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집값은 무섭게 치솟고 있지만
어릴 때부터 아지트란 말을 좋아했다. 친구들과 놀다가 좋아하는 장소가 생기면 '이제부터 여기가 우리 아지트야'라고 외치곤 했다. 다들 한 번씩 해본 놀이겠지만, 어릴 적 앨범을 보면 유독 장롱이나 책장 안에 들어가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들이 많다(저만 그런 거 아니죠?).
나는 공간이 주는 안정감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집이든, 회사든, 카페든, 식당이든 말이다. 보통 주말이면 카페를 꼭 찾아가곤 하는데, 잘 알려진 곳보다는 누구도 잘 찾지 않는 조용한 곳을 찾는 편이다. 덕분에 회사에도 나만의 아지트가 곳곳에 있고, 일하다가 답답할 때면 그곳에서 숨을 고르곤 한다.
자발적 1인 가구로 지내면서 집이란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많았다. 처음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고 했을 때는 이것저것 꾸미고 싶은 것이 많아 설레는 마음으로 이케아 매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근데 막상 독립하고 보니 인테리어는커녕 하루하루 생존이 시급하다. 집안일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썼던 생필품을 하나하나 고르고, 구매하고 있자니 돈은 돈대로 나가고 몸은 몸대로 피곤했다.
꾸밀까 싶다가도 나중에 그걸 다 청소할 걸 생각하면(다행히 청소를 좋아합니다) 조용히 마음을 접는다. 덕분에 난 지금 최소한의 물건들로 잘 살아가고 있다. 처음에는 쌓이고 널어놓는 게 싫어서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이고자 마음먹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이게 그냥 나의 인테리어가 아니었을까 싶다.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며 나만의 공간을 가꿔가는 삶 말이다.
기록 덕후이자 MZ세대 트렌드 미디어인 캐릿(Careet)을 운영하고 있는 김신지 작가는 자신의 저서인 <평일도 인생이니까>에서 공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주변으로 향기를 남기듯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반경을 만드는 사람. 어디에 도착하더라도 자신을 놓치지 않고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네 개의 다리가 흔들림 없이 균형을 이루는 의자처럼. 어떤 울퉁불퉁한 삶의 표면 위에서도 결국 안정감 있게 서고 마는 그런 의자처럼.
(중략)
그건 결국 자신의 삶에 대한 존중일 것이다. 내가 어떤 공간에서 편하게 머물고, 어떤 디테일들을 좋아하는지 오랜 시간에 걸쳐 알아낸 뒤 스스로에게 조금씩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 아무거나 먹고 아무 물건이나 곁에 두고 아무렇게나 하루를 여닫는 것이 아니라, 신선한 것을 먹고 아름다운 것을 곁에 두고 오늘은 한 번 뿐이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는 일.
나도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나 자신을 스스로 키우기에 적합한 공간. 무질서하게 이것저것 들여놓지 않고, 오래 고민하면서 조금씩 나의 취향을 알아가는 공간. 하루를 쉬어도 나답게 쉴 수 있는 공간 말이다.
어릴 때 나에게 집이란 늘 따뜻한 온기가 있는 곳이었다.
지금 나의 집은 비록 사람의 온기는 없지만(스스로 만들어내는 중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가구와 물건들로 차곡차곡 정리해둔 나만의 소중한 공간이다. 그 작은 공간에 나만의 독서스팟을 위한 1인용 소파도 마련해두었고, 운동과 스트레칭을 위해 방도 넓게 정리해두는 편이다. 주기적으로 디퓨저를 바꿔주며 좋아하는 향을 방안 가득 채우기도 하고, 밤에는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온전한 휴식을 즐기기도 한다.
요즘은 1인 가구가 늘어가는 추세라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주변에도 오피스텔이 점점 더 들어서고 있다. 처음 이사 왔을 때만 해도, 공사 중인 곳이 많았는데 이제는 제법 규모를 갖춰 여기저기 늘어나는 오피스텔들을 보고 있자면, 우리 삶의 양식도 서서히 달라지는 것 같다. 거기다 코로나로 인해 근무하는 방식도 점점 변화하고 있다. 우리 회사는 탄력근무제를 일찍부터 적용하고 있어 출퇴근이 자유롭고, 연차도 시간 단위로 끊어 쓸 수 있어 근무환경이 좋은 편이다. 코로나 확산세가 심각해진 뒤로는 재택근무까지 병행하고 있어 집에 있는 시간이 꽤 늘어가고 있는 요즘이다. 그만큼 점점 더 우리 삶에 집이라는 공간이 특별해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그 특별한 공간에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쓰며 나만의 아지트를 조용히 나의 색으로 채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