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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Jul 17. 2024

어떤 오만함에 대하여

호기롭게 초면에 온라인으로 식사 초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살면서 별로 거절당해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다보니 분명 당신과 나는 잘 통할 것이다'라는 확신을 피력하기 전에 내가 직업적 작가이기 때문에 독자에게 그런 공감을 느끼게 하는 재능이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지? 물론 나는 이런 초대를 100퍼센트 거절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정한 호의가 아니라 자신의 에고를 충족시키기 위해 나를 들러리 세우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심심함이나 정신적 공허함을 채워주기 위해 내가 거기까지 가서 즐겁게 해줘야 할 의무는 없다.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임경선



가끔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 싫음을 싫음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 거절을 거절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 상처받지 않도록 순화해서 말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 말이다. 나의 활동 반경은 넓은 편이지만(활발한 뚜벅이다) 분야가 다양한 건 아니라서, 책과 관련된 모임에서도 이런 분들을 종종 마주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숨이 턱턱 막힌다.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그날의 모임에서 나를 처음 만났거나, 나를 오랫동안 알아왔음에도 말귀를 못 알아듣거나. 그래도 전자는 나를 잘 모르니까 그럴 수 있다 쳐. 눈치가 없는 건지, 살면서 거절이란 걸 당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건지. 싫다고 아무리 돌려 말해도 계속 뒤풀이를 가자는 적극성이 매우 불쾌하긴 하지만, 차라리 이런 경우는 편하다. 알려주면 된다. 나는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좋은데 빼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뭔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지만, 몰라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되도록 예의 있게 밀어내는 편이다(나도 굳이 칼을 뽑고 싶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후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를 오랫동안 알아왔으면서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도통 모르겠다. 오랜만에 만났으면 그동안 나의 성향이 바뀌었을 거라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자신이 계속 권하면(조르면) 그래도 한번은 같이 갈 거라는 기대감 때문일까. 도대체 그 오만함은 어디서 시작되는 겁니까(갑자기 말투 왜 이래). 몹시, 몹시 불편하다. 지난 독서모임이 그랬다. 이 모임에 처음 참석했던 건 29살이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때만 해도 규모가 작아 서로서로 친했다. 하지만 모임이 지속되고 회원 수가 늘어나면서 이제는 꽤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게 됐다. 그 소란스러움이 싫어진 나는 성실하게 참석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띄엄띄엄 시간이 될 때나, 좋아하는 책으로 지정도서 모임이 열릴 때만 간헐적으로 참석하게 됐다. 하지만 지난 모임은 참석 인원이 적었다. 인원이 적을수록 대화의 밀도가 높아지니까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혹자는 그 밀도에 친밀감이라는 변수를 넣기도 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난 누군가가 달갑지 않았다. 유독 그날은 심했다. 싫다는데도 계속 나를 설득하려 드는 그의 무례함에 진저리가 났다.


오래 알던 사이니까, 근데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이제 우리 친하니까, 소수니까, 자신은 꽤 괜찮은 사람이니까 등등. 이 모든 걸 다 갖다 대면서 나를 회유하고 싶었던 걸까. 싫다는 내게 자꾸 이러는 저의가 뭘까. 그대가 알고 있는 나라는 사람은 적어도 이 모임에서의 뒤풀이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허용하지 않을 거라는걸, 4년을 넘게 봐왔으면 알법도 하지 않나?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대체로 이런 '왜'는 나를 갉아먹는 종류의 '왜'다). 무슨 자신감이야 대체. 너 뭐 돼?


몇 번을 거절하고 또 거절했는지 모른다. 반복되는 나의 거절에 포기할 법도 한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순간까지도 내게 뒤풀이를 권하던 그의 모습에 치를 떨었다. 심지어 그는 내게, 오전에 뭘 하고 왔길래 이렇게 피곤해하냐고 꼬치꼬치 캐묻기까지 했다. 오래 알던 사이니까 이 정도는 괜찮을 거라 생각하는 걸까? 왜 이렇게 선을 넘지? 나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아니 그리고, 나를 제대로 안다면 그만 권해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땡 하고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그곳을 빠져나왔다. 참석했던 다른 분들에게는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지만 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그대로 뒤를 돌아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불쾌한 기분을 탁탁 털어가며 발걸음에 속도를 붙였다. 집에 도착해서는 정말 오랜만에 모임 후기도 남겼다. 일부러 그 사람의 이름을 보란 듯이 태그했다. 창피해서라도 더는 권하지 않겠지.


참 한결같은 사람. 처음 만남도 이랬던 것 같다. 평소에는 상식적이고 괜찮은 사람인데, 유독 집요함을 부리는 날이 있다. 연락도 마찬가지다. 나는 대체로 선연락도 잘 안 하는 편인데(용건 없는 연락도 싫어한다), 주기적으로 연락을 취하는 그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오래전에도 같은 이유로 한동안(몇 달 동안) 그를 멀리했던 적이 있다. 자신이 권하면 수락할 거라는 그 오만함에 헛웃음이 나왔더랬다. 나에게 지독하게 꽂힌 날에는 후퇴가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개인적인 만남을 싫어하는, 나라는 사람의 데이터는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건지, 집요하리만치 물고 늘어진다. 선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그의 행동이 치가 떨리도록 싫었는데 오랜만에 그 기분을 다시 맛봤다. 당분간 그 모임에 참석하지 않을 이유가 다시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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