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20살, 나를 국화라 부르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나를 보면 국화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꽃과 나무 등 식물에 큰 관심이 없던 나에게 그 친구의 말은 꽤 오래 기억에 남았다. 나의 어떤 모습에서 국화가 생각났는지, 정약용의 시 한 편을 선물로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국화는 여러 꽃 중에서 특히 뛰어난 것이 네 가지 있다.
늦은 계절에 피는 것이 하나이고,
오래도록 견디는 것이 하나이고,
향기로운 것이 하나이고,
고우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깨끗하면서도 싸늘하지 않은 것이 하나이다.
-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국영시서 中
그때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국화가 되었다. 누군가가 나를 국화로 봐준다는 것도 좋았고, 그 꽃에 담긴 의미도 좋았다. 거기다 국화는 사군자 중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라고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자 태어난 계절과도 일치한다는 점에서 더 애정이 생겼다.
회사에서도 별칭을 정하는 나름의 문화가 있었는데, 나는 소국으로 저장해두었다. 국화 중에서도 꽃송이가 작은 국화를 소국이라 부른다. 국화는 '아름다운 처방전'이라는 수식어가 따라올 정도로 가정에서 키우기도 편하고, 관상용이나 약용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가끔 집 근처 꽃집에 들러 국화를 사곤 했는데, 오늘 이 글을 쓰며 서랍장에 넣어두었던 화병을 다시 꺼내 국화를 담고 싶어졌다.
여담이지만, 어릴 때 어른들이 꽃놀이 간다는 말에 큰 감흥이 없었다. 어린 나의 눈에는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외에도 세상에 신기한 것들이 너무 많아 굳이 꽃을 보러 어딘가로 향한다는 발걸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무렵 누군가 나에게 우스갯소리로 '꽃을 보고 예쁘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나이가 든 거야'라는 말을 지나가듯 건넸는데, 아예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30대로 접어들면서 꽃에 부쩍 관심이 많아지고, 예쁜 꽃들을 보면 사진으로 남겨두려는 내 모습에서 어릴 때 보았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도 부모님 댁에 가면 각종 화분과 꽃들이 가득해 가히 식물원을 연상케 한다. 나도 아빠의 응원에 힘입어 다육이를 분양받아 왔는데, 마이너스 손인 주인의 부족한 관심에도 무럭무럭 잘 자라주고 있다. 나는 그 아이의 이름을 '다행이'라고 지어줬다(살아있어 줘서 다행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식물 키우기에 소질이 없는 무심한 주인 덕분에 그동안 나의 손을 거친 반려식물들은 짧게 생을 마감했다.
마종하 시인의 <딸을 위한 시>에서 시인은 딸에게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들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지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이 시에 담긴 의미는 관찰만을 잘하는 사람이 아닌, 관찰을 통해 타인을 섬세하게 살피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느껴진다. 누군가를 오랫동안 관찰하고, 살피는 일은 보통의 정성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오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통해 인생의 다양한 면을 배우며 관조할 것이다. 나는 관조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관조란 '고요한 마음으로 대상을 관찰하고 음미해 보는 것'이다. 비단 식물뿐만 아니라 삶의 다양한 면에 대해서도 고요히 오래 관찰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나의 '다행이'에게 조금 더 관심을 줘야겠다. 재택근무 기간 동안 책상에서 홀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 아이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