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랑 약속있어요

시간과 나

by 내민해

시간을 균형 있게 쓰는 것에 나름의 강박관념이 있는 편이라 아침에 일어나면 그날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곤 한다. 어릴 때는 지금보다 완벽주의 성향이 더 강해서 그날의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내 스스로를 몰아붙이곤 했다. 그러다 보니 늘 시간과의 관계를 이끌어가기보다는 주로 질질 끌려다니는 편이었다. 사실 지금도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너무 다그치려 하지는 않는다. 대략적인 우선순위를 정해두지만, 못할 가능성도 열어두려 한다. 그리고 그 계획들 사이사이에 틈을 많이 두고 혹시나 시간이 빠듯해서 다음 일정과 맞물리는 일이 없도록 여유를 두는 편이다. 다음 일정에 무리가 생길 것 같으면 중요도에 따라 생략하는 과감함도 발휘한다. 물론 나 혼자와의 약속일 경우에 한해서다. 타인과의 약속을 당일 그 시간이 되어서 갑작스럽게 취소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시간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다른 것들에는 크게 욕심을 내는 편이 아닌데, 이상하게 시간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곤 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이벤트처럼 반가울 수도 있는 갑작스러운 방문 같은 서프라이즈는 정말이지 칠색 팔색 하는 편이다. 연인의 계획에 없던 방문, 지나가다가 갑자기 '집 앞이야 나와', '나 지금 너네 회사 앞이야' 같은 멘트들은 정말이지 나와 맞지 않는 결이다. 실제로도 지난 연애 중에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연인을 그냥 가라고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걸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정말이지 내 사고로는 이해가 어려웠다. 아무튼 주제가 옆으로 빠졌는데, 그만큼 나에게 시간은 중요하다. 특히 혼자만의 시간은 나에게는 생명수와도 같아서 이 시간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다.


유독 내가 자주 언급하는 몇 가지 키워드가 있는데, 내향성, 예민함, 불안, 혼자만의 시간, 책과 독서 등이다. 그만큼 나에게 혼자만의 시간은 중요하다. 안정적이고, 계획적인 삶을 모토로 살아가는 나에게 쉼표 같은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근데 이 혼자만의 시간이라는 것이 타인과 얽히면 이해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누군가 나에게 주말에 뭐 하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다른 사람과 약속이 있다고 하면 수긍하는데, 나와의 약속이 있다고 하면 수긍하지 않는 것이다. 나와의 약속은 언제든지 미룰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그 말이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내가 나와 한 약속의 중요도가 얼마인지 알지 못하면서 왜 나의 시간에 대해 저렇게 말하는 건지... 되려 나보고 겨우 그런 걸로 자신과 약속을 잡지 않는 게 서운하다고 말하면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말문이 턱 막히곤 한다. 사실 회사에서도 나는 혼자 밥 먹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데, 누군가의 밥 먹자는 제안을 거절할 때, 혼자 밥을 먹고 싶어서 거절하는 것을 이해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말은 '어차피 혼자 먹을 거면 나랑 먹자'라는 말인데, 왜 어차피냐는 것이다. 어차피가 아니라 일부러 밥을 혼자 먹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왜 이해시켜줘야 하는 것일까. 보통 이 경우에도 본인이 거절당했다고 느끼며 불쾌해하는데, 왜 내가 다른 사람과 약속이 있어서 거절하면 괜찮고, 나와의 약속(혼자 있고 싶은)이 있는 것은 괜찮지 않은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월요일이 무섭지 않은 내향인의 기술>의 저자인 안현진 작가는 내향적인 사람들은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필수적으로 확보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내향적인 사람은 내적으로 충만한 삶을 원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내면에서 안정감이 확보되어야 외부 세계로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에너지를 충전한 후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다. 내향적인 사람은 외부 자극이 자신의 에너지를 빼앗아 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외부 세계로 나아갈 때면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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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주기적으로 필요한 사람이고, 그 시간이 있어야 에너지가 충전된다. 하지만 가까운 관계일수록 내 시간의 자유로움을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와 계속 소통하고 싶은 그 마음은 고마웠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면 사회적 에너지가 고갈된 나는 매우 예민한 내향인으로 돌변하고 만다.

문득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점점 화가 나고 있다고 느껴지는 데 기분 탓인가. 나의 시간을 존중받지 못했던 경험들이 자꾸 떠올라서 그랬나 보다. 근데 이 부딪힘도 어쩌면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서 벌어지는 일들이니 나의 탓이라고 봐야 하는 것인지 참 어렵다. 시간과의 관계를 말하고 싶었는데, 시간의 존중에 대해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다시 한번 내가 시간에 얼마나 욕심을 부리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과연 이런 내가 시간과의 관계가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나만 일방적으로 짝사랑하면서 졸졸 따라가거나 질질 끌려다니는 기분이다.


오늘의 글은 시간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의식의 흐름대로 풀어나간 것 같은데, 아직 나에게 시간과의 관계란 그만큼 어렵기도, 무겁기도 하다. 마음의 여유와 내려놓음이 조금 필요한 것 같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요즘의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꽤 오래 보내고 있고, 이 시간들을 통해 나를 더 깊이 알아가는 중이다. 내가 진짜 원하는 시간과의 관계가 무엇인지, 나는 삶에서 어떤 것을 가장 추구하는 사람인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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