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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Nov 14. 2023

사람이 없는 도시는 생명력을 잃어간다

도시는 마치 하나의 무한한 무대처럼 느껴집니다.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역할을 맡아 연극을 펼치며, 그 안에서 주인공과 관객이 동시에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문화와 가치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도시라는 무대에서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저를 매료 시킵니다.
(중략)
도시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상의 순간들, 그리고 그 순간들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 그들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는 끊임없이 제 그림의 영감이 되고 있습니다. 도시라는 공간 속에 있는 사람들의 삶과 그 안에서 발견되는 작은 행복, 도시의 분주함 속에서도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아름다운 순간들을 그림으로 담는 것은 무엇보다 소중한 기록의 일부입니다.

<네모 안의 너와 나> 이슬아



@ 이슬아, 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2023. 2GIL29 GALLERY



지난 주말 신사동에 위치한 이길이구 갤러리를 다녀왔다. 22년 초에 <과야, 태도에 대하여>라는 전시를 다녀온 이후로 처음이었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이길이구 갤러리는 2015년에 개관한 이후 회화, 조각, 디자인, 사진, 일러스트, 공예 등 동시대의 다양한 예술문화를 소개하며 성장해온 작은 갤러리다.

이번에 다녀온 전시는 이슬아 작가의 <네모 안의 너와 나>라는 전시였다. 11월 말까지 무료로 진행 중인데, 창문을 통해 바라본 도시와 사람들을 세심히 기록한 30여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이슬아 작가는 빌딩 속 창문을 넘어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과 도시의 풍경을 소재로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여 그녀만의 화풍으로 그려냈는데, 나는 유독 '도시'와 '일상', '인물'이라는 단어들에 관심이 생겼다.


도시의 관찰자라고 불린다는 그녀. 이번 전시를 통해 나는 그녀를 처음 알았다. 글을 쓰는 작가 이슬아는 익숙했지만, 그림을 그리는 작가 이슬아는 낯설었다(물론 둘은 다른 사람이다). 대도시의 풍경과 도시인을 그려온 이슬아 작가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자신의 작품을 꾸준히 올리며 SNS 스타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SNS에 대체로 회의적(브런치 제외)인 내가 좋아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SNS의 순기능을 잘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나 또한 독립서점 정보를 그곳으로 얻고 있으니까), 열린 마음으로 전시를 다녀왔다.


그녀가 그리는 대부분의 그림은 도시 안에 혼재되어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라고 한다. 인터뷰 영상에서 그녀가 말하길 자신이 하고 있는 건, '사라지는 걸 기록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된 뚜렷한 계기가 있지는 않았다. 다만 자신이 애정을 갖고 바라봤던 대상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나타나는 과정이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졌을 뿐. 그걸 하나하나 그림에 담으면서 지금의 작품들이 탄생한 것이다.


네모 안의 너와 나 라는 제목은 제가 그리면서 항상 생각했던 모습이에요. 그 모습을 이번에 조금 더 이미지로 많이 풀었다고 해야 될까요. 사실 건물도 네모고 창문도 네모고 저희가 항상 들고 다니는 기계도 모두 다 네모잖아요.  그 네모로 연결되어 있다는 게 저한테는 조금 새롭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하루는 길을 걷고 있는데, 길을 걸으면서 봤던 창문들이 다 똑같이 생겼는데, 그 안을 구성하는 것들이 다 다른 거죠. 똑같은 창문 안에서도 다 다른 오브제로 다 다른 모습을 쌓아놓고 사는구나 라는 게 굉장히 새삼스러운 사실로 다가왔고 그런 부분들을 이미지로 풀면 더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녀는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릴 무렵, 새롭게 다가왔던 것 중 하나가 사람이 없는 거리의 모습들이었다고 한다. 북적이는 인파가 없어 한적하고 평화로울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텅 빈 거리를 보니 도시가 매력을 잃은 것처럼 허전하게 느껴졌다고. 그제야 도시의 매력을 채우는 건 다름 아닌 사람이구나 싶어, 도시 생태계 속 자신만의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채롭게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 이슬아, 퇴근길, 2023. 2GIL29 GALLERY



우리 동네에는 가구거리가 있다. 이케아처럼 멋스럽고, 가성비 좋은 젊은 층들을 위한 가구보다는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래된 느낌을 자아내는, 가격이 꽤 나갈 것 같은 묵직한 가구들이 모여있는 길이다. 그 길을 지날 때마다 나이를 지긋하게 드신 사장님들은 길가에 의자를 두고 붙박이처럼 멍하니 앉아계신다. 그 길을 지나는 행인들의 모습에 시선이 닿아있을 때도 있다. 나 또한 이 동네에 살며 그 거리를 오랫동안 지나다녔고, 코로나 여파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아있는 가구집들의 생명력에 감탄할 때도 많았다. 그런데 바로 어제 출근길, 내가 오랫동안 익숙하게 지나쳤던 가구집 중 하나가 문을 닫았다. 폐업이라는 두 글자가 붉은 페인트로 선명하게 칠해져 있는 휑한 가게 내부를 보는데 그냥 뭐랄까. 마음이 좀 헛헛하달까. 나와 어떠한 연고도 없는 곳, 심지어 사장님과 안면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느낌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소속감을 느끼며 나갔던 모임들이 하나둘 사라지거나 누군가가 그곳을 드나들 때마다 왠지 모를 헛헛함이 쌓인다. 이 생경함은 그들과 내가 친분이 있고, 없고를 떠나 그냥 떠오르는 감정들이었다. 어떤 이는 붙잡고 싶었고, 어떤 이는 떠나가는 뒷모습이 마지막이라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나는 지인들에게 나의 이 감정을 설명할 때 '남겨진 자의 슬픔'이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어떨 때는 아무렇지 않고, 어떨 때는 아무렇지 않지가 않다(뭔 소리야).


날이 추워질수록 따뜻한 것들에 유독 애정이 생기곤 하는데, 이번 전시가 그랬다. 이슬아 작가가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결국 사람이었다. 사람이 없는 도시는 생명력을 잃은 것과 같다. 비대면 시대를 지나 다시 대면으로 돌아가고 있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삶의 안식을 얻어 가고 있는 것이다. 연결되어 있다는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말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전시의 온기가 내 안에 남아있는 것 같았다. 작은 갤러리에 몇 점 안 되는 그림이었지만, 이길이구 갤러리만이 주는 온기가 좋았고, 이번 전시의 주제도 좋았다.


도시 감수성이란 말이 있다. 거대 도시 안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 문화 현상 중 하나인데, 과거의 인류와는 다르게 태어날 때부터 도시와 함께 삶을 살아온 새로운 세대들에게 고향과 그리움의 대상은 '자연'과 '촌락'이 아니다. 대도시의 삶에 기반을 둔 그들의 고향은 '화려한 네온사인', '대중교통 수단' 등이고, 그것들을 기반 삼아 향수의 대상을 소환하는 것이다. 도시의 야경에 유독 매료되는 나의 모습이 어쩌면 도시의 감수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늦은 밤 아파트 단지의 불 켜진 집들을 지날 때면 어릴 적 뛰어 놀던 놀이터가 생각나고, 늦은 퇴근길 버스를 탈 때면, 고등학생 때 야간 자율학습을 끝내고 터덜터덜 걸었던 귀갓길의 풍경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나에게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는 다름 아닌 도시 속 사람과 풍경들이었고, 이번 전시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네모 안의 너와 나>라는 이번 전시의 제목처럼 결국 우린 저마다의 네모 안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그 감각들. 서로가 서로에게 닿아있다는 안온함이 있기에 이 세계를 놓지 못하고 계속해서 살아갈 동력을 얻어 가는 건 아닐까. 네모 안에 있는 각기 다른 너와 나의 온기를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계속 느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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