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시간만 소중하니

나는 너만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다

by 내민해

누군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시계가 걸어 다니는 것 같다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계획한 일정들을 규칙적으로 처리하는 나의 모습을 두고 한 말이다. 나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보니 타인과 약속을 잡는 것에도 굉장히 민감한 편이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신뢰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친구 A와 B가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친구들로 10년 넘게 우정을 간직하며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각자 사는 곳이 달라지다 보니 자주는 못 만나지만, 1년에 한 번씩은 꼭 만나는 편이고, 그게 안 되는 경우에는 카톡으로라도 서로의 안부를 꼭 주고받는 편이다.


10년을 넘게 만나면서 늘 변함없는 한 가지가 있는데, 친구 A는 단 한 번도 약속 시간을 지킨 적이 없다는 것이다. 친구 B와 나는 A의 지각에는 이제 면역력이 생겨서 정시에 도착할 것이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는 편인데, 번번이 늦는 A에게 늦는 이유가 매번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다. 차가 막혀서,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약속 장소를 잘못 알아서 헤매다가 등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고, 마지막에 덧붙이는 말도 어쩜 그렇게 한결같은지.


이번에는 진짜 시간 맞춰 나오려고 했는데



나는 몇 년 전 친구 A의 결혼식도 다녀왔다. 그렇다면 여기서 친구 A는 자신의 결혼식도 지각했을까. 사정이 생겨서 하객들을 기다리게 하고, 메이크업받는 시간을 놓치고, 예정된 일정에 차질을 만드는 실수를 저질렀을까. 그렇지 않다. 그녀는 정확하게 모든 일정을 제시간에 맞춰 소화했고, 웃으며 퇴장했다.


이 얼마나 선택적인가. 사람이 누울 자리를 보고 눕는다는 말이 여기에 딱 적합하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지각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에는 절대 늦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에 일상적인 약속(특히 오래된 관계라 편할수록)은 가벼이 여기고 기다리는 상대방에게 늘 성의 없는 핑계로 그 상황을 모면해버린다. A의 성의 없는 태도에 나는 A와의 장기적인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느낀 사실 중 하나는 생각보다 시간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만큼은 철저하게 지키려 한다. 상대방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시간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시간도 소중하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타인의 시간이 나로 인해 낭비된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반복하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이건 나의 철칙과도 같은 것인데, 시간 약속을 습관적으로 어기는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에이, 조금 기다릴 수도 있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모든 것을 계획대로 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하지만 적어도 시간을 지키지 못할 경우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이 맞고, 상대방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도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지속되면 타인에 대한 미안함마저 느끼지 못하게 되고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니 이것이 잘못이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사회생활을 통해 알게 되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물론 이 경우에 쓰이는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시간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가깝고, 중요한 사람이라도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고 멀리하게 되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에 끌려다니기보다 내가 먼저 시간을 끌고 나가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내 시간에 대한 욕심이 남보다 큰 편이라는 이야기도 종종 듣곤 한다. 하지만 짧은 인생 속 시간을 허비하며 보내는 것이 나에게는 큰 낭비와 같다고 여겨진다. 돈을 낭비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토록 예민한 사람들이 왜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 대해서는 안일하게 반응하는지 가끔 의문이 올라온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돈만 벌기 위해 시간을 포기하는 것은 나에게 의미가 없다. 그렇기에 나의 시간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시간도 중요하다 생각한다. 그 작은 약속조차 가벼이 여기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은 나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관계의 균열은 멀리 있지 않다. 약속에 대한 미세한 균열이 만들어내는 악순환이 반복될수록 관계를 잃어가는 것은 한순간이다. 특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그 균열을 가벼이 여기고 쉽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들이 많다. 나는 단호히 말하고 싶다. 그 관계는 유통기한이 다 되었다고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