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거짓으로 점철된 삶

by 내민해

삶의 중간중간 나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해주신 분들이 많다. 그분들의 바른 가치관을 닮고 싶었고, 그것은 나이에 국한되지도 않았다. 누구에게나 배울 점은 존재했다.

하지만, 모든 관계가 처음과 끝이 좋을 수만은 없다. 나의 이야기도 그렇다.

처음 그를 알게 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여러 가지 감정을 복합적으로 느꼈다. 그는 나를 성장시켜주었다. 좋은 관점이라기보다는 앞으로 사람의 진심을 잘 살펴야겠다는 의미의 성장이었다. 실패를 통해 사람이 더 성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이곳에 이사 와서 동네 독서모임에 처음 참석하게 된 날이었다. 그는 이 모임의 실질적인 모임장이었다. 그의 첫인상은 착하고, 순수한 느낌이었다. 모임을 진행하면서 느껴지는 그만의 모습들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달랐다. 그 일반적이라 함은 소위 말하는 보편적인 모임장들의 모습 말이다. 낯선 이와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이어가고, 예의 바르고, 붙임성 좋은 그들의 모습들. 모임을 잘 운영하고자 하는 그들의 겉모습들. 그는 그런 일반적인 모습들과 결이 다른 사람이었다. 좋게 말하면 특별하고, 나쁘게 말하면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 같았다.


그가 모임 후기에 늘 남기는 말이 있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이 4가지는 명상을 통해 배운 말이라고 했다. 그는 공공기관 계약직 직원으로 근무하며 안정된 직장을 가져본 적도 없고, 굳이 갖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처음 모임에 나갔던 날 그 부분을 당당하게 말했다(물론 당시에는 그 당당함이 솔직하고,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소위 말하는 좋은 직업들(전문직, 대기업 등)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비난은 정말 싫어서 하는 비난이 아닌,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이 담긴 비난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가난했고, 마땅한 직장이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았으며, 가까운 친구도 없었고, 외로움, 고집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어린아이 같았다. 진실한 듯 보이지만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단 한 번도 우리에게 마음 놓고 풀어놓지 않았다. 무언가에 갇혀 있는 사람 같았다. 그에게는 벽이 존재했다. 누구도 다가갈 수 없는 벽. 그는 우리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의 벽을 허물지 않았다. 그 벽에 자신만의 문을 만들어서 그 문을 자신만 들어가고 나갈 수 있도록 했다. 다른 누구에게도 그 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모임에 매주 참석하며 늘 진행을 도맡았고, 그의 성실한 모습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점점 그의 거짓된 모습에 쉽사리 마음을 열지 못하고 다쳤다.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그의 말과 행동이 달랐다. 그는 늘 우리를 가르치려고 했고, 자신의 지식을 설파하는 것에 우월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긴 취업 준비의 기간을 견디고 결국 좋은 직장에 취업했다. 평소 그가 비난하던 대기업의 직장인이 된 것이다. 그 뒤로 그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동안 자유와 평등을 말하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자신이 어릴 때부터 원했던 것은 사실 이런 삶이라고 했다. 이것은 마치 그동안 그가 마땅히 소속된 직장이 없고, 자유를 찬양했던 것이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사람들을 자신의 능력으로 따라잡을 수 없었기에 질투심에서 나온 말들이라는 반증 같았다.

그런데 그것을 이뤘다. 그들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그러자 그의 태도와 말이 달라졌다.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사람들을 함부로 무시하듯 말했다. 항상 약자의 편을 우선시하던 그가 그들을 나약하다 말했다. 점점 더 그의 오만함과 자만함으로 상처받는 이들이 많아졌다.


내가 처음 그를 알게 되었을 때, 그의 순수한 모습이 좋았고, 보상을 바라지 않는 헌신을 존경했으며, 배경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진취적인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모임을 운영하면서도 늘 우리를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성실하게 노력하는 그의 모습들이 나를 감동하게 했다.


그런 그가 변했다. 아니, 실은 원래 이게 그의 진짜 모습이었나.



자신의 주장과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말하고, 가르치려 들었다. 자신의 룰을 어기는 사람들을 자꾸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단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무엇이 그를 이토록 독재자로 만든 것인가. 자신의 말만이 정의고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그의 모습. 자신과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것을 절대 가만히 두지 않는 모습. 이해하는 척, 인정하는 척하지만 실은 그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누구와도 진실된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이중적인 모습에 점점 지쳐갔고, 모임에 나가는 시간이 고통스러워졌다. 함께 운영진을 하면서도 온전한 그로 대할 자신이 없었다. 하나도 솔직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솔직하다 말할 수 있는지. 진짜 솔직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나 하는 말인지. 그를 보며 사람을 보는 관점을 새롭게 배웠다. 진실하고, 인간적인 사람들에게 마음이 열렸다. 가면을 쓰고 타인을 가르치려 들고, 솔직하다는 핑계로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이기적이고, 무례한 사람들을 보면 두려움과 역겨움이 동시에 올라왔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를 보는 것만 같았다.


내가 처음 그를 알게 되고, 지금에 오기까지 2년이 넘는 긴 시간이 흘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와 더 이상 아무런 연락도, 관계도 이어가지 않는다. 그로 인해 더 이상 그 모임도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와 함께 모임을 운영했던 시간을 되돌아보면 그가 나에게 진실했던 적이 과연 몇 번이었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와의 관계는 내 인생에 또 다른 가르침을 주었다.

사람이 한결같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것인지. 변하는 것은 얼마나 한순간에 이뤄질 수 있는 일인지. 아니 어쩌면 그것은 변한 게 아니라, 이제야 실체가 드러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를 통해 한결같은 그 마음이 꼭 진실이, 진심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사람은 성장을 통해 다채롭게 변하지만, 그 뿌리는 한결같은 사람이고 싶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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