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민한 사람일까? 내향적인 사람일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by 내민해

항상 이 두 가지로 고민을 했었다. 나는 우선 예민하고, 내향적이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쪽이 더 나를 설명하기 쉬운 개념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지만 아직도 적당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나는 외향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스위스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였던 카를 구스타프 융은 "내향적인 사람들이 물질적인 세계보다 내면세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즉, 내향적인 사람은 피상적이고 물질적인 주제의 대화를 지루하게 느끼고, 깊은 차원의 대화, 특히 공통의 관심사를 주제로 한 일대일이나 소그룹의 대화를 즐긴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 내향인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은 29살 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은 알고 있었지만, 내향성이라는 단어로 규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의 내향성을 알아봐 주고, 처음으로 인정해 준 사람이 있었는데 내 인생에 그 사람이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과는 지금도 틈틈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내향성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곤 한다. 알면 알수록 내향인의 특징과 나의 평소 모습에서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일일이 나열하면 끝도 없이 펼쳐질 것 같아 대표적인 것만을 몇 가지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1. 혼자 있는 시간이 주기적으로 필요하고, 그 시간이 있어야 에너지가 충전된다.
2. 삶에서 영혼의 양식이 되는 '내면의 대화'가 꼭 필요하다.
3. 정적이고 차분한 활동을 좋아하고, 이로 인해 행복감을 느낀다.
4. 새로운 환경에 가면 나만의 공간(안식처)을 만들고 놓고, 그 공간을 주기적으로 방문한다.
5. 고독과 외로움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6. 나의 영역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영역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현재 내가 근무하고 있는 직장은 수평적이고, 친화적인 분위기다. 덕분에 관계지향적인 사람들이 많고, 친목 동호회도 권장하는 분위기다. 처음 이곳에 입사했을 때 나와 같은 출생연도를 가진 이들의 모임에 초대받았다. 그분들은 나와 처음 식사하는 자리에서 앞으로 자주 만나서 놀자고 제안했고, 나는 그 한 번의 만남을 끝으로 그 후의 만남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나의 사회적 에너지가 그 만남을 지속적으로 감당할 만큼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향인이라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직장 동료들의 따뜻한 다가옴은 과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심지어 그런 다가옴이 꽤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감사지만, 나는 번번이 거절한다. 종종 나의 거절에 기분이 상해 나의 인사를 대놓고 무시하거나 나에 대해 안 좋은 소문(버릇없다, 건방지다 등)을 내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사람을 붙잡고 나의 이러한 성향에 대해서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이해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다만 거절의 자유는 나의 권리라고 생각하고,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선을 긋는 것에 대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처럼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이 소중한 내향인들에게는 타인과 최소한의 거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끔 깜빡이를 켜지 않고 들어오시는 분들에게는 조금 더 단호해질 필요가 있다.


오스트리아의 사회학자인 라우라 비스뵈크의 <내 안의 차별주의자>에서는 외향성과 내향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사회의 가치 시스템은 외향성의 이상에 젖어 있다. 행복하려면 사람들과 잘 어울려야 하고 자의식이 넘쳐야 하며 매사에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그래야 삶을 열정적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믿고 최대한 자신을 잘 '홍보'할 수 있는 능력은 노동시장에서 갖추어야 할 기본 조건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내성적인 사람들이 외향적인 사람들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고 주장한다. 진지하고 조용하며 성찰하는 그들의 스타일이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략)
내성적인 사람들의 특성을 경시하고, 그들을 너무 느리다거나 너무 수줍음이 많다거나 너무 자신감이 떨어진다고 인식할 경우 그것 역시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한다. 사람의 특성이 '성공한' 삶으로 이끄는 조건이 되면 그것은 개인의 일상적 기회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 특성은 태어날 때 이미 정해진다. 그러나 인종, 출신, 성별처럼 누가 봐도 명백한 특징들과 달리 내향성을 사회적 불평등의 한 범주로 보는 시선은 아직 미미하다. 일단 이 문제의 가시성을 높이는 것이 내성적인 사람들의 부작용 부담을 줄이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되리라고 본다.


우리 사회는 아직 외향성이 규범이 되고, 내향성이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은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외향적인 사람들보다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이 훨씬 더 필요하고, 내향인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외로운 시간이 아닌 사회적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내향인들의 삶에 대해 가르치려 드는 무례한 외향인들을 만났을 때 나는 말문이 막히곤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 할까. 아니, 내가 설명을 해주면 이해는 가능할까?


내향인인 나에게는 나만의 삶과 세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 삶을 행복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적당한 거리, 최소한의 간격이 필요하다. 오늘도 나는 내향적이다. 그리고 매우 예민하다.


The power of introverts | Susan Cain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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