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11월부터 매일 한 편의 시를 노트에 필사하고 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못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매일 유지해온 나의 루틴이다. 이제 어느덧 1년을 훌쩍 넘는 기간 동안 매일의 필사를 통해 읽어나간 시집들은 쌓였지만, 나에게 시는 여전히 난해한 언어들의 모음집 같기도 하다.
<필사의 기초>라는 책에서 "필사는 곧 삶의 성찰이라고 봅니다. 좋은 문장을 옮길 때 잠시 나와 그 글을 쓴 이의 삶을 나란히 놓을 수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접하고, 필사를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에세이였는데, 에세이는 호흡도 길고, 하루에 한 편씩 쓰기에는 무리가 있어 시집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하지만 시라는 장르를 내가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나에게 시란 함축적 의미의 해석이 필요한 범접하기 어려운 장르의 기록이었다. 계속 망설이다가 처음 필사하게 된 시집은 류시화 시인의 <마음챙김의 시>였다.
류시화 시인은 전 세계 시인들의 시를 번역하고, 나누고 있다. 엮은 시집의 경우 시집에 수록할 시를 선정하고, 시 사용을 허락받는 일을 하는데, 생존 시인에게는 직접 이메일을 띄우고, 작고한 경우에는 저작권자 혹은 시집을 펴낸 출판사들에 연락한다. '마음챙김의 시'도 그렇다. 류시화 시인이 직접 쓴 시는 아니고, 다양한 유명, 무명 시인들의 시를 엮은 시집이다.
그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며, 내가 갖고 있던 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풀어주었다.
시를 읽기 위해 반드시 문학 전공자일 필요는 없다. 시는 오히려 그런 엘리트주의를 배격한다. 애매모호함의 대명사처럼 오해되지만 시는 사실 더없이 명료하게 가슴에 다가간다. 우리의 심장을 건드리는 시는 확실히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시'이다. 삶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읽는 시가 그런 시들이다.
또한, 그는 '한 편의 시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건네지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아름다운 행위'라고 말한다. 나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다. 매일 필사를 하면서 시인들의 시가 나에게 건네진다고 생각한다. 가끔 어려운 시를 만나면, 분명 우리말인데 해석을 못하는 나의 이해력을 탓하기도 하지만 써 내려가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 여담이지만, 작년 초에는 내가 필사한 시를 매일 전해주는 필사 프로젝트도 잠깐 진행했었다(지금은 소강상태).
류시화 시인의 시집 이후로 내가 주로 읽었던 시집들은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판한 시집들인데, 대표적으로는 한강 작가의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박준 시인의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병률 시인의 '바다는 잘 있습니다'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시인들의 시집을 차례차례 필사하며 읽고는 있지만, 함축적인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잊혀져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나는 사실 류시화 시인의 시집이 가장 좋다. '마음챙김의 시'는 엮은 시집이지만, 그가 엮었던 시집 외에도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처럼 직접 지은 시를 시집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그의 시집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는 이해하기 쉬운 일상의 언어들을 잘 녹여 공감을 자아내는 그의 문체가 나와 잘 맞기 때문이다. 덕분에 시를 잘 모르고, 어려워하는 나 같은 이들에게는 그의 친근한 언어가 시라는 문턱을 낮춰주기도 했다.
오늘 소개할 시도 당시 내가 좋아했던 시 중 하나인 마야 안젤루의 '나는 배웠다'라는 시이다. 마야 안젤루는 토니 모리슨, 오프라 윈프리와 함께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이자 시인으로, 16세에 미혼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기 위해 식당 조리사, 웨이트리스, 나이트클럽 가수, 자동차 정비공을 전전하다가 자전적 소설을 발표하며 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한다.
이 시는 배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는 시다. 나의 삶에 배움이란 나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더 공감하며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시의 첫 시작처럼, 어떤 일이 일어나고 그 일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