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분들을 만났습니다
"하루팀! 하루 하루!"
우리 4명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서로의 호칭을 하루라 부르며, 서로를 의지하고 찾았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 손에 손을 맞잡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의 길을 헤맨다는 것은 깊은 신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1988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안드레아스 하이네케 박사에 의해 시작된 어둠속의대화는 33년간 유럽, 아시아, 미국 등 전 세계 32개국 160여 개 지역에서 1,200만 명 이상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끊임없는 변화와 도전을 거듭해 가고 있습니다.
어느 평범한 토요일을 특별하게 만들어준 소중한 분들과 함께 북촌의 <어둠속의대화>를 찾았다.
어둠속의대화는 완전한 어둠 속에서 로드마스터와 함께 100분간 시각 이외의 감각으로 체험하는 신비롭고 이색적인 능동적 참여형 체험 전시다. 입장 전 모든 소지품을 사물함에 보관하는데, 겉옷부터 핸드폰, 손목시계, 안경 등 평소 우리 일상에 꼭 필요한 물건들을 모조리 사물함에 넣어둔 채 입고 있는 한 벌의 옷 만으로 그곳에 입장한다.
안내자님을 따라 조심스럽게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은 기대와 설렘, 걱정 등 다양한 감정을 안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내리자 우리를 반기는 어둡고, 고요한 공간 덕분에 몽롱한 기분이 들었고, 안내자님의 조곤조곤한 목소리에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곳에서 우리는 어둠 속의 100분 여행을 인도해 주실 로드마스터님을 만났다.
문이 닫히자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통 깜깜한 밤에도 우리의 눈은 금세 어둠 속에 익숙해져 흐릿하게나마 형체를 알아보기 마련인데, 이곳에서는 100분 동안 정말 단 하나의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모험을 시작하기 전, 로드마스터님의 안내를 들으며 내가 정말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 폐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다
어떻게 이 사실을 잊을 수가 있지. 문이 닫히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고 말았다. 내 호흡이 점점 가빠지고 있다는 것을.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에서도 갑작스럽게 갇혔다는 생각이 들면 뛰쳐나가듯 그곳을 벗어나 호흡을 몰아쉬는 나인데, 어둠속의대화라는 신선한 경험에 들뜬 나머지 이곳이 철저하게 밀폐된 공간이란 사실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래 알던 사이라면 나의 이런 증상을 설명하기 쉬웠겠지만, 어제 만난 우리 4명은 한 분을 제외하고는 그 만남이 거의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첫 만남에 나의 호들갑스러운 증상을 설명하기가 조심스러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호흡을 가다듬고, 나를 다독였다. 뒤에서 들려오는 리디아님의 깊은 호흡소리에 불현듯 기관지가 약하고, 폐활량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셨던 리디아님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괜찮아. 로드마스터님이 힘들면 중간에 나가도 괜찮다고 하셨어. 조금만 참아보자. 괜찮을 거야'
그렇게 시작된 우리 여행의 결말은...?
좋았다. 100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우리 4명은 글로 만나 친해진 사람들이다. 로드마스터님이 우리의 관계를 물었을 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왔습니다"라고 말씀하셨던 담녕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마음에 따뜻하게 닿았다. 팀별로 이름을 정해야 한다고 했을 때도, '하루'라는 특별함을 담은 팀명이 나의 마음을 다시 한번 녹였다. 글로 알게 된 지는 몇 달이 지났지만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음에도 서로의 필명을 부르며,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었다. 여정을 함께 하는 소중한 분들 덕분에 마음이 놓인 나는 어느 순간 폐소공포증을 잊고, 여정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담녕, 리디아, 앨리스, 해연
이렇게 우리 4명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서로의 손과 목소리에 의지한 채 함께 발을 내딛고 걸었다. 로드마스터님의 안내에 따라 보이지 않는 100분을 함께 경험한 우리는 일상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앞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장을 벗어나 빛을 보는 데 눈이 부셨다. 그 공간을 벗어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세상에 놓여진 느낌을 받았다. 한동안 몽롱한 상태로 말을 이어갔지만, 여운이 깊게 남았던 경험이었다.
여행 말미에 로드마스터님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우리의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주셨던 그분은 우리가 100분 동안 느꼈던 혼란스러움을 세상 속에서 매일 느끼고 계셨다는 뜻이다. 그분의 고백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했다. 내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며 누려왔던 수많은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나의 세상은 어떻게 될까.
나에게는 그저 100분의 체험이었지만, 그게 매일 반복된다면?
나는 과연 어둠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