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줄 알았는데,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그녀의 살려달라는 비명을 들은 후 원래도 예민했던 나의 기질에 적신호가 켜졌다.
일상적인 소음에도 화들짝 놀라곤 했고, 얼마 전에는 택배기사님이 누르는 벨소리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길을 걸어가면서도 사람들의 큰 목소리나 화가 담긴 말투를 들으면 심장이 빨라지고 두근거렸다.
밤이 오는 것이 무서웠다.
밤만 되면 돌변하는 이웃들의 모습들.
남에게 보여지지 않는 나만의 공간에 들어갔을 때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들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해결책이 필요했고, 당장 찾을 수 있는 것은 정신과였다.
평소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유튜브 채널 중 <뇌부자들>이라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들의 영상을 즐겨봐 왔다. 그 영상을 보면서 혹시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다면 저 네 분의 선생님들 중 한 분의 병원을 꼭 방문해야겠다고 막연하게 다짐했었다. 이전에도 정신과를 갔던 적이 한번 있었지만, 담당 선생님과 잘 맞지 않아 치료와 약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분들이라면 내 정신건강을 믿고 맡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동안 유튜브 채널을 통해 내적 친밀감을 쌓은 덕분일 것이다. 근데 그게 당장 현실이 될 줄이야.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두고 병원을 예약했고, 오전 반차를 내서 병원을 다녀왔다. 부모님께도 이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말씀드렸고, 내가 그렇게 힘들면 다녀오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병원의 검사와 치료는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고, 층간소음으로 고통받는 환자분들이 요즘 부쩍 많아졌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조금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처방받은 약은 불안증을 감소시켜주는 약이었고, 부작용에 대한 위험을 걱정하는 나를 위해 소량의 약만 처방해주셨다.
그날 밤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 약을 한 알 먹었다. 처음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몸이 나른해지면서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내 머릿속의 흐름이 버퍼링이 걸린 것처럼 느려지는 기분이랄까. 그 기분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고, 약 덕분인지 졸음이 밀려와 그날 밤은 오랜만에 깊이 잠들 수 있었다.
하지만 약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과 나를 분리시키는 것인데, 이 집의 계약기간이 아직 남아있고, 그들이 이사를 가지 않는 이상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불안하면 약을 먹고, 나의 집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 그들의 행동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두려워하지는 않는 것. 소음에 예민한 나를 다독이며 다른 흥미로운 일에 집중해보는 것.
이제는 단순한 소음을 넘어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게 하는 층간소음.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기술의 성장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만큼,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과 공동체 생활의 예의도 함께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지나친 욕심일까.
나는 과연 이 집에서 앞으로도 무사할 수 있을까.
오늘 밤은 부디 평안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