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들에 좌우돼요. 시는 지적 자유에 좌우되고요. 그리고 여성은 지난 2백 년뿐만 아니라 세상이 열린 이래 줄곧 가난했어요. 여성의 지적 자유는 고대 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도 못했어요. 그러므로 여성이 시를 쓸 가능성은 조금도 없었지요. 그것이 바로 제가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하는 까닭이에요.
그래서 저는 주제가 사소하든 거창하든 절대 망설이지 말고 온갖 종류의 책을 써달라고 여러분께 부탁하고 싶어요. 저는 여러분이 무슨 수를 쓰든 충분한 돈을 스스로 마련해서 여행을 하고, 빈둥거리고, 세상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책을 읽으며 몽상을 하고, 길모퉁이를 거닐며 생각의 낚시줄을 강 속 깊이 드리울 수 있기를 바라요.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자기만의 방>은 케임브리지대학의 여성 교육 기관인 거턴대학과 뉴넘대학에서 ‘여성과 픽션’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던 원고를 수정, 보완하여 한 권의 책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제목을 '여성과 픽션'에서 '자기만의 방'으로 바꾸었다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 작가가 성공하려면 '자기만의 방', 즉 정신적·경제적 자유가 보장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제인 오스틴, 에밀리 브론테, 샬롯 브론테 등의 여성 작가들이 등장한다. 당시의 시대상을 따라 남성 중심의 문학 안에서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장벽이 존재했는지를 낱낱이 파헤쳐 간다. 이 작품이 쓰였을 당시(1929년)를 생각해 보면 그리 먼 과거도 아니다. 100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울 뿐. 내가 지금 당연하다 생각하며 누리는 것들이 당시에는 당연하지 않았을 수 있다 생각하니 그녀는 여성으로서도, 글을 쓰는 한 사람으로서도 선구자의 역할로 당당히 자신을 나타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여성과 남성을 떠나 한글의 예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싶다.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 조선 시대에는 백성의 문맹률이 높았고(90%에 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양반 계층을 제외하고,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서민들은 불의를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화는 가능하지만 글을 읽거나 쓰는 것은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당시만 해도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권력과도 같았으니 여성의 글쓰기와는 또 다른 맥락에서 더 큰 장벽이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지금의 나는 어떤가.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읽고 쓰는 것이 자유롭다. 말하기와 듣기도 마찬가지.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끔 유리천장 같은 벽을 만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나에게는 나만의 19호실(도리스 레싱의 소설처럼)이라 일컬을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 있다.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부모님에게서 독립한 상태고, 여성이 글을 쓴다면 가족 모두 함께 사용하는 거실에서 써야 했을 거라는 책의 전제와도 다른 삶이다. 이 책을 읽으며 자유로운 글쓰기가 가능한 삶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감사하게 된다.
여성의 서사를 단순하고 납작하게 묘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남자보다 못할 게 없다'고 항의할 것도, 화를 내며 맹렬하게 비난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 또한 글쓰기의 동력으로 삼을 수는 있겠으나 버지니아 울프가 주장하는 바는 그게 아니었다. "위대한 문학 작품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녀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결합된 완전한 정신"을 해답으로 제시했다. 자기만의 목소리를 찾고, 자기 작품의 문학적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지 않으려면 자신이 여성임을, 또는 남성임을 의식하지 않고 완전히 균형 잡힌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이다. 여성이 '자기만의 방'을 찾음으로써 사회적, 문화적 모순과 불합리에 영향받지 않고, 풍요로운 정신세계로 마음껏 자신의 글을 펼쳐내기를 말이다.
우리에게는 남녀의 결합을 통해 최고의 만족과 완벽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이론에 동조하려는, 어쩌면 비이성적일 수도 있는 뿌리 깊은 본능이 있어요. 그러나 두 사람이 택시에 오르는 모습과 그 광경이 내게 준 만족감 때문에 저는 사람의 몸에 두 종류의 성별이 있듯이 마음에도 성별이 있는지, 또 완벽한 만족과 행복에 이르려면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결합해야 하는지 묻고 싶어졌어요. 저는 서투른 솜씨로 영혼의 지도를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는 두 가지 힘, 남성과 여성을 그 안에 표시했어요. 제가 그린 지도에 따르면 남성의 두뇌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세하고, 여성의 두뇌에서는 여성이 우세하답니다. 두 힘이 사이좋게 살아가면서 정신적 협력 관계를 이루면 정상적이고 편안한 상태가 유지되지요. 남성의 경우 두뇌의 여성적 부분이 반드시 기능해야 하며, 여성 역시 자기 안의 남성과 교류해야 해요.
이 글을 쓰면서 두 달 전에 다녀왔던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이 떠올랐다. "미등단 여성이면 누구나 참여 가능"이라는 참가 자격을 바탕으로 시, 산문, 아동문학(동시와 동화)의 3개 부문을 다양한 연령층의 참가자들이 함께 쓰고 나눴다. 올해로 41회를 맞이한 마로니에 백일장은 학생부터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온 여성, 우리 부모님 세대일 것 같은 어르신들까지 모두가 함께하는 글쓰기의 장이었다. 나는 올해가 두 번째 참여였는데 비대면과 대면의 분위기가 확실히 달랐다. 이른 아침부터 그 많은 인원이 한 장소에 모여 읽고 쓰는 감각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기도 했다. 꼭 여성뿐만이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다채롭고 진솔하게(그리고 진지하게) 나눌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더 깊이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