스란히 그 마음이 드러난다. 누군들 불행한 가정사를 이야기하고 싶겠나. 내가 부모에게 어떻게 맞았고, 얼마나 학대당했는지, 아픈 기억으로 가득하다는 걸.

그럼에도 탈 가정 청년 당사자가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다른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 많은 선택지 중 탈 가정이라는 선택지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이고, 탈 가정을 선택하고 혼자 자책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서이고, 무엇보다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서이다. 고생했고, 이제부터 자신으로 잘 살아가자고 함께 용기 내자고 말하기 위함이다.



공연이 끝난 다음 날 일요일, 나는 그 에세이집을 단숨에 읽었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마음속을 후벼파는 것만 같아 읽으며 눈물이 났다. 원가족으로부터 시작된 상처는 표면적으로 드러나기 어려운 법이다. 가정마다 저마다의 내밀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걸 자세히 알지 못하는 타인들은 그저 방관자가 되어 '가족인데 그럴 수 있지 뭐'라는 말로 쉽게 그들의 상처를 한 번 더 건드린다. 더 심한 경우도 많다며 너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니냐는 말까지 함부로 뱉어댄다. 그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로 말이다. 심지어는 그들이 당한 폭력과 학대에 '피해자다움'을 덧씌워 그들을 더 궁지로 몰아넣는다. 순백의 피해자라는 틀이 그들의 삶을 더 강하게 옥죄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 것일까.


그날 무대에 올랐던 4명의 청년들, 그 청년들의 도전과 용기가 정말 멋있다 생각했다.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나는 탈 가정 청년이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얼굴을 보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말했다. 이제는 '탈 가정 청년'이라는 명칭이 생겨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몰라 힘겨웠다고, 자신의 서사를 구구절절 납득시켜야만 하는 것이 숨 막혔다고. 가족주의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선택을 지지해 주는 이를 만나는 것이 어려웠다고 말이다.


공연이 끝나고 지금 나의 삶은 어떤가를 계속해서 생각했다. 30살에 독립했고, 살고자 그 집을 벗어났다. 집을 나오고 싶어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나올 수밖에 없어서 나오게 됐다. 더 이상 그 공간에서 나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다. 나를 나로 인정받을 수 없는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나를 잃어갔고, 그곳을 벗어난 뒤에야 비로소 나를 찾은 것 같았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온전히 나의 감정만 살피면 된다는 그 안온함이 너무나 행복했다. 누구도 나의 시간을 함부로 침범하거나 가르치거나 강요하거나 억압하거나 지시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토록 평온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프고 싶을 때 마음껏 아프고, 웃고 싶을 때, 울고 싶을 때, 마음껏 내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하루들이 너무 감사했다. 그 집을 나온 뒤로는 부모님에게 그 흔한 안부 연락조차 먼저 하는 법이 없고, 연례행사를 제외한 어떤 날에도 집을 찾아간 적이 없는 매정한 딸일지 모르겠지만, 이 모든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집을 나온 건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 중 하나였다. 그건 지금도 유효하다. 그래서였을까. 탈 가정 청년이라는 명칭에 나도 반 정도 몸을 걸치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모든 행동들이 그들의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법적 보호자라는 테두리 안에 여전히 들어가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말이다.


우연히 알게 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나는 282북스를 계속해서 응원하고 싶어졌다. 282북스는 예술을 매개체로 우리가 가진 편견과 혐오를 낮추는 일을 하고 있다. 예술 기반 사회적 처방 프로그램을 개발해 사회 소수 그룹의 정서적 자립을 지원하고, 당사자성이 부여된 예술 콘텐츠를 제작해 사회 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는 사회적기업이자 사회적 스토리 IP 기업이다. 282북스라는 이름의 뜻은 나뭇잎을 가리키는 '이파리'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파리 한 장 한 장이 모여 잎이 무성한 나무를 만들고 그 나무가 모여 울창한 숲을 만드는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소중한 이야기 하나하나를 모아 이야기 나무, 이야기 숲을 만든다. 강미선 대표는 누구나 이야기 숲에 와서 자신의 방식대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즐기고 위로받고 쉬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파리’가 떠올랐다고 말한다. 그녀에게도 힘든 시기가 있었다.



고립된 채 은둔했던 시절과 자살 시도를 했던 경험은 한 회사의 대표라는 사람이 말하기에 적절하지는 않다. 이런 말들이 절대 회사에 도움 될 리 없다. 누군가의 관심이나 동정, 위로를 받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말을 한다.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가 닿기를 바라서이다. 예전의 나처럼 혼자 아파하고 있는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듣고 조금이라도 힘을 내길 바라서이다.



탈 가정 청년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탈 가정 청년 당사자가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다른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 많은 선택지 중 탈 가정이라는 선택지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이고, 탈 가정을 선택하고 혼자 자책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서이고, 무엇보다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서이다. 고생했고, 이제부터 자신으로 잘 살아가자고 함께 용기 내자고 말하기 위함이다.



공연 소감 문자를 전하며 혹시 이곳을 후원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문의를 드렸고, 이번 프로젝트 음원 발매를 위한 펀딩이 곧 오픈할 예정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아마 이게 시작일 것 같다. 나는 앞으로도 282북스와 탈 가정 청년들의 행보를 계속해서 응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https://youtu.be/5KJk7hh8JEc

매거진의 이전글 시계가 없는 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