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이 주는 안정감
오늘은 나의 글쓰기 루틴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나는 어떤 공간, 어떤 시간에 글을 쓰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우선 나의 글쓰기 루틴은 일정하지 않다. 하루에 1편씩의 루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시간과 장소가 그때마다 다르며, 글감을 생각하는 장소와 시간도 다르다.
하지만, 글을 쓰는 순서는 대략적으로 이 흐름을 탄다.
보통은 글감을 먼저 잡고, 그 글감을 통해 어떻게 글을 풀어나갈까 생각하며 큰 단어로 정리한다. 정리한 큰 축을 바탕으로 마인드맵을 그려가듯 여러 가지 줄기로 단어와 문장이 뻗어나가게 한다. 이때는 생각이 자유롭게 뻗어가도록 내버려 둔다.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기대하며 쓸 수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김영하 작가조차 초고는 쓰레기라고 말한다. 그래서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면 빨간 줄이 엄청 그어져서 온다는 것이다. 편집자는 그런 작가에게 천사와 같은 존재고 그들을 믿고 막 써 내려간다고 말한다. 나도 김영하 작가의 말을 듣고 나의 부끄러운 초고에 자신감이 생겨서 첫 글을 마구잡이로 써 내려가고, 최종적으로 가지치기를 하면서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과감하게 소거해나간다.
작년부터 시작한 글쓰기 모임을 10개월 넘게 지속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나만의 글쓰기 루틴이 생겼음을 알았다. 우선 아침에 글감을 확인하고 출근 준비를 하면서 그 글감에 대해 생각한다. 어떤 글을 쓰면 좋을지 전체적인 틀을 생각하기 좋은 장소는 집도, 카페도, 조용한 곳도 아닌 길거리다. 산책을 좋아하는데, 산책할 때 길을 걸으면서 이것저것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 과정에 이제는 글감이라는 주제가 들어간다. 우선 오늘의 산책 플레이리스트를 정하고,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하면서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는 것이다. 이 상상 속에는 글감에 대한 나의 생각, 경험, 관련된 책의 문구 등 다양한 것을 떠올리게 된다. 어느 정도 내용이 정리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가끔은 번뜩 떠오른 이야기가 좋아서 재빨리 메모를 해두기도 한다.
보통 회사에 가장 먼저 출근하는 편인데, 애사심 때문은 아니고 그 시간의 적막을 좋아하기 때문이다(오늘도 7시 30분에 이미 자리에 앉아있다). 업무를 시작하기 전 아무도 없는 빈 사무실에 앉아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읽고 싶었던 책을 읽는다. 하지만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고는 그 일과가 조금 달라졌다. 책을 읽는 시간이 글을 쓰는 시간이 되었다. 백색소음조차 없는 적막한 사무실에 앉아 산책하며 떠올렸던 글감들을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해나가는 과정은 나의 이야기를 펼쳐가는 행복한 시간이다. 다만, 나와 비슷한 시간에 일찍 출근하시는 이사님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혜련씨는 엄청 부지런하네요. 항상 일찍 출근하고."
그 말씀에 나는 가만히 미소 지으며 인사하는데, 왠지 죄송한 마음이 드는 것은 기분 탓일까.
(일하는 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이사님)
결론적으로, 아침에 쓰는 글이 좋다. 늦은 밤과 새벽에 글 쓰는 것도 좋아하기는 하는데, 음... 뭐랄까. 아침에 그 글을 다시 읽게 됐을 때, 오그라드는 나의 손발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렇게 또 하나의 흑역사 같은 글들이 탄생하곤 한다. 부끄러움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글을 쓰는 장소도 다양한 편이긴 한데, 앞서 말했던 사무실이 있고, 주말에는 주로 카페에 와서 글을 쓴다. 혼자만의 방에서 쓰는 글도 좋지만, 나는 낯선 공간에서 글이 더 잘 써지는 것 같다. 그 명확한 이유가 모호했는데,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라는 책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호텔은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집이 아니다.
어떻게 다른가? 집은 의무의 공간이다. 언제나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띈다. 설거지, 빨래, 청소 같은 즉각 처리 가능한 일도 있고, 큰맘 먹고 언젠가 해치워야 할 해묵은 숙제들도 있다.
(중략)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들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다. 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우리는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
물론 자주 가는 카페들은 있다. 몇 가지 특징이 필요한데 일단 적당히 넓어야 하고, 2층이 있으면 더 좋다. 1인 석이 갖춰져 있어야 하고, 인기가 많은 곳은 되도록 피한다. 커피 맛이 좋은 곳보다는 공간이 주는 안락함을 선호한다. 직원들은 적당히 친절해서 나를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있는 듯 없는 듯 무채색의 손님으로 자리하기 좋은 카페가 편안하다. 나는 마음의 안정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시간과 공간이 주는 편안함이 있어야 글이 잘 써지는 편이다. 오늘 이 글을 쓰면서 나의 글쓰기 루틴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도 몰랐던 나의 습관과 생각을 글로 다시 정리한 느낌이랄까.
이 글을 쓰면서 재작년에 카카오 TV에서 방영했던 '톡이나할까'에 김영하 작가편을 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저 같은 전문적인 작가는 매일 쓸 필요가 없지만, 자기가 뭘 원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고통받는 젊은이들이라면 매일 글을 써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글을 쓰다 보면 자기감정에 대해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오는데, 그걸 자꾸 하다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더 명료하게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는데요. 그게 저를 작가로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자기의 기분, 감정, 자기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꾸준히 기록하는 게 중요해요."
오늘의 글에는 유독 김영하 작가의 이름을 여러 번 언급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데,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그의 총명함과 어리바리함이 적절히 섞인 인간적인 면모를 좋아하기도 한다. 물론 그가 쓰는 소설은 더욱 좋다.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스토리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