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관계라면 저도 거절합니다

Okay, bye...

by 내민해

회복탄력성이 높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특히 직장에서 말이다.

남의 눈치 안 보고 소신껏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모습이 멋있다는 말을 들은 적도, 거절하고 싶은 것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모습이 대단하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근데 이 모든 것들이 과연 내가 정말로 눈치를 안 보고, 당당하고, 회복탄력성도 높고, 거절 후에 돌아올 후폭풍이 두렵지 않아서 하는 행동들일까?


단언하건대 절대 그렇지 않다.


나도 두렵고, 무섭고, 걱정되지만 굳이 하게 되는 행동들이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오히려 나는 이 행동들을 할 때보다 그 후가 더 고통스럽다. 혹자는 그 순간이 두려워 그 말을 꺼낼 수 없다고 하지만 나는 당시에는 그 말을 잘한다.

문제는 그 후다.

막상 말을 뱉어놓고는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물론 티는 내지 않는다. 그저 내 마음속에 오만가지 생각들이 왔다 갔다 할 뿐. 뒷일을 계속 걱정하고, 그 사람과 나의 관계가 휘청일까 걱정하고, 혹여나 나의 행동이 보복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특히 나와 이해관계가 깊게 얽혀있을수록 걱정의 빈도는 잦아지고, 생각은 깊어진다. 행동은 쿨한척해놓고 실은 하나도 쿨하지 못한 나의 마음.


나는 보통 관계의 단절을 불안해할 때가 많았는데, 그 단절이 나로 인해 촉발되었을 때는 그 불안함이 극대화되곤 한다. '내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더라면 헤어지지 않았을 텐데'로 시작하는 전제가 깔릴 때 내가 그 헤어짐 자체를 극도로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근데 만약 상대방의 잘못으로 인해 헤어짐을 생각하게 된다면?

물론 마음은 아프지만 그다지 치명적이지는 않다. 이 둘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나는 상대방과 다툼이 있거나 오해가 생겼을 때, '내가 그 상황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아무 일 없었을 텐데'라고 생각하고 자책하는 경우 죄책감이 심하게 들어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상대방이 나에게 상처받았던 부분들에 대해 늘 눈치를 보고, 조심하고, 행동을 되돌아봤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의 행동이 틀리지 않았음에도, 상대방이 그것에 대해 일방적으로 마음이 상해서 나에게 헤어짐을 통보한다면 '그것은 나의 잘못일까?'를 생각해 보니 그건 또 아니었다. 그건 상대방의 잘못이었다. 나는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설령 나의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받았다면 나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닐까. 나의 이야기와 상황은 들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감정만을 토로하는 상대방이라면 내 쪽에서 거절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걸 뒤늦게 알았다. 나 스스로를 존중한다면서 왜 상대방의 일방적인 이기적임과 강요에 내가 맞출 수 없는 것까지 나의 탓으로 돌리며 괴로워했을까.

이건 마치 '내가 싫어하는 음식을 존중받지 못했지만 나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다. 나의 취향은 숨겨야 한다. 보편적인 취향으로 맞추는 것이 맞다.'라고 생각하며 타인의 보편적인 입맛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췄던 것과 같다. 실제로 내가 이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는 내 음식 취향을 늘 부정하며 자신의 입맛을 강요하고,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려 할 때마다 옆에서 한숨을 쉬며 눈치를 주었다.


나의 잘못이 아닌 것까지 나를 탓할 필요는 없다.
나의 취향과 성향까지 바꿔가며 타인을 맞출 필요는 없다.
나를 버려가면서까지 관계를 지속할 필요는 없다.
뭐가 그렇게 두려워서.


회복탄력성이 낮았던 나는 먼저 버려지는 게 두려워 나의 취향과 성향을 숨기는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아니, 달라지고 싶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받지 못하는 관계라면 끝내는 것이 맞다.

그리고 그 최종 결정을 단지 상대방이 먼저 해준 것뿐. 나는 버려진 것이 아니라 그들과의 관계를 그들이 먼저 정리하는 것에 동의한 것뿐이다. 나의 어떠한 행동에 대해 이유도 물어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헤어짐을 통보하는 상대방이라면 나야말로 헤어지자고 말하겠다. 상대방이 먼저 이별 통보를 한다고 해도, 그것은 내가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상대방이 먼저 그 말을 꺼낸 것뿐이다. 어차피 떠날 사람은 뭘 해도 떠나고, 남을 사람은 뭘 해도 남는다. 나의 작은 행동 하나로 오해하고 떠날 사람은 나 또한 붙잡지도 아쉽지도 않다. 그냥 우리의 인연은 딱 거기까지 일뿐. 언젠가는 헤어질 사이인데 그걸 그저 앞당겼을 뿐이다.


그래서 결론은,

조금 더 나에게 솔직해지고, 용기를 갖고 미리 불안해하지 않기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거야를 불안해하느라 정작 중요한 말을 삼키다 오해가 쌓여 더 큰일이 되게 내버려 두지 말고, 닥쳐오는 상황들에 조금 더 용기를 갖고 임하자는 것이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주변 환경의 자극도 물론이지만, 타인의 감정에 특히 더 예민한 편이다. 그런 나의 성향 덕분인지 관계의 회복탄력성은 대체로 낮은 편이었다. 물론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지만 서서히 나아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면적 글쓰기를 통해 나의 생각과 마음을 제대로 알아가기 시작했고, 표현하는 법도 배우고 있다. 관계의 회복탄력성이 더 좋아지길 바라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해도 괜찮다. 나에겐 아직 많은 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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