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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Nov 28. 2023

예정된 이별과 갑작스러운 이별

결론은 둘 다 아프다

언젠가 예정된 이별과 갑작스러운 이별 중 무엇이 더 슬픈가 하는 질문에 답을 내보려 애쓴 적이 있답니다. 내가 내린 답은 내가 원치 않는 이별이라면 그것이 무엇이건 슬프다는 거였어요. 당신이 좋아하는 팀장님과의 시간이 3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에 과거에 내린 저 답이 생각났는데, 부디 그 슬픔이 크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내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더없이 다행이고.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다니. 이번 달 말까지만 근무하겠다고 말씀하셨던 팀장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한데, 이제 곧 이별이다. 이런 내 속도 모르고, 팀장님의 얼굴은 요즘 유난히 밝다(그렇게 기쁘십니까). 다행히 차기 팀장님도 정해졌고, 함께 일한 시간이 길었던 분이라 우리팀 자체는 다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좋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건 늘 어렵다. 나의 연인이 위로의 말을 건넸던 것처럼, 원치 않는 이별이라면 그것이 무엇이건 슬프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팀원들과 사비를 모아 조그만 환송회를 준비했다. 글쓰기 모임 친구들과 만날 때처럼, 파티룸을 따로 빌려 우리들만의 시간을 만드는 게 어떻겠냐는 나의 제안에 팀원들은 흔쾌히 수락했다. 워크샵과 환송회, 연말 느낌을 담아 소소한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5,000원 미만의 작은 선물을 준비해 서로의 마니또가 되어 교환하는 추억놀이도 하고, 팀장님의 남은 근무일을 축하(?)하는 풍선도 몰래 붙여 깜짝파티를 했다. 주문 제작한 케이크의 문구 덕분에 환송회를 준비하면서도 한참을 웃었는데, 실물로 받아보니 더 웃겼다. 술을 좋아하시는 팀장님을 위한 맞춤 케이크였다. 팀장님은 국장님이 선물하신 와인을 그 자리에서 바로 따 우리에게 한 잔씩 나눠주셨다. 업무 특성상 딱딱한 서류를 다루며 늘 독서실 같은 분위기만 자아냈던 평소와 달리, 실로 오랜만에 찾은 유쾌하고 따뜻한 시간이었다. 파티룸의 반짝이던 트리처럼, 우리의 시간도 마음껏 반짝거렸다.


내가 준비한 선물은 시집이었다. '주머니시'라고도 불리는 이 시집은 영풍문고의 시 코너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적이 있는데, 마침 딱 5,000원이다. "본 제품은 담배가 아닙니다. 그러니 마음에 드는 작품은 남용하셔도 좋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한 이 시집은 담뱃갑 모양의 패키지와 매력적인 일러스트로 꾸며진 겉면, 그 속을 채운 20장의 시로 청년 창업가 송유수씨의 손에서 탄생했다. 시작할 당시 텀블벅과 독립서점에만 의존했던 주머니시는 약간의 차질이 있긴 했지만 대형서점으로까지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점차 좋은 반응을 얻어 갔다고 한다.


저희는 문학을 통해 사람들에게 위로와 행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살아가기 바쁜 일상 속에서, 문학은 사람들에게 짐이 되었습니다.


책을 대신해서 문학을 전할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희는 쪽지를 받으며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문학을 쪽지처럼 전해줄 수는 없을까?’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주머니시입니다.


주머니시는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구성합니다. 또한, 작가들이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이 되어 그들의 작품활동과 단행본 출판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사담이 길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나의 선물은 내년 3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동료에게 전해졌다. 내용물이 보이지 않게 넣어뒀는데, 작은 크기를 보고 어떤 선물이냐 묻길래, 장난으로 '담배'라고 했다가 살짝 당황스러운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시집이라고 정정하자 분위기는 다시 화기애애해졌고, 나다운 선물이라는 말도 들었다. 약속된 다른 일정이 있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가는 발걸음이 아쉬웠던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좋은 사람들과의 모임이라도, 여럿이 모인 자리는 에너지가 모자라 늘 버거워했던 나였는데, 그날의 분위기는 뭐랄까, 너무 포근했다. 작은 오두막에 모닥불을 켜놓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 이런 이별이라면 괜찮은 걸까. 함께했던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좋은 리더를 떠나보내는 건 참 쉽지 않은 마음이다. 팀장님은 우리에게 "리더십에 관한 입바른 소리"라는 제목으로 한 통의 메일을 보내셨다. 장문의 글을 읽으며 왜 내가 그동안 이분을 리더로서 존경했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리더의 권위를 내려놓고, 조직 구성원들과 서로 존중하는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자신의 다짐과도 같은 글이었다. "리더가 통제해야 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입니다"라는 그분의 문장에 울림이 느껴졌다. 좋은 리더를 만났고, 이제 그분과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음의 헛헛함은 접어두고 예정된 이별을 잘 마무리해야겠다. 웃으며 인사하고, 새로운 리더를 잘 맞이해야지. 문득 올해 초에 봤던 영화 <노매드랜드>의 대사가 떠오른다.


"이 생활을 하면서 가장 좋은 건 영원한 이별이 없다는 거예요. 늘 ‘언젠가 다시 만나자’라고 하죠. 그리곤 만나요."


영원한 이별은 없다라.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어느 정도의 경험치가 쌓여야 만나고 헤어지는 일들에 일일이 마음 쓰지 않고 덤덤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넬 수 있을까. 사람이 오고 가는 것에 꽤 무던한 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쉬움이 없는 관계일 때나 가능한 일이다. 좋았던 관계는 작별의 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아리다. 소식을 접한 순간부터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마저 든다. 이 감각이 무뎌질 날이 오기는 할까. 익숙한 장소가 하나둘 사라지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장소가 됐든 사람이 됐든 이별을 겪을 때마다 먼저 떠나는 사람이 대체로 나이기를 바라지만 그것조차 여의치 못하다면? 그때마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는 건 여전히 내 몫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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