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는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잔향이 오래 남는 사람이고 싶다

by 내민해

혼자 살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생각보다 나라는 사람이 단순한 구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미니멀라이프가 자연스럽게 몸에 익어있다고 해야 할까. 대체로 내가 살고 있는 집뿐만 아니라 회사의 책상도 단조로운 편이다. '오늘의 집'에 들어가면 어쩜 그렇게 다들 인테리어 전문가들인지. 아늑해 보이는 공간을 따라 해보려고 시도하려다가도 막상 집에 물건이 산재되어 있는 꼴을 못 보는 편이라 손이 안 가는 물건들은 버리거나 기증을 하면서 정리해버리곤 한다. 그래서 자연스레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데, 그런 와중에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향이다.


평소 향이 나는 모든 것을 좋아한다. 계절이 바뀔 때도 향이 나는 것처럼 각각의 공간마다 고유한 향들이 있는데 그 향을 가꾸길 좋아한다. 디퓨저, 바디 미스트, 향수, 섬유 유연제, 탈취제, 비누 등 곳곳에 은은한 향이 퍼져있는 것을 좋아하고 다듬는 편이다. 향에 관심이 많다 보니 주기적으로 찾는 곳이 있는데, 바로 향수공방이다. 약 1년을 주기로 매번 새로운 향수 공방을 찾아 나만의 향수를 만들고 있다. 시중에 좋은 향수들도 많지만, 나만의 고유한 취향을 반영해 탄생한 향수가 나에게는 꽤 특별하다. 떠나간 자리에 그 사람의 잔향이 옅게 남는 것처럼 향기란 나 자신을 가꿔주고, 나타내는 하나의 패션과 같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다가 맨 처음 방문했던 향수공방이 어디였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기억을 가만히 되짚어보다가 겨우 떠올라 검색해 보니 지금은 수업도 중단되었고, 공방의 위치도 달라져 있었다. '그들의작업실'이라는 곳인데, 과거에 방문했을 당시에는 방학역 근처에 위치하고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를 시작으로 나만의 향수를 만드는 것에 재미가 붙어 향수가 떨어질 때쯤이면, 시중에 파는 향수보다는 원데이클래스로 이곳저곳 다양한 향수공방을 방문하게 되었고,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단 한 번도 같은 곳을 다시 방문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여러 곳들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곳이 3곳 있는데, 북촌에 위치한 '아로마인드'라는 한옥 향수공방과 프립을 통해 방문했던 '일리크'와 '비푸머스'라는 공방이다. 아로마인드는 고즈넉한 한옥에서 향수를 만든다는 점이 신선하기도 했고, 북촌에 위치했기 때문인지 수강생 중에 외국인도 있어서 영어로 한 번 더 설명해 주는 점이 인상 깊었다. 안전한 원료로 편안한 향을 찾아가는 그 시간이 참 평화로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리크는 향수뿐만 아니라 캔들, 디퓨저, 비누 등 다양한 것을 만드는 공방인데, 이제껏 방문했던 어떤 향수공방보다 조향 원료가 많았던 점이 좋았다. 선생님도 한 분만 계시고 차근차근 설명해 주셔서 내향인인 나에게 안성맞춤인 1 대 1 수업이었다. 마지막으로 홍대입구역 근처에 위치한 '비푸머스'는 찬바람이 쌩쌩 불던 일요일 오후에 혼자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만드는 과정 자체는 짧았지만, 그 향을 만들고 뿌리던 시기에 행복했던 기억들이 많다. 향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지만, 잊고 있던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니까.


작사가 겸 방송인인 김이나 작가의 <보통의 언어들>이라는 책에서는 향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흔히 향기에는 기억이 함께 담긴다고도 하는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아카시아 향을 맡으면 선선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5월의 날씨가 떠올라요. 이렇게 향을 통해 내 안의 감정, 기억이 생생하게 되돌아오는 것을 프루스트 효과라고 한대요. 향기가 기억창고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어주는 거죠.


이 책을 통해 프루스트 효과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어떤 향을 맡았을 때, 그 향을 맡았던 당시의 기억들이 떠오르곤 했는데 그것을 프루스트 효과라는 용어로 표현한다는 것을 말이다. 후각에 예민한 나에게 향이라는 것은 삶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매개체다. 향수를 직접 만드는 것도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향들을 계속 업데이트하는 것과 같다. 향수공방에서 향수를 만들 때마다 조향사님들은 어떤 향을 만들고 싶냐고 물어보신다.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달달한 향이요"


신기한 것은 공방이 달라서인지, 아니면 조향 했던 그날의 내 기분이 달라서인지 매번 달달한 향을 추구하는 것은 같았는데, 다른 버전의 달달한 향수들이 새롭게 탄생했다. 참고로 나는 지속시간이 길고 잔향이 오래가는 오드퍼퓸을 좋아하며, 무겁게 달달한 향을 좋아한다.


요즘 내가 쓰고 있는 향수는 논현역에 위치한 '보테가 스튜디오'의 퍼퓸 원데이 클래스에서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직접 만들었던 향수다. 그 공방에서는 향수뿐만 아니라 같은 향으로 드레스 퍼퓸도 함께 만들어주었는데, 손목과 옷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나만의 달달한 향이 올해 초부터 나의 출근길을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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