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내 마음가짐의 차이였다
그들은 나의 존재 자체를 몰랐을지도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 삶에는 늘 층간소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이 집을 이사 가지 않는 한 그 고통은 꼬리처럼 나의 생각을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 이유인즉슨, 이웃이 바뀌었다 해도 내가 그 사실을 모를 테고 또 다른 이웃이 새롭게 내는 층간소음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것은 생각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요즘 나를 거슬리게 하는 소음은 10시 ~ 12시 사이에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쿵쿵 소리다. 한참 층간소음으로 힘들 때와 비교해보면, 바뀐 점들도 많다.
소리 지르던 여자, 소리 지르던 남자, 매일 싸우던 커플, 창문에서 담배 피우던 이웃(덕분에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무한 반복), 옆집에 살던 울버린을 닮은 남자, 아침 일찍 출근 준비를 할 때면 무거운 물건이 쿵 하고 떨어지던 소리 등 지속적으로 나를 괴롭히던 층간소음 문제로 많이 해방된 상태임에도, 매일 새롭게 갱신되는 이슈들이 생기는 것이다.
이 말인즉슨, 층간소음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처음 이곳에 이사 왔을 때 층간소음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도 분명 나름대로 시끄러웠을 것이다. 근데 아마 그때는 내가 층간소음이라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새벽마다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대는 커플 덕분에 귀가 트였고, 그로 인해 신경 쓰지 않던 소리를 일일이 내 귀가 따라가서 찾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소리들을 찾고 두려워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마치 내가 일부러 두려워할 거리를 찾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층간소음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완전한 고요의 상태로 인식하고 정의 내린 내 모습이 있었다. 마치 음소거를 한 것처럼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상태 말이다. 그 상태가 되어야만 '이제 조용하군! 층간소음에서 벗어났군!'이라고 생각하려 했던 나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 댁을 가도, 친구 집을 가도, 회사에 가도, 하물며 근처 카페를 가도 층간소음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곳은 없었고 심지어 방음이 아예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는 내가 괜찮았던 이유. 그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니 그 장소에서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에 대해서 내가 크게 신경 쓰지도, 걱정하지도, 기대하는 것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슬슬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나의 집에서 느끼는 층간소음은 사실 내가 스스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을 것이다. 없던 소리를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들려오는 소음들에 굳이 다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층간소음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집이 있을까(여기서 말하는 자유롭다 함은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완전한 고요함을 뜻한다). 방음실이 아닌 이상 결론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상상 속에서 무서운 이웃들로, 잠재적 범죄자로 그들을 설정한 채 그들의 작은 소리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정작 본인들이 내는 소음도, 타인이 내는 소음도 관심이 없는 데 말이다.
어젯밤 11시부터 옆집인지 윗집인지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쿵쿵 소리에 무섭기도 하고, 거슬리기도 해서 잠에 들기 어려워 뒤척이다가 화장실로 향했는데, 그 소리는 알고 보니 싱크대에서 뭔가를 하는 소리였다. 이 말인즉슨, 잘은 모르지만 퇴근이 늦은 누군가의 식사 소음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소리들이 조금 편안하게 들렸다. 이렇게 층간소음은 원인만 알아도 알 수 없는 무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들이 지속적으로, 때로는 간간이 내는 소음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를 배려하지도 않는데 나는 그들이 두려워 나의 작은 소리 하나하나를 검열하듯이 행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부분이 나를 가장 화나게 했던 것 같다. '나는 조용히 하려고 얼마나 노력하는데, 너네는 왜 이렇게 시끄럽게 하는 거야!'라고 내 마음이 계속 소리치고 있었던 것이다. 근데 이것은 전적인 내 생각일 뿐, 내가 조용히 한다 생각하고 움직이는 소리가 그들에게 시끄러웠을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나라는 존재 자체를 인식조차 하고 있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나의 예민함과도 연관된 것인데, 예민한 사람은 타인의 감정을 일일이 살피며 행여나 나의 말로 타인이 상처받을까봐 단어 하나를 고르는데도 신중을 다하는데, 그렇지 않고 무심한 상대방을 봤을 때 감정이 상하고 화가 나는 상황처럼 말이다.
즉, 그들에게 나의 존재는 관심의 대상조차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본인들의 소음과 나의 소음에 딱히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주어진 인생 살기도 바쁜데 소음 같은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쓰지 않다 보니 어떤 날은 소음이 심했다가, 또 어떤 날은 소음이 약했다가 하는 것이다.
그럼 나는?
나는 그들의 행동 하나, 소리 하나에 내 시간과 돈을 쏟으며 낭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삶을 갉아먹는 부정적인 생각들로 나를 가득 채운 채 그 안에서 나만의 족쇄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이성적으로 생각을 정리하니 이 모든 상황들이 비로소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