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생일인 오늘, 멀리서 축하를 건넬게
내가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애쓸수록 미숙함은 쉽게 들통난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저절로 성숙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어른다운 어른이 되는 길은 여전히 요원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은,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을 가만히 멈춰서 살필 수 있는 시선을 주었다.
<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유리는 만난 횟수로만 치자면 고작 다섯 번이 전부인데, 텀이 길어 그런가 만날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 있어 깜짝깜짝 놀란다. 남자아이들의 성장은 언제가 가장 활발한 걸까 궁금해진다. 첫 만남에서 봤던 그 앳된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몇 달 만에 소년으로 훌쩍 커버린 느낌이다. 만남의 횟수가 늘어갈수록 아이에 대한 애정도가 커진다. 도착했다는 연락에도 선생님 뒤에 숨어 쭈뼛거리던 유리가 이제는 뛰어내려오기 시작했다. 3층 계단에서부터 다다다다 소리가 들려온다. 이번 만남은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주차장에 차를 대고, 차에 앉아 유리와의 만남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던 찰나. 한 아이가 차 앞을 쌩하고 지나가기에 자세히 보니 유리다. 밖에서는 안이 잘 안 보이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봤나?' 했는데, 다시 와서는 "안녕하세요!"라고 우렁차게 외치곤 다시 달려간다. 한 번의 만남이 있는 날, 한 번의 인사로 끝났던 우리 사이가 한 뼘 아니, 두 뼘 더 가까워진 기분이다.
헤어질 때도 숙사 선생님을 따라 뒤도 안 돌아보고 쌩 가버리기 일쑤였는데(서운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계속 뒤를 돌아보며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유리를 보내고 화단 벤치에 앉아 선생님을 기다리는데 익숙한 뜀박질 소리가 계단 쪽에서 다시 들려왔다.
'유리다'
아이는 우리 앞으로 뛰어와서는 "이거요"라고 말하며 활동 일지를 툭 건넸다. 보통은 숙사 선생님이 들고 내려오시는데, 유리가 이걸 굳이 들고 내려왔다는 사실에 괜히 또 마음이 뭉클해졌다. 우리가 좋아지기 시작했구나, 마음이 열리고 있구나. 안도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유리에게 말했다.
"유리야, 다음 달에 또 보자!"
실은 건네고 싶은 말이 더 있었다. 다음 달에 또 만날 때까지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이번처럼 손에 반창고 붙이지 말고,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았으면 한다고. 하지만 차마 그 말을 건네지 못 하고 아이는 다시 또 쌩하고 사라졌다.
기관에 계신 선생님들은 유리가 우리의 만남을 너무 좋아하고 기다린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 그때마다 기쁜 마음이 와락 올라왔지만, 인사치레겠거니 하며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괜히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테니까. 근데 이번 만남에서 느껴졌다. 이 아이가 정말로 우리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우리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는 걸. 하루 만에 몇 번이나 다시 돌아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에서, 이 아이도 우리가 싫거나 부담스럽지는 않구나 싶어 안도했다.
그래, 그거면 됐다 싶었다.
유리는 4월에 태어났다. 생일날 만나면 더 좋았겠지만, 매달 만나는 날이 정해져 있으니 미리 생일 선물을 준비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꼼꼼하게 물어보고, 세심하게 골랐다. 오랜만에 팬시점에 들러 귀여운 생일 카드(심지어 입체적이야)도 구입했다. 장문을 좋아하는 나지만 유리한테 숙제를 주고 싶지는 않아서 간결하고 담백하게 적었다. 가장 전해주고 싶은 말은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이었다. 네가 있어 행복하고, 너와의 만남이 항상 기다려진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작 이 카드는 선물 때문에 (유리의 관심 밖으로)내팽개쳐질지도 모르지만, 뭐 어때. 혹시 읽어볼지도 모르잖아.
유리를 만나면서 매번 다짐하게 되는 것 하나가 있다. 바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기'다. 아이가 우리를 좋아할 거라는 기대, 아이가 우리에게 다가와 줄 거라는 기대, 아이가 웃어줄 거라는 기대 등. 나의 욕심에서 발현되는 모든 것들을 기대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그건 내 기분에 취해 쏟아내는 일방적인 애정일 테니까. 그저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듣고, 기억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일상의 질문(질문이 없으면 무관심하다 여길 수 있으니까)을 조심스럽게 건네기. 섣불리 판단하거나 나의 어떤 단어에 실수가 있지는 않았는지 복기해 보기.
세 번째 만남이던가. 연인이 유리에게 우리의 이름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유리야, 혹시 우리 이름 기억나?"라고. 나는 유리가 기억하고 있을 거라는 기대를 애초부터 하지 않았기에(심지어 내 이름은 아이에게 어려운 편이다), 그저 가만히 미소 짓기만 했다. 근데 유리가 우리 두 사람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 어찌 보면 별것 아닌 일일 수 있는데,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정작 내 또래들도 내 이름을 잊어버려 묻고 또 묻곤 하는데, 아이는 단번에 내 이름을 기억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잊어버리면 다시 말해주고 기억할 때까지 천천히 알려주겠다던 나의 다짐은 스르르 녹아버렸다.
유리의 생일을 맞아 뷔페에 갔다. 공동체 생활에 익숙한 유리는 식취향이 뚜렷하지 않아 우리에게 늘 허세를 부리곤 하는데(이 모습이 퍽 귀엽다), 이참에 먹고 싶은 걸 마음껏 고를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내 편견이었을까. 유리는 흔히 이 나이대의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음식들을 골라오지 않았다. 야채와 과일처럼 신선한 음식들만 골라왔고, 양껏 먹지도 않았다. 오히려 로봇 청소기에 더 관심을 보이며 자신이 먹은 그릇을 매번 깔끔하게 반납했다. 우리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한참을 웃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유리 덕분에 고양이 카페도 처음 가봤다. 고양이 카페 중에서도 유기묘가 있는 카페를 골랐고, 그곳에서 상처가 있는 아이들을 만났다. 유리는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하더니 막상 그곳에선 고양이들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겁을 내며 우리 뒤에 숨곤 했다. 나는 또 그 모습이 귀여워 가만히 웃다가 고양이들을 쓰다듬기도 하면서 나른한 시간을 보냈다. 이미 유기묘를 한 마리 키우고 있는 연인도 고양이 카페는 처음이었는데, 10마리가 넘는 고양이를 만난 뒤에야 자신이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도 몰랐고, 그조차도 몰랐던 사실이라 놀랐다.
이번 달 초, 브라더스키퍼 김성민 대표의 강연을 들었다. 브라더스키퍼는 아동양육시설을 퇴소한 자립준비청년에게 안정적인 일자리와 자립에 필요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사회적 기업이다. 그리고 김성민 대표 또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보육원에서 생활했었다. 나는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를 알고 있었고, 이쪽에서는 워낙 유명하기도 해서 그날의 강연은 여러 가지로 내게 큰 울림이 됐다. 다만 몰랐던 사실을 하나 더 알게 됐다. 그에게 보육원에서의 생활은 고통스러울 만큼 힘든 시간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보육원에서 지낼 때, 학교 가는 게 가장 좋았다고 한다. 학교에 가면 보육원에 있는 형, 누나들에게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 말을 듣는데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가장 먼저 유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이번에 유리를 만나 "유리는 혹시 요즘 힘든 일 없어?"라고 조심스레 물었더니, 투박한 대답이 돌아왔다.
"있어요."
"아? 진짜? 뭐... 뭔데...?"
"학교 가는 거요."
그... 그래, 차라리 다행이다. 유리야.
유리가 살고 있는 숙사(유리는 이곳을 집이라고 부른다)의 선생님들은 한 분 한 분이 다 정말 존경스럽다. 그 많은 아이들과 매 순간 부대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신다(가끔 쓰게 웃긴 하시지만). 아이들마다 각각 성장앨범도 있다고 한다. 매일 조금씩 자라나는 아이들을 차곡차곡 기록하며 보육원을 퇴소할 때, 선물로 주신다고 하셨는데, 그 정성스러움에 마음이 또 녹았다. 그리고 지난달부터 나와 연인은 후원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기관에 할까 하다가, 지정후원이 가능하다길래 유리에게 직접 후원을 시작했다. 디딤돌씨앗통장이라고, 지금 당장은 쓸 수 없고, 만 18세 이후에 사용이 가능하다. 정부에서도 1대 2 비율로 함께 지원하며, 아이에게 경제적 자립 기반을 마련해 주는 사업이다.
아이에게 향하는 마음이 자꾸만 커져 상처받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사춘기에 접어들면 우리와의 만남을 시시해하지는 않을까 이런저런 걱정을 하면서도, 만나면 즐겁고, 웃을 일이 많은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더 어릴 때 만났다면 이 관계가 조금 더 돈독해졌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아직 그런 걱정을 하기에는 나도, 유리도, 나의 연인도 다 너무 어리다. 그러니까 우리 계속 만나자. 다음 달에도, 그다음 달에도.
이 글을 쓸 무렵, 연인에게도 한 편의 글을 받았다. 신기하게도 유리에 관한 글이었고, 더 신기했던 건, 우리 두 사람 다 '유리'라는 가명으로 아이를 부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너를 만날 때마다 너에 대해 가졌던 여러 가지 생각이나 감정이 더 선명해지는 걸 느껴. 그래서 너를 보고 있노라면 투명한 유리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단다. 넌 아무것도 감추는 것이 없는데도, 있는 그대로의 너를 보여주고 있는데도, 네가 뭔가를 감추고 있지는 않을까 의심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해.
그래서 이 점에서만큼은 너를 닮아보려고. 너를 만나는 순간만큼이라도 네게 투명한 사람이 되어 보려 해. 네가 나로 인해 헷갈리지 않도록, 나의 메시지를 곱씹어 생각해보지 않아도 되도록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게. 그렇게 보여지는 나는 어쩌면 내가 원했던 ‘좋은 사람’은 아닐지 모르지만, 훗날 네게 좋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