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들은 사실 피하면 되는 일이다. 굳이 일일이 신경 써가며 스트레스 받을 일 없는, 나의 예민한 센서가 그쪽에 닿지만 않으면 되는 일.
남들보다 예민한 나를 탓하며, 그 센서를 꺼버리면 되는 일.
하지만 얼마 전 마트에서 있었던 일은 달랐다.
누군가의 시선이 나를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저 멀리서 나를 쳐다보던 한 남자.
예감이 좋지 않았고, 불길한 예감은 늘 적중하기 마련이지.
내 쪽으로 걸어온다.
일부러 상관도 없는 코너로 발길을 돌리는 나.
그리고 그런 나를 졸졸졸 따라오는 그 남자.
일부러 그 사람을 따돌리기 위해 한 방향으로 걸어가다 홱 돌아서 다른 코너로 급하게 가도 그런 나의 발걸음조차 따라오는 그 남자.
화가 나서 이번에는 한 코너에 오랫동안 서있어 보기로 했다. 초점은 멍하게 풀고서(이때의 포인트는 내가 만만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정신이 나간 사람같은 연기가 필요하다).
그런 내 옆에 서서 자신과 어울리지도 않는 물품을 뒤적거리며 나를 계속 주시하는 그 남자.
참고로 내가 서있던 코너는 치즈와 요거트 코너였고, 나를 따라오는 남자의 연령대는 50~60대 정도로 보였다. 물론 치즈와 요거트를 구입하는 연령에 나이가 정해져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찾는 연령대는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서있자 이제는 대놓고 한 번은 나를, 한 번은 요거트를 번갈아 쳐다보며 괜히 이것저것 뒤적거리는 그 남자.
10분가량을 그렇게 하염없이 서있는 내가 답답했던지 드디어 나를 두고 어디론가 가버리는 그 남자.
그 남자의 모습이 코너를 돌아 사라졌다고 느끼자마자 나는 다급하게 발걸음을 돌려 다른 코너의 물건들을 꽤 오랫동안 고르고(그 사람이 지금쯤이면 집에 갔기를 바라며), 계산대로 향했다.
장 보기를 이렇게 오랫동안 공들여 했던적이 있나 자괴감 마저 들었다.
그 남자는 나를 따라온 것도, 기다린 것도 아닌 그저 나의 단순한 착각일거라 생각하며.
하지만 그런 나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가 계산대에 물건을 올려놓자,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건지 내 계산대 옆 계산대에 자신이 고른 물건을 다급하게 내려놓는 그 남자.
그가 고른 것이라고는 고작 소주 한 병.
나를 기다리며 물품을 뒤적거렸던 코너는 치즈와 요거트 코너.
그가 나를 따라온 것이 정말 아니었다면 왜 굳이 10분이 넘도록 내가 서있는 옆자리에서 요거트를 뒤적거린 것일까. 소주의 안주로 요거트가 괜찮아 보였던 것일까.
삑삑삑.
파프리카, 자몽, 요거트, 치즈, 키친타월 등
내가 고른 물건은 꽤 오랜 시간 계산대에서 차례대로 바코드를 찍고 나온다. 나는 일부러 천천히 장바구니를 열어 그 물건들을 느릿느릿 담는다. 그가 자신의 술만 얼른 계산하고 자리를 뜨기를 기다리면서.
하지만 그는 내 예상과 달리 그 자리를 뜨지 않고, 바코드에 찍혀 장바구니에 하나씩 담기는 나의 물건과 손을 가만히 지켜보며 나를기.다.린.다.
이쯤 되면 나도 더 보란 듯이 내 모든 행동에 버퍼링을 걸어주겠다는 심정으로 천천히 움직이며 계산대 바로 옆 고객 문의 코너로 향했다. 그곳 의자에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가만히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연락하는 듯한 행동을 취했다.
나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는 그의 시선이 느껴졌고, 나는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여기 서서 당신이 갈 때까지 가지 않겠다의 기운을 마음껏 풍긴다. 집으로 가는 동선까지 그에게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
10분, 20분... 꽤 오랜시간이 흘렀다.
눈은 핸드폰을 향해있지만, 드디어 그가 나를 지나쳐 에스컬레이터로 몸을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걸어간 방향이 꺾이면서 내 시야를 벗어났고, 그가 다시 되돌아오는 모양새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멀어졌을 때쯤 나는 반대쪽 에스컬레이터로 달려갔다.
집에 가는 발걸음이 다급하다. 뒤를 계속 살피며 행여나 그가 나를 따라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나의 모습.
10분이면 끝날 일을 그 남자 덕분에 30분도 넘는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장보는 꼴이 되버렸다.
만약 그때 그가 나를 기다리고, 따라오게 뒀다면 내가 살고 있는 곳까지 따라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불안함이 올라왔고, 집에 도착해서도 한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남자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저 왜 따라오세요? 저 왜 기다리세요? 할 일이 그렇게 없어요?
오늘만이 아니다.
나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이런 일들을 꽤 자주 겪었다.
밤늦은 시간 지하철에서 날 따라 내리던 사람 1.
내 옆자리에 앉아 자는 척 내 어깨에 계속 고개를 기대던 사람 2.
버스에서 계속 나를 흘끗거리다 내가 시선을 맞추면 황급히 고개를 돌리던 사람 3.
사람 4, 5, 6, 7....
나는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숫자를 세어야 할까.
그들의 삶은 왜 그렇게 타인의 인생에 관심이 많을까.
본인의 인생만 행복하게 살 수는 없는 것일까.
오늘도 나는 퇴근 길 누군가의 발걸음이 나의 발걸음을 따라올까 신경을 곤두세운다. 시선이 느껴지고 발걸음의 간격이 일정하다고 인식되는 순간 나의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하지만 그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망설이지 않고 발걸음을 돌릴 장소를 마음에 담았고 언제든 꺼낼 준비가 되어있다. 아무 말 없이 네이버 앱을 켜 지도 버튼을 누르고 GPS버튼을 on으로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