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안경의 렌즈를 바꾸고 싶을 때가 있다

by 내민해

확증 편향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신념과 결정에 부합하는 정보에만 지나치게 주목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의 대표적인 심리 상담 플랫폼으로 유명한 레몬심리의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는 책에서는 확증 편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어떤 주관적인 관점을 갖게 되면 이 관점은 머릿속에서 쉽게 떠나지 않고 계속 남아 있게 된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관점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보를 찾는 경향이 강해진다. 반대로 자신의 관점과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해버린다. 판단이 하나씩 입증될 때마다 '거봐, 내 생각이 맞잖아'라고 생각하며 편견을 강화한다.
(중략)
운이 안 좋은 날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일상을 보내면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은 것은 당연하다. 확증 편향의 그림자를 줄이는 노력을 해야 상황을 정확히 읽는 분별력이 생기고 사람을 제대로 보는 안목을 가지게 될 것이다.



오해와 편견이 불러낸 비극을 담은 영화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어톤먼트'다.

영화 어톤먼트(속죄)는 확증 편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에 대한 경각심을 주는 영화다. 주인공인 브라이오니는 어린 나이에 자신의 언니인 세실리아와 언니가 사랑하는 남자 로비와의 관계를 오해하고 질투하면서 거짓 증언을 하게 된다. 어린 브라이오니의 상상력은 로비를 범죄자로 몰았고, 결국 로비는 2차 세계대전에 군인으로 끌려가 죽음을 맞이한다.


나 또한 거창한 오해와 편견이 아니더라도 일상에 자리 잡은 편견들로 인해 사람들을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기도 하고, 잘못된 행동 하나로 그 사람의 진심을 오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오해는 좋은 일을 하는 조직에 모인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들일 거라는 착각이었다. 지금 내가 근무하고 있는 NGO에서 자주 느끼는 부분이다. 첫 직장이었던 영리에서 비영리로 길을 바꾸면서 기대했던 가치들이 있었다. 선한 곳에 모인 사람들은 선한 사람들일 거라는 나의 안일함이 얼마나 큰 부작용을 만들었는지 근무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마음 깊이 깨닫게 된다. 착함이라는 탈을 쓰고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람들을 너무도 많이 봐왔기 때문일까. 심지어 직급이 수평적인 우리 회사에서조차 자신의 직급과 나이를 앞세워 폭력적인 말을 뱉어냈던 사람과 언쟁을 벌인 적도 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말이 있다. 나도 이 말을 좋아한다. 안 좋은 일이 생겼지만, 이왕이면 좋게 생각하자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세상을 얼마나 따뜻하게 만드는지는 익히 알고 있다. 다만 옳지 않은 것에 대해 누군가는 앞장서서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눈 가리고 아웅하지 말고, 문제를 이불로 덮어둔다고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텐데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는다. 아니, 사실 누가 나서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데도 그 사람이 나서지 않는다. 착함이라는 탈을 쓰고,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직원들 뒤에 비겁하게 숨어 듣기 좋은 말로 우리를 구슬리며 총알받이로 모는 상사의 모습은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한다.


세상에는 진실되고 좋은 사람도 많지만, 그 진심을 이용하려 드는 이들도 많다. 어쩌면 이 또한 나의 편견일지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앞에서도 말했듯 좋은 일을 하는 조직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사람만 모이는 것은 아니다. 물론 실제로 이곳에 근무하는 대다수의 직원들이 각자의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좋은 일을 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무조건 헌신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때로는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개인 시간과 에너지를 희생하지 않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분위기가 아직도 남아있다. 희생과 헌신, 봉사와 존중은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움직임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밖에도 NGO의 여러 가지 기류를 알고부터 일터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다. 지금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곳에서는 3년을 넘게 일했지만, 이곳이 NGO에 첫 발을 내딛게 된 곳은 아니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곳은 나의 세 번째 직장이다)


어딜 가나 또라이가 한 명씩은 있다. 전 직장에서 나는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상또라이를 만나면서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사람을 괴롭히는 재미로 사는 사람이었고, 하필 내 직속 상사였다. 같은 사무국의 모든 직원들이 그녀를 무서워했고, 모두가 우려했던 대로 나는 그녀의 타깃이 되고 말았다. 하루에 열 번도 넘게 죄송하다는 말을 로봇처럼 뱉어냈던 그 시절, 사무실에서 나에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그녀의 모습에 결국 나는 퇴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괴롭히기로 작정하고 덤비는 사람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결국 똑같은 사람이 되어야 그나마 체급이 맞을 텐데, 나는 적어도 그렇게까지 망가지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도 친분이 있는 전 직장 동료들과 간간이 만나면서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를 나눈다. 이제 그녀는 그곳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나와 비슷한 또래들이 다 들고 일어났다고 하는데...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그저 씁쓸하게 웃을 뿐이다. 더 무서운 것은 당시에도 그녀가 사회복지사로 봉사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많다. 알면 알수록 인간의 심리와 감정은 다채롭다. 나 또한 그렇다. 내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편견은 삶을 살아오면서 축적된 데이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나만의 색안경일 것이다. 가끔은 색안경을 내려놓고 싶은데, 잠깐 내려놓은 색안경을 잃어버려 장님이 될까 봐 손에 꼭 쥔 채 예민함의 날을 세워가는 나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