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면서 신경 쓰이는 부분에 대해 말해보자면 이것저것 끝도 없지만, 출퇴근길에 유난히 신경 쓰이는 것은 같은 층의 사람을 마주치는 것이다. 29호까지 있는데, 하필 그 시간대에 마주친다는 게 흔한 일일까를 생각하고 걱정이 꼬리를 물면 저 사람이 일부러 나를 기다리는 게 아닐까 하는 망상으로까지 이어진다.
이곳에 이사온지 1년 정도 됐을 때도 출근길마다(시간을 다르게 나와도) 유독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남자가 있어서 불편한 마음에 계단을 몇 층을 더 내려가 엘리베이터를 탔던 기억이 있다.
그 무렵 태어나서 처음으로 호신용 도구라는 것에 대해 검색했고, 후추 스프레이를 신발장 안에 고이 간직하게 되었다.
이날 아침도 별생각 없이 집을 나서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통로 저 멀리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에 예민한 나는 우리 집 쪽 통로가 아닌, 반대쪽 통로에서 들려오는 소리라는 걸 인식하고(통로가 양쪽으로 있고, 가운데 엘리베이터가 있다) 안심하면서 계속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신경은 그쪽으로 집중하고 있었는데, 걸어오는 방향이 틀렸다!
우리 집 쪽 통로였고, 남자였고, 심지어 무서운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 한 층 내려가서 탈 걸 괜히 피하지 않았다 싶었다. 나는 뒷걸음질 치듯 엘리베이터에서 조금 멀어지면서 곁눈질로 그를 다시 보았다.
그가 들고 있는 가방은 스포츠백이 었는데, 꽤 컸고 안에 든 물건이 많은지 묵직해 보였다.
골프채라고 하기에는 작았고, 언뜻 보기에 연장이 들어있을 것 같은 비주얼(하...영화를 너무 많이 봤어).
나는 결국 그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으려고, 누가 봐도 어색한 연기를 시작했다.
대충 이런 느낌이다.
나는 혼자 사는 여자가 아니고 같이 사는 상대가 있으며, 그보다 먼저 집을 나서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라, 근데 그가 생각보다 안 나오네?' (주춤주춤 두리번두리번) 죄송하지만 먼저 가세요. 그리고 이어지는 '아휴 왜 안 와'의 표정. 남자를 뒤로한 채 통로 쪽으로 다시 걸어가는 나의 뒷모습. 엔딩.
그는 지하 2층 버튼을 누르고 먼저 내려갔고,
나는 한동안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멍하니 서있었다.
한층 더 내려가서 타지 않은 내 자신을 원망하며.
내가 그토록 그를 두려워했던 이유는 그가 내 옆 집 남자 같았기 때문이다.
제발 저 사람은 아니었으면 하는 비주얼과 인상착의, 가방까지 갖추고서 말이다.
여기서 나의 망상 같은 시나리오를 하나 더하자면,
그가 굳이 그 타이밍에 밖으로 나온 것이 옆 집에 사는 내 얼굴을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다.
내가 현관문 여는 소리가 옆 집에는 생생하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층간소음에 예민해지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혼자 사는 여자라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누군가와 같이 살고 있다면 층간소음에 대처할 때도 조금 더 당당하게 내 입장을 공적인 곳에 말할 수 있겠지만, 혼자 산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보복대상이 될까 두려워 조용히 숨죽이는 시간들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