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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Apr 17. 2024

서로를 견인하는 마음

다른 사람들은 이런 기억을 어떻게 졸업했는지 궁금하다. 최선을 다해 비밀에 부치고 있지만, 사실 내 안에는 운동장에 홀로 남겨진 까무잡잡하고 통통한 어린애가 여럿 산다. 생의 어느 지점에는 나였던 애들. 나는 내가 되기 바빠서 그들을 거기 두고 왔다. 가끔은 데리러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소녀는 따로 자란다> 안담



2021년 도서관법 개정으로 도서관의 날이 제정됐다. 매년 4월 12일이고, 올해가 2주년이다. 도서관 주간(4.12~18)은 올해로 60주년을 맞았다. 이번 슬로건은 "도서관, 당신의 내일을 소장 중입니다"이다. 덕분에 지난 주말, 도서관 주간 기념 행사 중 하나인 <4월 문학산책 :  백온유 작가와의 대화>를 다녀왔다. 모집 대상은 '한국문학에 관심이 있는 30명'이었다. 작년에 읽었던 책이라 반가운 마음에 신청하면서도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는데, 2시간이 훌쩍 지났다 느껴질 만큼 값진 시간이었다. 독자들의 질문 하나하나에 성심성의껏 답하는 백온유 작가의 정성스러운 모습이 나에게 또 하나의 울림로 다가왔다.

(근데 중구에 있는 도서관들은 왜 다 가파른 언덕 위에 있는 걸까)


백온유 작가는 청소년 소설 분야에서 '믿고 읽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 북토크에서도 청소년 소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가장 먼저 받았을 만큼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청소년 소설과 일반 소설의 장르적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하며, 차이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주입식 교육의 일환으로 생겨난 권장도서의 상업성이 편의상 분류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청소년 소설이란 소설 속 주인공이 청소년이고, 그 주인공이 갈등을 주체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런 의미에서 <경우 없는 세계>는 청소년이 주인공이지만, 그 청소년이 자라 청년이 되고, 자신과 닮은 청소년을 만나는 이야기다. 작가는 <경우 없는 세계>를 통해 어른들이 바라는 (바람직한) 청소년의 모습이 아닌, 어른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청소년들(소위 말하는 비행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싶었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권장도서처럼, 교훈적인 내용으로 마무리되는 청소년 소설이 아닌, 끝까지 이해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수'라는 주인공은 청소년 시기에 가출한다. 그는 가출 청소년들이 모여사는 공간에서 비행을 저지르며 위태로운 삶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경우'라는 아이를 만난다. 다시 현재 시점으로 돌아와 '인수'는 이제 성년이 되어있다. 청소년기를 지나왔지만, 여전히 청소년기를 겪는 중이다. '이호'라는 아이를 만나면서 자신의 과거 모습을 발견하며 안타까워한다. 인수와 이호의 관계는 특별하다. 언뜻 보면 청년인 인수가 청소년인 이호를 보호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둘의 관계는 양방향이고, 오히려 인수가 이호라는 존재가 없을 때 더 불안함을 느낀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이상적인 돌봄의 형태라 여겨진다. 간병인이 되어본 적은 없지만, 간병할 상대가 있어 오히려 살아갈 동력이 생긴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존재 자체로서 다른 존재를 보완할 수 있는 존재. 말 그대로 서로가 서로를 견인하는 마음 같은 것이라 여겨졌다.


소설은 부드럽지 않다. 위태로운 선을 넘나드는 아이들의 모습에 화가 나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백온유 작가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인지 궁금증이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북토크에서 만난 그녀는 93년 생의 평범한(?) 여성이었고, 어릴 때 영덕이라는 시골(작가님이 직접 언급하신 단어)에서 살았다고 한다. 산과 나무로 둘러싸인 환경이라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가 없었던 그녀는 집에 있는 책들을 섭렵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문예창작과로 진학하게 됐다. 어찌 보면 너무나도 모범 답안 같은 굴곡에 살짝 힘이 빠지기도 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책을 집필하기 위해 취재를 감행했던 작가의 생생한 경험담 덕분이다. 그녀는 경험해보지 못한 그들의 세계를 제대로 알고 싶었던 나머지 당근마켓에 직접 모집글을 올렸다. 모집군은 소년원을 다녀온 청소년이 아니라, 소년원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청년'이었다. 당근마켓은 신분이 확실하게 보장되는 곳도 아니고, 워낙 다양한 빌런(?) 사례도 들어왔던 터라 내 또래이자 같은 여성인 그녀의 대범함이 실로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주변에서도 반은 걱정을, 반은 응원을 해주었다고 하는데, 나는 두렵지 않으셨냐고 질문했다. 처음에는 그런 마음도 있었지만, 그분들 또한 용기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러 나오신 분들이라는 생각에 오히려 감사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소설을 위해 직접 발로 뛰며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백온유 작가의 진정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끝으로 작가는 탈고의 개념을 전했다. 탈고란 소설을 완성한 후가 아니라 완성된 소설이 출간되고, 독자의 피드백이 돌아온 후라고 말이다. 그녀는 <경우 없는 세계>를 출간한 후에도 독자들의 다양한 피드백을 받았다고 한다. 정작 자신은 가출 청소년들에 대해 그렇게까지 자세히 알고 있었던 게 아닌데, 독자들이 전해준 이야기와 추천해 준 책을 통해 오히려 더 깊이 배우고 알아갈 수 있었다고. 그때야 비로소 제대로 된 탈고로 느껴졌다고 말이다. 그렇게 작가도 독자도 서로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 이 모든 과정이 책을 통한 좋은 연대의 과정이 아닐까 싶어 마음이 촉촉해졌다.


다만 가출은 비단 청소년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작년 가을에 만났던 '282북스'의 탈 가정 청년들의 모습처럼,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선택지가 필요하다. '나'로 살기 위한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4월 16일, 작년부터 기다려왔던 탈 가정 청년들의 음원이 드디어 발매됐다. <52헤르츠 고래의 노래>는 총 6곡을 담은 미니 앨범으로, 탈 가정 청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만든 노래 5곡과 청년들을 응원하는 노래 1곡이 수록되어 있다. 나는 당시 펀딩에 참여했었고, 드디어 어제!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음원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 그들의 삶이 앞으로도 더욱 건강하게 반짝거렸으면 하는 마음에 나의 프로필 음악도 바꿨다. '오웬'의 '단물'이다.


https://blog.naver.com/282books/223331183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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