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니
비대면, 집합금지, 사적모임 6인까지 가능, 사회적 거리두기, 대화자제, 동료 간 거리두기 등등 이제 우리에게 익숙해져 버린 단어들이다.
[서울시청] O월 O일. 00시 기준
서울시 신규확진자 O명.
https:// 외래진료센터 이용안내 / ☎120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같이 쏟아지는 안전 안내 문자.
바야흐로 코로나 시대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고립된 사람들이 많아졌고, 타인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많아졌다. 특히 지금 같은 시대는 혼자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에게 빨간불이 켜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비단 코로나 때문만이 아니다. 타인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인 사람들은 환경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쉽게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며 동정심을 요구한다.
얼마 전 다녀온 독서모임에 대한 이야기다.
총 6명이서 홀로서기와 관련된 지정 책을 바탕으로 모임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날 독서모임에 처음 참석한 여자 P가 있었다. P는 자기소개 시간부터 아무도 묻지 않은 자신의 지난 연애사(얼마 전 오랫동안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와 그로 인해 급속도로 심각해진 본인의 우울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 앞자리에 앉아 처음 만난 우리에게 자신의 인생사를 울먹거리며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P의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모임 3시간 동안 P의 행동은 한결같았다. 다른 사람의 발언 차례임에도 그 말을 끊고 자신의 힘듦을 계속 말하곤 했다. 자신이 계속 주인공이길 바란 것인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귀담아듣지도 않았고, 계속 말을 잘라가며 자신의 외로운 감정만을 알아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P의 이기적인 모습에 처음에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나도 서서히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모임이 끝난 후에야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황급히 인사를 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P는 그 모임에서 내내 이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 지금 외로워요. 나 좀 어떻게 해주세요.
독서모임은 힐링캠프가 아니다. 새로운 남자친구를 찾고 싶었던 것이라면 제발 다른 친목모임에서 상대를 찾기를 바란다. 그날의 불쾌했던 경험 덕분에 자신의 외로움을 토로하며 상대방의 관심을 끌고자 하는 이들의 모습에 더욱 거부감이 올라왔다.
(심지어 P는 지정 책을 절반도 다 읽지 않고 모임에 참석했다. 우리 모임은 완독을 규칙으로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고등학교에서 철학 교사로 재직 중인 안광복 작가는 <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에서 외로움과 고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독과 외로움은 다르다.
외로움은 곁에 누군가가 없어서 느끼는 막막함이지만, 고독은 스스로 선택해서 홀로 선 상태다.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우정도 제대로 가꾼다. 이들은 나의 아쉬움을 채워달라며 상대에게 매달리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려 노력하는 가운데, 자신을 더욱 아름답고 강하게 만든다.
인생은 원래 고독과 외로움을 동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연애를 해도 나의 외로움을 상대방이 100% 채워주기란 어렵다.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독과 외로움을 구분하고 그것을 즐길 줄 아는 두 사람이 만나야 서로가 서로에게 건강한 관계로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애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집착의 문제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온종일 본인의 일에는 관심도 없고, 나의 연락만 기다리고 있다면 이 얼마나 숨 막히고 버거운 일이란 말인가.
물론 모든 사람은 관계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의존적인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건강한 의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기실현은 스스로도 가능하지만, 상대방을 통해 삶이 더 풍성해지는 건강한 상호의존 말이다. 밀착되어 있는 시간만이 전부가 아닌, 혼자 있는 시간과 같이 있는 시간을 다 즐길 줄 아는 관계야말로 행복한 관계가 아닐까.
자신의 외로움을 타인이 무조건적으로 받아주고, 채워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연애를 시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연애를 기대하는 이들이 상대방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깨달았으면 좋겠다.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했는데! 너만 바라보고, 너만 기다리고, 너만 생각했는데!"라고 소리치며 헌신했다고 말하고 싶은가. 그럼 입장을 바꿔서 상대방의 말도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내가 언제 너한테 그렇게 해달라고 했냐고.
그건 너의 일방적인 사랑이지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고.
상대를 향한 일방적인 희생과 헌신을 사랑이라고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상대방을 자신의 외로움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감정 쓰레기통으로 사용해놓고 지쳐서 마음이 떠난 상대방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각자의 외로움은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