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남은 생은 얼마나 될까

인생을 시계로 본다면 나는 아직 오전 9시도 되지 않았다

by 내민해

나이라는 것이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느낀 건 어른이 어른답지 못하다 느낀 순간부터였다.

어른의 기준은 무엇일까.

성인(만 19세가 넘은 사람)이 되면 어른이 되는 건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성숙해지면 어른이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이만 먹는다고 지혜와 연륜이 자연스럽게 생겨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떻게 나이 들어가고 싶은가를 종종 생각했다.


사실 친한 사람들 앞에서 선뜻하지 않는 이야기지만 나는 오래 살고 싶은 욕심은 없다. 다소 어두운 이야기가 될 것 같아 말을 아끼곤 하지만, 죽고 싶다의 느낌보다는 그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하루를 열심히 살고 싶다의 관점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요즘은 백세시대라고, 평균수명이 점점 길어진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몸이 하나씩 고장 나기 시작할 테고, 심하게 고장 났음에도 억지로 연장해나가는 삶은 내가 꿈꾸는 삶과는 거리가 있기에 나는 삶을 너무 오래 사는 것에 큰 욕심이 없는 것이다. 다만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건강하기 위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관리하는 편이다. 그리고, 일정 나이가 되면 서서히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준비하려 한다.

(물론 그 일정 나이를 정하지 않았다는 것이 함정이다. 그럼 난 사실 가늘고 길게 사는 걸 욕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자의 나이는 30대에 접어들면서 노화의 시작이라고 보는 입장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때그때의 내 나이가 좋았다. 언제부턴가 나이 든다는 것이 시들어간다의 느낌보다는 여물어간다의 느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육체적인 노화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적당히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이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이 들어 보이지 않기 위한 여러 가지 시술도 있겠지만, 나는 인위적인 나보다는 자연스럽게 나이 들며 흘러가는 내 모습을 그저 받아들이는 게 더 좋았다.


작년에 인상 깊게 봤던 영화 중 <인생후르츠>라는 영화가 있다. 90대 노부부의 전원생활기를 담고 있는 일본 다큐인데, 느리게 흘러가는 그분들의 삶에서 지혜와 연륜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리틀포레스트와 같은 영화를 기대하고 보게 된다면 다소 지루하고,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 영화에 인상 깊은 대사가 많았는데, 유독 반복적으로 나오는 대사가 있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여문다
차근차근 천천히


영화 촬영 중 할아버지는 먼저 죽음을 맞이한다. 편안한 얼굴로 누워있는 할아버지에게 할머니는 먼저 가서 기다리라고 말한다.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할머니는 자신의 삶을 계속 이어간다. 그들에게 죽음은 또 다른 삶의 연장선인 것이다.


옛날부터 늘 여보, 스스로 꾸준히 하는 거야 라고 말했어요. 꾸준히 하다 보면 그 말이 맞아요. 꾸준히 뭔가를 하다 보면 여러 일이 점점 보이거든요.


영화를 보는 내내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하게 된다.


올해로 33살이 되었다.

어릴 때는 30대의 나는 뭔가 더 단단하고, 멋진 사람이 되어있을 것 같았다.

근데 지금은 나는? 그냥 여전히 나다.

매년 새롭게 배우고, 깨닫고, 반성하면서 조용히 하루하루를 소중히 다듬는 나.

남겨두지 않으면 흘러가버릴 말과 글을 끊임없이 기록하고 사유하며 간직하는 나.

그래서 가끔은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잠시 멈칫하다 다시 내 나이를 기억하게 된다.


60대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해 보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일 것이다.

읽고, 걷고, 쓰면서 조금 더 여물어가겠지(이 3가지만큼은 죽는 날까지 지속하고 싶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별할 줄 아는 조금 더 책임감 있고, 현명한 사람으로 나이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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